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립"

도란도란 프로젝트 - 삼백 아흔 네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몇 년 전,

조립식 책상을 큰 마음 먹고 사왔다.

당시에 나는 대충 자취력 5년차?

정도라서


이런것 즈음 금방하겠지 싶은

자신감이있었다.

이유없는.


동생과 둘이서

책상 조각을 부여잡고

약 한시간,

잔뜩 흘린 땀을 뒤로하고

우리는 조립을 반대로 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단단히 묶었던 걸

푸는 데에 한시간

또 다시 조립하는 것에 한시간.


멀쩡한 책상 하나를 위해

성인 2명이 매달린 3시간.


끝내고 나니 웃음이 났다.

황당해서,

우리가 웃기고 기가막혀서.


그래도 그렇게

복작거릴 때가 꽤 재밌었던 것 같기도 하고.



-Ram


첫 자취방은 작아도 너무 작았다. 한 친구는 나보고 상자 속에 들어있는 느낌이라고 했고, 한 친구는 옷장이 자기 키만하다고 했을 정도니까.

그래도 이사 오기 전 원래 방에 옵션으로 포함되어 있는 옷장과 책상 중에 책상을 빼달라고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작긴 작았다.

작은 방이어서 청소도 하루 만에 끝났다.

작은 옷장에 옷도 꾸역꾸역 다 채워넣었다.

짐은 최소한으로 가져왔지만 화장품이랑 잡다한 소품들을 넣을 공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2단 수납장과 문이 달린 공간박스 1개를 주문했다.

며칠 뒤 조립엔 자신이 없어서 이미 조립이 된 것들을 골랐더니 나름 커다란 택배가 문 앞에 놓여 있었다.

문 앞에서 포장을 뜯고 안에 들어있는 수납장을 방 안으로 옮기려고 했는데 그것조차 무거웠다.

고작 2단 주제에. 낑낑대고 몇 발자국을 떼며 원하는 자리에 옮겼다.

공간박스는 그나마 1단이라 옮기기 수월했다. 그리고 수납장 위에 올려놓았다.

수납장과 바닥 사이즈가 완벽하게 맞는 것이 없어서 조금 큰 걸 샀더니 수납장보다 조금 튀어나오긴 했지만 그럭저럭 봐줄만했다.

곧 공간박스는 화장품들로 가득 채워졌다.

수납장은 회사에서 사인한 계약서와 집 계약서, 다이어리, 당시 한창 읽었던 이랑의 책 몇 권, 인스타그램으로 처음 주문해본 김민준 작가에 책 몇 권 등으로 가득 채워졌다.

문짝에 달린 자석이 엄청 강해 요령있게 열어야 했던 공간박스와 큰 맘먹고 하얀색으로 산 수납장은 꽤 튼튼했고, 나와 꽤 오래 함께 했다.

그리고 지금은 걔네들이 내 곁에 없다.

그 안에 내 화장품들과 내 책들은 사라졌고,

두껍고 무거운 영어사전으로 채워진 수납장과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는 공간박스는 어디선가 제 본분을 다하고 있다.

종종 생각나는 내 귀여웠던 첫 가구들.



-Hee


어려서부터 무얼 그리도 조립했는지..


새하얀 도화지에 적힌 설명들을 보면서 건담이라든지 미니카라든지 만들던 기억들. 조금 커서는 컴퓨터 부품을 사서 직접 컴퓨터를 동작시키고 하던 일들. 나아가서는 가구와 조명 그리고 전자기기들까지


손수 하나하나 직접 조립하고 연결한 '내' 것들.


어쩌면 나만의 애착인형 같은 것들이었을까?



-Cheol


눈치 싸움에 져 다시 한번 사무실을 옮긴다. 담합이라도 한 듯 흡연장에서 만난 동료들은 하나같이 같은 이야기를 한다. 몸으로 뛰다가 종일 앉아서 모니터를 들여다보아야 하는 업무니 좋을 거라 말하지만 내내 전화를 받다가 진짜 업무는 야근으로 해결해야 하고, 협력 업무가 많아 이리저리 치이면서 괜한 욕먹을 일이 많은 자리라는 사실은 누구도 입에 담지 않는다. 쓴맛이 난다. 업무 교대할 직원이 육아휴직 예정이라 떠맡기 싫으니 힘이 없는 우리 팀에 밀어 넣으려 한다는 말은 각자의 사무실 안에서만 공공연하게 맴돈다.


“사무실 옮기는 거 한 번 생각해 봤어?”


내 의지는 전혀 반영할 생각이 없으면서도 천연덕스럽게 묻는다.


“네, 그럼요. 안 그래도 제가 가고 싶었습니다. 얼마 전에 주무관님 두 분 전출 가셨고 저까지 빠지게 되면 지금 사무실이 좀 어려워질까 봐 자원해서 간다고 말할 입장이 아니었을 뿐입니다. 딱히 거부감 같은 거 전혀 없습니다 부장님.”


“허허 이제 자네 사무실도 아닌데 신경 쓰지 말아. 그런 거야 남은 사람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뭐.”

......


마음에도 없는 말이 스스럼없이 잘도 나온다. 내가 어디에든 잘 들어맞을 유용한 부품이라는 것을 과시하듯 말해야 조금은 덜 불안할 것 같았다. 뿌옇게 낀 거부감을 무시하고 다시 적응을 하기란 참 어렵다. 어렵지만 해야만 하는 일. 숲속에서 나무 사이에 설치한 해먹에 누워 온종일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어진다.



-Ho


2021년 7월 25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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