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도란도란 프로젝트 - 삼백 아흔 다섯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늦은 점심,

할머니한테 전화가 왔다.


할머니는

시골에 혼자 살고 계시는데

사실 혼자 계신지는 5년 정도밖에

안되었다.


우리집 시골은

정말 골짜기에 있어서

차로밖에 못간다.


예전엔 소도 두 마리 키웠고

논,밭일 하면서

비포장된 도로를 오가는

진짜 시골.


그런곳에서 할머니가 혼자 산다.


사실 할머니가 말하는 것의

절반은 잘 못 알아먹지만

대충 느낌으로만 아는 척 한다.


병원에 갔다왔고,

3천원짜리 김밥을 사드시곤,

밭에 심었던 수박 네 덩이 중

가장 큰 한 덩이를 네 아빠 주었다.


이런 이야기들.


나는 마땅히 대답하는 법을 몰라서

응, 그랬구나

아냐 할머니도 잘 지내

정도의 답을 빙빙 돌려했다.


시시콜콜한 할머니의

시골냄새 이야기.


내가 어느 순간

척박한 도시 속 여자가 되어가는지

알 길이 없지만,


할머니 이야기가 새삼스러운만큼

팍팍한 나의 오늘, 나의 도시.


그리고 콤콤하게 그리운

할머니 시골 이야기.



-Ram


1.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우리 가족은 아빠 회사일로 인해 도시에서 생전 처음 들어본 도시로 이사를 왔다.

흔히 시골로 불리던 이곳은 내가 중학생이 되어서야 1호선이 들어올 정도로 막 개발이 시작된 곳이었고,

지하철이 들어오면서 뉴스에서 이름만 들어본 프랜차이즈들이 하나둘씩 생기기만 하면

주변 친구들은 학교에서 새로 생긴 프랜차이즈 이야기로 하루를 시작했다.

매년 명절 때만 되면 뉴스에선 시골을 방문하는 귀경길 인파로 인해 장시간 정체를 이루고 있다고 하루종일 떠들어댔지만

오히려 우리 가족은 역 귀성길이 되어버려서 아빠는 꽉 막혀서 움직일 줄 모르는 고속도로의 반대 차선을 보며 흐뭇해했다.

고작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등학교에 전학을 온 나는 초등학교 4회 졸업생이 되었고,

동네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며 내가 자란 동네라고 인식하기 시작할 때쯤 엄마는 우울증에 걸렸다.

부모님은 전부 도시에서 태어나서 자랐기 때문에 이사 오기 전까지 모든 지인들은 전부 도시에 있었고,

아무 지인도 없는 외딴곳에 홀로 떨어져 있는 심정에 많이 두려웠을 엄마.

너무 어렸던 나는 엄마가 힘들어하고 있어도 그저 모른 척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어느정도 엄마가 힘들었는지, 얼마나 아팠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흐르다 보니 다행히 엄마는 다시 웃음을 되찾았고, 동네에 아는 지인들도 많이 생겼다.

엄마도 그렇게 적응을 한 것이겠지.

내가 성인이 되자 엄마는 종종 '원래 살던 곳에 계속 살았다면'이라는 말을 했다.

그때마다 나도 지난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며 원래 그곳에서 계속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마음속으로 상상해봤다.

하지만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는 건 없었고, 엄마도 나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너무 잘 알고 있었다.


2.

드디어 나에게도 찾아갈 시골이 생기나 싶었다.

주변엔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이제 막 포장된 듯 보이는 1차선 도로에,

주변 커다란 다리 아래엔 계곡이 있었다.

내년 여름엔 이 계곡으로 휴가를 올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했다.

그러나 이제 그 시골은 더 이상 찾아갈 수 없다.

내가 찾아갈 시골이 아니었다.



-Hee


나무들과 밭이 자리잡고 있던 산 중턱.


원래 시골집은 온돌식 전통 기와집이었는데 대가족이 대청마루에 옹기종기 모여 생활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변소가 집 밖에 있다 보니 밤에는 깜깜한 변소까지 나가기 무서워 요강을 쓰곤 했는데.. 요강을 쓰는 게 익숙지 않고 불편하다 보니 시골집 가는걸 어린 마음에 특히 싫어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2000년대에 들어서는 할아버지 형제가 모두 돌아가셨는데, 마지막으로 큰할아버지의 아들이었던 큰아버지까지 돌아가시고는 그 기와집은 철거되고 현대식 주택이 들어섰다.


참 신기한 게 옛날에는 그 고을에서 모르는 사람을 만나도 '누구 아들이냐' 하고는 다들 알아보셔서 인사도 꾸벅꾸벅 드렸다. 내가 모르는 다른 이가 나를 알아본다는 게 신기했었는데, 10년 20년이 지나니 이제는 사실 시골 이웃을 떠나 서로 남남이나 다름없지 싶다.


관리만 꾸준히 해주면 법적으로 땅 주인도 치울 수 없는 게 산소라지만 사촌들과는 멀어지고 당장 태어나는 조카들도 없어서 산소관리와 매년 하는 벌초를 과연 유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 드는 요즘..


사회구조는 변하고 가족의 개념도 문화도 바뀌어 가는데.. 앞으로는 어찌되어갈지.. 많은 생각이 든다.



-Cheol


버스를 한 번 놓치면 몇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는 곳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뭐든지 미어터지는 서울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다 사람 사는 곳인데 때때로 나는 겁을 내곤 했다. 요즘은 겁을 내기보다 부러운 마음만 가득하다. 즐길 거리 많고 편리한 서울에 살고 싶기도, 불편하지만 녹음이 가득한 시골에 살고 싶기도 하다.


때마다 다르긴 했었지만 지금은 시골에서 더 살고 싶다. 살다 보니 내가 즐길 거리는 대게 도시에는 없고 시골에 많다는걸 알게 되고부터 그랬다. 서울에 내가 살 집을 마련할 돈이 없다는 사실과 그럴 돈이면 시골에 땅을 사서 내 집을 짓고 캠핑장도 하나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이런 생각에 한몫을 한다. 병원도 마트도 없거나 멀겠지만, 더운 여름밤 술 한잔할 곳도 없겠지만, 멀어서 볼 수 없는 그리운 사람들이 잔뜩 생기겠지만, 그래도 숨은 좀 트일 것이다.



-Ho


2021년 8월 1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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