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코"

도란도란 프로젝트 - 삼백 일흔 두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걔는 진짜

냄새를 잘 맡았어.


낌새가 이상하다 싶은 것들은

죄다 들춰냈지.


걔는 내가 곁에 두려했던

많은 것들을

싫어했었어.


낯선 냄새를 싫어하던 네가

언제쯤이었나

더이상

관여하지 않게 된게.


네가 애정을 두지 않는 걸

미워하지는 않아,

그래도 걔를

좋아했어.


소유욕이 강했던 네가

집착이 심했던 네가

꼬리를 내리고

등을 돌리는 순간을


지금도 몸서리치게

기억해.


더이상 냄새를 쫓지 않던

너의 마지막을.



-Ram


내가 사는 콘도 G층에는 코인세탁방이 있다.

2층 주차장에 갈 때마다 아래 코인세탁방에서 올라오는 향이 너무 좋다.

건조되서 뽀송뽀송한 느낌의 향이라고나 할까.

세제 향인지, 섬유유연제 향인지 정확하게 잘 모르겠지만,

그 향만 맡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마치 자주 가는 테니스장 3번 코트 앞을 지나가면

순간 그 곳을 지나가는 게 아쉬울 정도로 진한 꽃향기에 매료되는 것처럼.

이상하게 코인세탁방 바로 앞을 지나갈 때보다

2층 주차장에서 맡는 세탁방 향기가 더 좋다. 기분 탓일까.

생각해보면 세탁방 향이 약간 베이비파우더 향 같기도 한데,

내겐 그 향이 맞지 않은 향이기 때문에 더 좋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예전에 베이비파우더 향 향수를 선물받았는데 내 몸에 뿌려보니

그 뽀송한 베이비파우더 향이 오묘하게 나버리는 바람에

내겐 파우더 향이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다른 코인세탁방의 향들은 저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아무튼 맡으면 기분 좋은 우리집 G층 코인세탁방 향.



-Hee


온통 검은색이었던 네 코의 색이 분홍색이 될 때까지 참으로 무심했지 뭐야. 내가 왔다 하면 귀신같이 달려나오던 너에게 무심했던 날들이 유독 생각나지 뭐야. 너무 많은 애정이 독이 될까 망설였던 것일 뿐이었는데.. 너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결같이 꼬리를 흔들어주었지 뭐야.


기회가 되면 조금이라도 더 나란히 걸어볼 걸 그랬어. 아니, 기회가 별로 없더라도 함께할 시간을 애써 만들어볼 걸 그랬어. 너에게만큼은 내 마음을 다 전하지 못했는데..


조금 더 표현할 걸 그랬어.



-Cheol


점점 썩어가는 사랑니가 어느 순간 온몸에 오한이 들게 만들 듯 어떤 감정들은 점점 썩어가며 나를 무너뜨리기 위해 좀먹는다. 매일매일이 내일을 위한 양분이 되어야 하는데 나의 오늘은 영양가라고는 개코도 없다. 내일 나는 조금 더 앙상해져 있겠지. 감흥 없고 흐리멍덩하기만 한 여러 날들의 연속에 점점 말라가는 나를 자주 감각한다. 메말라 있는데도 축축이 젖은 음식물 쓰레기 같은 악취가 진동한다.



-Ho


2021년 2월 21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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