도란도란 프로젝트 - 삼백 일흔 한 번째 주제
그리워 했던 날은
그 때로 충분한 것 같다.
누군가 그랬다.
낙엽이 구르는 소리만 들어도
즐거울 때라고.
글쎄.
나에겐 20대가 전부 그랬다.
마늘빵 조각을 부수다가도,
땡볕아래 슬리퍼를 신고 걷다가도,
밤새도록 고스톱을 치다가도,
우연히 시켜먹은 돈까스에도,
난데없이 웃음이 터지곤 했다.
이유가 있으려면
그때는 그냥 좋은 사람과 있어서였다.
매점 김밥을 풀어놓고
두어시간은 가볍게 수다떨던
그런 시간이
그런 심정이
동심이라고,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너무 어리지도
어른스럽지도 않은 그런때.
-Ram
1.
할아버지, 할머니랑 삼촌들이랑 부모님이랑 다 같이 살았던 어릴 땐 30대였던 삼촌들만 봐도 되게 어른같이 보였는데 (같은 30대였던 부모님은 뭐 말도 못 하게 어른이었고) 사실 어른같이 보인다는 게 뭐든 스스로 옳은 결정을 할 수 있고, 뭐든 다 잘 해낼 수 있고, 조카들 피자 사줄 정도로 돈도 많이 벌고, 정말 누구보다도 의젓하고, 올바른 일들만 할 줄 알았는데. 삼촌들이 (부모님을 제외하고) 내가 어렸을 때 가장 가까이했었던 유일한 30대들이었다. 특히 둘째 삼촌은 약간 유오성(얼굴형과 까무잡잡함이 닮았다)의 매우 매우 순한 버전처럼 생겼는데, 항상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먼저 하고, 일도 궂은일을 많이 했었고, 아무리 피곤해도 조카앞에서는 항상 묵묵하게 웃는 얼굴을 많이 보여줬던 기억이 난다. 내가 둘째 삼촌의 인생 첫 조카라서 많이 서툴렀지만 퇴근 후 피곤해도 가끔씩 집 주변 피자집에 데리고 나가서 피자도 사주고, 슈퍼에 데려가서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멋진 어른이였다. 어릴 때라 잘 기억은 안나지만, 내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것 중 하나는 '나중에 돈벌면 삼촌한테 용돈줄꺼야'라고 했던 것 같다. 그만큼 둘째 삼촌에게 마음이 많이 갔다. 나도 나이가 들면 삼촌처럼 멋진 어른이 자연스럽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같은 30대였던 막내삼촌과 둘째 삼촌이 서로 (매우) 다르듯, 나 포함해서 내 주변 30대들만 봐도 다름이 극명했다. 둘째 삼촌 같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2.
며칠 전 엄마가 가족 채팅방에 사진들을 잔뜩 보냈다. 사진의 주인공은 바로바로... 아빠가 팩게임을 하는 모습!!!!! 초등학교 때 카세트로 핑클 노래를 들으면서 팩게임기로 테트리스를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가끔 박화요비 LIE도 나왔다) 그런 팩게임을 창고에서 아빠가 다시 찾았다! 그 당시 아빠도 아주 가끔씩 방에 들어와선 갤러그를 아주 고수처럼 했었는데, (날파리 같은 우주선들을 한 마리도 놓치지 않겠다는 아빠의 신들린 컨트롤은 절대 잊지 못한다) 약 20년이 지난 지금도 다시 갤러그를 하다니! 아빠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사진을 모두 저장했다. 그때보다 눈이 더 나빠져서 돋보기안경 쓰고 하는 아빠의 모습이 아주 예술이다. 엄마는 깨알같이 '예전에 연희가 게임했던거 생각난다..'라며 괜시리 마음 짠하게 만들고. 나중에 한국가면 팩게임 나도 다시 해봐야지!! 여기에 핑클 Special 앨범까지 들으면 진짜 20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 들 것 같아.
-Hee
쨍그랑
쨍그랑
한 병, 한 병
두유 병이 깨지는게
신기해서 계속 던졌었지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눈앞의 것이 신기해서
두 눈 똥그랗게 뜨고
구경했지 뭐야
위험하게 병을 던져 깨뜨린것도
마셔야 할 두유를 던져버린것도
혼날법 한데
"그러면 누군가 아야할 수 있어~
위험해서 그러지 말아야해"
하고는 감싸안아 품어주셨지 뭐야
-Cheol
몇 시간이나 성대모사를 하며 떠들고 관심분야에 대해 토론을 하고 또 언어 교환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인싸들. 어쩌다 내가 아는 맛집 이야기가 나와 한 마디 하려다가도 대화에 낄 타이밍 놓치고 아쉬움에 마른침 삼키는 나는 지독한 아싸. 클럽하우스에 남들보다 조금 더 먼저 들어갔다는 게 인싸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것쯤이야 진작부터 알았었고, 나는 그저 인싸 흉내를 좀 내보고 싶었을까. 초대권을 나눠주고 자신 있는 성대모사를 해보기도 하고 취미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을 만들어보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이런 플랫폼은 나 같은 사람한테는 어렵고 어렵다. 여러 다양한 사람들의 경험에 대해 들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이해는 하지만 여전히 나는 책이 더 편하고 티비가 더 재밌다. 덕분에 요 며칠간 내가 지독하리만치 재미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재확인했고, 늘 친구들 무리에 끼고 싶어 눈치나 보며 살았던 어린 나의 마음과 기억들을 조금 더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게 됐다. 인싸를 동경하지만 철저한 아싸였던 나의 동심이 다시금 나를 가해한다.
-Ho
2021년 2월 14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