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

도란도란 프로젝트 - 삼백 여든 세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01.

내가 어렸을 때

엄마에게 오빠가 갖고 싶다고 말했었다.


내가 첫째인게 싫어서,

누군가 기댈사람이 필요해서,


오빠라는 존재가 있었으면 해서.

갖고 싶다고 말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라

그런 사람을 찾고 있는건지도.


02.

외국에 있을 때,

그리움이 짙어지면

예전 사진들을 보곤 했다.


그리움이 가실 줄 알고.


그때 그런 그리움으로

버텨냈던 걸지도 모르지만,

무리 속에 섞여들어가지 못한 건


결국 나였다.


03.

사람의 인생이 길어졌다고 하지만

내가 언제까지나

잡히지않는

행복을 쫓아 버둥거릴 수 있을까.


이 답답한 닭장 속에

말 잘듣는 사람으로

언제까지 머무를 수 있겠어.


어디까지 널

이렇게 만날 수 있겠어.


애매한 삶,

흐려지는 하루 중에도

이건 불가능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거지.



-Ram



말레이시아 하루 코로나 확진자가 3천 명을 넘어 이제는 4천 명이 나오는 수준이 됐다. 어디에서 그렇게 많이 퍼지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지금 라마단 기간이라 저녁에 열리는 바자로 인해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지. 라마단 기간이지. 작년에 말레이시아 온지 2~3개월 정도 지나니 라마단 기간이 되었고 당시 회사 모든 동료들이 무슬림 친구들이어서 그들은 모두 금식에 들어갔었다. 그래서 혼자서 점심 식사를 했다. 그동안 무슬림 친구들 때문에 못 갔던 회사 주변 Non-Halal 식당도 혼자 가보고, 평소 안 가봤던 식당도 혼자 찾아갔다가 그 식당 브랜드 인스타그램에 사진이 올라가기도 했었다. 로컬 사람이 아닌 외국인이 혼자 여길 찾아왔다는 사실에 그 식당 주인은 매우 기뻐했고, 나에게 내가 식당에 온 사진을 올려도 되냐고 묻길래 흔쾌히 같이 셀피를 찍었다. 한국에선 혼자 밥 먹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외국이라서 그런지 그냥 모든 게 신기하고 재밌었다.


그렇게 2020년 라마단 기간이 지나고, 2021년 라마단 기간이 찾아왔다. 하지만 라마단이 채 끝나기도 전에 수천 명대의 확진자로 인해 결국 MCO(Movement Control Order) 3.0에 들어갔다. 올해 초에 MCO 2.0으로 인해 1월부터 2개월 동안 재택근무를 했었는데, 회사 출근한 지 한 달 정도 되니 또다시 MCO라니. 물론 재택은 장점이 많다. 아침에 머리 감고, 화장하고, 옷 챙겨 입고, 전철 타는 시간이 모두 절약된다. 그만큼 전 날 늦게 잘 수 있는 자유로움도 얻는다. 집에선 먹고 싶은 간식을 잔뜩 사다 두고, 먹고 싶을 때 일하면서 마음껏 먹을 수 있으며 편한 홈웨어를 입고 의자에 양반다리를 하고 글을 써도 무방하다. 그렇지만 이것도 하루 이틀이지. 3번째 MCO가 되니 첫날부터 갑갑하다. 지난 MCO 2.0가 끝나고 다시 출근이 가능했을 때 신나게 새로 개시한 화장품들을 미처 반도 사용하지 못하고 다시 MCO라니. 주말에 새벽같이 일어나 러닝 후 좋아하는 동네 카페에 다시 갈 수도 없다. Dine In이 모두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눈여겨봐둔 레스토랑을 찾아갈 수도 없고, 좋아하는 테라스에서 맥주를 마실 수도 없다. 야외 스포츠는 말레이시아 정부에서 안된다고 했다가 어제 다시 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테니스장은 내가 사는 곳이랑 다른 지역에 있어서 MCO 기간엔 지역간 이동이 불가해서 그 지역으로 넘어갈 수가 없다. 난 카페도 가고 싶고, 마음껏 테라스에서 맥주도 마시고 싶은데. 그리고 이제야 테니스 포핸드 감이 조금은 다시 살아났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성격상 전환이 필요할 땐 바깥 활동이 굉장히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데. 난 두 번의 MCO 때는 그럭저럭 버텼는데 세 번째 MCO는 벌써 갑갑하다. 다행히 새벽에 일어나서 러닝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그나마 위로가 된다. 하지만 그날이 찾아와서 며칠간 러닝도 못한다. 어렵군. 너무 좋아해서 조금씩 아껴보던 미드도 이젠 한 개의 시즌만 남았다.



