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도란도란 프로젝트 - 사백 일곱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한 10년도 더 전에,

교복입은 학생일 때,


우리 엄마는 내 아침을

한 숟갈이라도 먹이려고

엄청 고민하셨었다.


나는 아침잠이 많아서

우유 한 컵도

후다닥 마시고 뛰어나가는 날이 많았다.


사실 엄마가 해둔 아침은

진짜 소박했었는데,


계란밥이라던가,

햄넣은 토스트,

전자레인지에 데운 호빵


사실 먹는 데에 5분도 걸리지

않을 것들이었는데도

나는 잘 먹질 않았다.


그 중에 학교에 가면서도

집어 먹던 건

그냥 조미김에 한 움쿰씩

싸놓은 김밥.


아무 것도 넣지않은

김에 싼 밥.


그게 그렇게 맛있었다.


토스트, 빵 같은 건

지금도 어디서나 사 먹을 수

있는데,


엄마가 애써서 해 준

밥은 꼭 어디에도 파는게

아니라서 그립다.


누군가의 보살핌이 종종

그리운 아침이 있다.



-Ram


중고등학교 때 엄마는 아침마다 학교 갈 준비를 하느라 일분 일초가 분주한 우리들에게 어떻게든 아침밥을 먹이고 싶어 했다. 그러나 나도, 동생도 딱 사이즈를 보니 식탁에 앉아서 밥 먹을 시간 따윈 없다는 것을 눈치채시곤 흰쌀밥을 조미김에 돌돌 말아 작은 접시에 수북하게 쌓아주셨다. 나랑 동생은 이쪽방에 갔다가, 저쪽방에 갔다가, 화장실에 갔다가, 왔다 갔다 하면서 그 김에 말은 밥을 하나씩 집어먹었다. 최근 갑자기 그 단출한 김밥이 생각났다. 마침 최근 밥을 조금 많이 해서 전기밥솥에 밥이 있었고, 조미김도 있었기에 밥을 퍼서 김에 싸봤다. 그냥 밥을 먹다가 젓가락으로 조미김 집어서 밥과 함께 먹을 때랑은 또 달랐다. 그건 그냥 김이고 밥이고 아무렇게나 입에 욱여넣으면 그만인데, 예전에 엄마가 싸준 그 김밥처럼 동그랗게 말려면 젓가락만으로는 절대 그 모양을 만들 수 없었다. 무조건 한 손에 김을 올려놓고 그 위에 밥을 올린 후 손가락들을 이용해서 조물조물 김밥 모양을 만들어야 했다. 온 손바닥에 조미김 기름이 다 묻었다. 윽. 처음엔 괜히 이렇게 먹나 싶었다가 막상 김에 밥을 다 말고, 하나씩 집어먹어보니 학창 시절에 등교 준비했던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생각해 보니 엄마도 자기 출근하기 바쁘면서, 온 손바닥과 손가락에 기름을 다 묻혀가며 열심히 김밥을 싸준 거였어. 엄마도 출근하기 바빴으면서. 힝.



-Hee


1.

통영 중앙시장에서 장을 보다가 곱창돌김이 보여 자연스럽게 하나 집어 들었다.


어휴 혼자 살면서 김을 그렇게나 많이 사면 다 먹기도 전해 눅눅해져.

고양이가 다 먹어. 금방 먹어.

그래? 고양이가 김을 먹어? 그래도 되는 거니?

간이 안 된 생 김은 먹어도 된다던데. 고양이가 환장해 아주.


김을 보면 늘 고양이 생각이 떠오른다. 내가 먹는 것마다 궁금해서 가까이 다가와 냄새는 맡으면서 정작 먹지는 않고 금세 흥미를 잃었다는 듯 자리를 옮기는 고양이가 유독 생 김에만 환장하고 달려든다. 김 봉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어느샌가 달려와 입부터 들이밀고 그걸 막으면 발톱으로 봉지를 찢기까지 한다. 매번 김이 입천장에 들러붙어 그걸 떼내려 고생하면서도 김을 나보다도 더 먹을 정도로 김을 좋아하는 고양이. 엄마가 택배로 보내줬던 김을 다 먹이고 나서도 매번 좋아하지도 않는 김을 사는 이유는 순전히 우리집 고양이 때문.


김 100장짜리 묶음을 들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은 조금 덜 미안해진다. 이것 좀 봐. 내가 오늘은 김을 이만큼이나 사냥해왔다고. 근데 너는 한 번 구워서 바삭한 김이 좋아, 물먹은 듯 눅눅한 김이 좋아?


오늘 두 가지를 다 놓고 실험을 해서 고양이의 취향을 더 깊게 알아봐야겠다.


2.

상냥하지 않은 고영희. 필요할 때만 어떻게 저렇게 작은 체구에서 이다지 큰 소리가 나올까 싶은 우렁찬 포효를 질러대는 검정고양이. 이름을 부르면 자기를 부르는 것인 줄 알고 귀 쫑긋은 하지만 굳이 고개 들어 쳐다보지는 않는 내 아기 고양이. 길고양이들 지극히 챙겨주는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나는 내 고양이에게 참 나쁜 친구였었구나 싶었다. 화장실도 매일 치워주지 않고 양치도 매일 시켜주지 않고 매일 야근을 하느라 집에 혼자만 두는 못된 친구. 그런데도 화장실이 더럽다고 이불에다 소변을 보거나 편식을 하거나 아프거나 하지 않아 더 고마운 내 친구, 내 동생.



-Ho


김을 언제나 좋아했다. 간단하게 간식 대신 먹기도 하고, 속이 더부룩 한 날이면 다른 반찬 없이 밥이랑 간단하게 먹을 수도 있었다. 가스불 쓰던 시절 어머니가 김 생지를 옆에 두시고 기름을 발라가며 구우셨던 때도 있었다. 김은 정성이고 사랑이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김을 구울 날이. 그 이의 간식을 위해 김을 담아둘 날이 있었으면.



-소고


2021년 10월 24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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