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사백 두 번째 주제
즐거운 일이었다.
뭔가를 살 수 있다는 건,
거기서 기쁨을 얻는다는 건
쉬운 일이다.
보장된 기쁨의 길.
소유할 수록 즐거웠다.
그것이 비단
가방이나, 명품같은 것이 아니더라도
갖는다는 것으로부터 오는
묘한 만족감.
그런게 좋았다.
홀로서기를 한 때부터
마시는 물부터 옷이며, 침구까지
내 손으로 고르는 것들.
오롯이 나만의 소유인 것에서
헛헛한 감정을 채워갔다.
그런 것들이 결국
내곁에 남는다.
그래서 소유할 수록 좋은 것들.
나의 것.
-Ram
입술은 하나인데 왜 립스틱은 수만 가지일까. 심지어 입술에 한 번에 여러 색을 바를 수도 없고,(그라데이션은 하지 않으니 생략하고) 한번 꽂히는 색이 있으면 한동안 그 립스틱만 손에 가는 내 성향으로 인해 서랍 속에서 제대로 빛 한번 보지 못하고 버리는 립스틱들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늘 아래 같은 색은 없다는 건 인정하지만 내 피부색은 하늘 아래 하나뿐이니 어울리는 색도 한정적이었다. 하루는 새빨간 계열의 립스틱이 지겨워져서 나도 청순한 느낌의 연한 분홍색 립스틱을 발라볼까 싶었지만 얼굴이 뭔가 칙칙해지고, 생기 있어 보이지도 않아서 그제서야 웜톤이니, 쿨톤이니 하는 소리를 믿게 되었고, 또 하루는 무턱대고 기분대로 백화점의 그 노란 조명 아래서 핑크색으로 알고 샀다가 집에 와서 다시 발라보니 거의 자주빛의 가까운 립스틱이어서 경악한 적도 있었다.
그 밖에도 여러 이유들로 그냥 있는 립스틱 다 쓰고 난 후 새로 사자고 마음을 고쳐먹었지만, 이놈의 뷰티 브랜드들은 쉬지도 않지. 계절이 바뀌면 늘 립스틱이 새로 출시되고, 어떤 브랜드는 텍스쳐가 달라졌다며 고운 립스틱 색깔들을 선보이고, 뷰티 인플루언서들은 서로 각자의 방식으로 입술이고, 팔뚝이고 립스틱 발색을 앞다투어 보여주니 또 눈이 돌아갈 수밖에. 어제도 어떤 브랜드의 립스틱 발색을 보고 혹해서 후기를 한참 찾아보다가 다시 요즘 마스크쓰고 다닐 수 밖에 없는 현실에 현타가 와서 보던 창들을 모두 닫아버렸다. 이러다 조만간 또 검색창에 립스틱 모델명을 검색해보겠지..
-Hee
1.
캠핑용 화목난로를 사겠다고 마음먹은 게 벌써 삼 년이다. 제근이 난로용 장작을 도끼로 쪼개다가 엄지손가락 끝을 잘라먹은 일로 생긴 거부감에 일 년은 그냥 보냈었고, 윤철이 난로를 때우다 아끼던 텐트를 초가삼간처럼 다 태워버린 일로 일 년을 또 보냈었다. 그리고 다시 일 년은 화목난로라는 거대한 귀찮음과 위험성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속으로 간만 보다가 보냈다.
이제는 준비가 된 것만 같다. 불 때 기 좋은 계절이 다시 왔고, 삼 년을 보내고도 화목난로를 사고 싶은 마음이 남아있으니 사더라도 후회는 하지 않을 거란 확신에 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간 몇 번이나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덜어냈었던 난로를 샀다. 좋았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소비를 마음먹고 실행했다는 점이 좋았다. 굳이 필요치 않았지만 사고 싶다면 그냥 사버릴 수고 있다는 사실이 좋다.
2.
때때로 이런 욕심을 참지 않고 표출할 때, 사실은 별 일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Ho
인간처럼 태어남과 동시에 무언가를 끊임없이 탐하는 존재가 있을까? 이 욕심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끊임없이 주변을 탐색하고, 끌어다쓰며 누리고자 하는 마음은 어디서부터 기원한 것일까?
하나만이라도 있으면 좋겠던 것들이 주어지고 나면 더 좋은 것을 원한다. 가진 것에 눈을 두는 대신 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우리는 각자의 영역에서 탐험을 멈추지 않는다. 오늘 길을 걷다 마주친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여정의 길을 걷는다. 버스 한 덩이 속 승객들의 여정만으로도 지구의 반을 덮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잘하면 화성을 다녀온 사람이라도 만날 수 있을지도.
한 친구가 말했다. “사람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자크 라캉의 말이다. 우리는 자기의 물욕을 넘어 이젠 타자의 물욕을 탐닉한다. 사회적인 동물 아니랄까봐 욕심도 들불처럼 옮겨붙는다.
나는 가끔 다 못 먹을 줄 줄 알면서 더 시킨다. 혼자 앉을 수 있는 의자는 하나 뿐이란 걸 알면서도 더 많은 의자를 원한다. 하나보단 둘이 좋다며 여분의 물건을 축적한다. 그런데 요즘엔 낭비마저 허락되지 않는 눈치다. 미니멀 라이프가 있고, 공간을 비우길 권장되고, 소유물은 본래 기능을 제외하곤 군더더기가 없도록 덜어진다.
나는 아직 더 많은 것을 원한다. 아니, 정확히는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욕망한다. 진열대와 나 사이를 가로막는 두꺼운 유리벽을 뚫고 들어갈 자유를 욕망한다. 심리스한 집의 찻장 속에는 무수히 많은 캠벨 수프가 겹겹이 쌓여있기를 원하고, 수많은 선택지 속에 덜어진 결과를 원한다.
어디 나 같은 사람 없나? 기름진 햄버거를 즐기고, 서투른 젓가락질에 스시 샤리가 풀려 떨어지고, 빨래를 돌리면 티셔츠와 양말이 한무더기 흘러나오며, 가끔은 흥청망청 취하고 싶어서 맥주 여러 캔을 냉장고에 집어넣지만 현실은 ‘쌓여있는 가능성’을 즐기는 사람?
-소고
2021년 9월 19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