-Hee


멈춰있는 시각과 시점에서 세상은 온통 불가능으로 가득 차 있다. 어둡고 답답하고 꽉막힌듯 보이는 세상. 한 걸음 내딛어 보자. 처음엔 별 차이를 모르겠지만 새로운 걸음을 내딛을수록 함께 변해가는 것들이 있음을 알 수 있을거야.


우리가 움직이는만큼 시간은 흐르고, 그 시간을 꼼꼼히 채워갈수록 불가능은 새로운 가능성으로 바뀌어가.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도,

내가 멈춰 있는 이 곳도.


불가능해보이는 모든 것들은 그저 지금 이 시각 한 순간이었을 뿐이지 뭐야. 아기가 첫 발걸음을 내딛듯이 내딛어보려는 네 작은 발걸음을 응원해.


힘 내.



-Cheol


1.

무료하고 언뜻 평온한 가운데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는 쌓이고, 내가 나를 통제하고 관리할 여력이 부족함을 부쩍 느끼는 중이다. 엉킨 실타래를 풀려고 이리저리 당기고 굴려보아도 나아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 나를 방치한다. 이런 상태가 스스로를 기만하는 일이라고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의욕이란 것이 과다했던 어린 나에게는 그런 강박이 꽤 효과적이었지만, 지금은 내 발목을 붙잡고 늘어질 것임을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느낀다. 완성된 적 없는 내가 어떻게 나를 온전하게 이끌어 나갈 수 있는가. 그건 애초부터 불가능의 영역이었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미련하고 꾸준히 넘어지면서도 끝끝내 터져버리지 않는 스스로에 대한 의문을 그렇게 지워본다.


다만 이러다 언젠가 어디선가 터져버리는 나를 상상하면 쾌락에 가까운 기분이... 짙게 스며든다.


2.

사랑을 확인받을 때마다 검사를 받는 것 마냥 불편한 마음이 든다. 사랑이 없는 것도 아니고 역할극을 연기를 하는 것도아닌데, 매번 답답하고 괴롭다. 나랑 결혼할 거야? 라는 물음에 답이 즉각 나오지 않는다. 결혼에 대해 벌써 몇 차례나 이야기를 했음에도 다시 또 물어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짐작은 하면서도 마음은 변함없이 소란해진다.


결혼은 어차피 불완전한 둘이 만나 불완전한 생활을 같이 해나가는 일. 최선을 찾는 게 아니라, 최악이 아닌 사람을 만나 적절하다 여겨질 때쯤 결혼하는 게 어쩌면 현명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결혼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을 이야기하는 상대가, 내가 없으면 죽고 못 살아서 결혼하고자 하는 게 아님을 알면서도 그 현명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가는 다른 문제로 다가온다. 이해는 하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 애초에 한 사람만을 평생 사랑하며 살 수 있는지, 스스로에 대한 믿음조차 없는내게는 더더욱 어렵다. 그런데도 태연한 척 당연히 결혼해야지, 대답하는 것이야말로 기만일 것이다.

이 끝 모를 부담을 넘겨버리는 방법이 이별이라는 리프레쉬가 될지, 모른 척 결혼해버리고는 그게 최선이었다고 믿으며 밀어붙이는 광기어린 모습이 될지. 사랑을 확인받고 어렵게 확신을 전할 때마다 두 가지 미래가 겹쳐 보인다.


3.

도훈에게 결혼을 왜 하냐 물으니, 결혼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서라고 한다. 그렇다면 결혼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묻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두 가지 모두 이유를 찾으려면 백 개도 넘게 찾을 수 있을 테니까. 그저 물 흐르듯 흘러가는 인생이구나, 어렴풋하게 느낀다.



-Ho


2021년 5월 9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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