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사백 여섯 번째 주제
그리운 기억을 어디에
묻어두고 올 수 있다면.
꼭 어디라고 말하지 않아도
두고 올 수 있다면,
아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어딘가에 두고 오고 싶었어.
사람들이 말하는
요란스러운 광장이나
불빛 화려한 어딘가에
나도 모르는
그 즈음을 찾아서.
너무 외롭지 않고
쉬이 찾을 수 없는 복작거리는 도로 사이에
그렇게 만났던 기억부터
보냈던 기억 전부를
두고 오고 싶었다니까.
그렇게 사람들도
버린 기억들을 주워서
또 누군가의 무엇인가가 되곤 하겠지.
그런 곳일거야.
-Ram
예전 '환경과 인간'이라는 교양에서 교수님이 그랬다. '너네들, 특히 여자들은 임신하기 전이라면 더더욱 일본에 가지 마라. 방사능 때문에 위험하다' 그때 마침 러시아에서 일어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에 대해 배우고 있었고, 너무 끔찍한 장면들을 많이 보는 바람에 엄청 겁을 먹었다. 하루는 일본 교토에 다녀온 친한 친구가 나보고 강력하게 그곳에 꼭 가야 한다고, 내가 정말 좋아할 만한 곳이 많다고 추천했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아마 앞으로도 일본에 갈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사촌동생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녀의 결혼 상대는 생각지도 못한 일본인이었고, 과거에 사촌동생이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 만났다고 했다. 순간 내가 너무 일본에 대해 겁을 먹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실제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일본에 살고 있고, 일본에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도 주변에 많은데. 일본인 남자친구와 결혼한 사촌동생은 현재 일본에 가서 살고 있다. 실제로 일본에 방사능 피해가 얼마나 있는진 알 수 없지만 부디 동생이 건강했으면 좋겠다. 난 언제쯤 일본에 갈 수 있을까. 친구가 그렇게 내게 추천한 교토나 수도인 도쿄 등 후쿠오카만 가지 않으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가도, 후쿠오카에서 나오는 농작물같은 식재료 등이 일본 전역으로 유통되면 결국 일본 전체가 위험한 것이 아닌가 싶다가도 ,주변 사람들이 일본에서 살고 있는 걸 보면 괜찮겠거니 싶은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Hee
1.
도쿄. 첫 여행지. 서울보다도 먼저 밟아본 다른 나라 수도. 어딘지도 모른 채 전세버스에 몸을 싣고 멈추는 곳에 잠시 둘러보고, 정해진 식사와 간식을 사 먹었던 패키지여행이라 그랬던지 기억에 남는 게 별로 없다. 그래서 첫 해외여행지라는 상징성만 도쿄타워처럼 크고 뾰족하게 남아있다. 그보다는 공항, 새로 산 캐리어, 입지도 않을 거면서 잔뜩 챙긴 옷가지, 부모님이 챙겨주신 용돈 같은 첫 여행의 설렘과 같이 갔었던 애들과의 추억만 지금도 종종 생각날 만큼 짙게 남았다.
2.
가봤었던 여행지에 대해 종종 이야기를 하면 지영은 도쿄 이야기를 가장 먼저 꺼낸다. 그러면 나는 앞으로 가보고 싶은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며 이탈리아 남부에 대한 로망을 나불거린다. 도쿄에 다시 갈 바에는 아직도 가본 적 없는63빌딩에나 가버리겠다는 의지의 간접 표명이다. 그리고 지영은 다시 도쿄의 스시집 이야기를 꺼내며 나를 유혹한다. 스시 스기타라는 스시야의 디너를 선물로 사겠다느니, 샤리가 어떻고 네타가 어떻고, 어떤 계절이 좋겠고, 숙소는 어디가 좋겠고~ 지금 방사능이 어떻고 코로나가 어떻고 반박은 했는데 아무래도 어딜 가면 좋을지 도쿄 지도에도 핀을 일단 좀 찍어두기는 해야겠다.
-Ho
나는 도쿄를 동경한다. 20대는 시드니에 있는 오페라하우스를 동경했다. 이렇다 할 이유도, 계기도 없었다. 오페라하우스가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을 상상하면 나는 마치 메카를 상상한 것 처럼 가슴이 일렁거렸다. 지금도 오페라하우스는 보고싶은 건물 중 하나이지만, 10년 간 했던 동경만큼 강렬하진 않다. 도쿄를 생각한다. 도쿄는 오페라하우스처럼 하나로 뚝 떨어지는 대상은 아니다. 나는 동경의 색채를 생각한다. 알록달록한 듯 하면서도 어딘가 차분한 빛깔. 둥근듯 하면서 각진 건물, 차가운 도로, 새어나는 소리. 몇 번 가 본 적 없지만 그곳은 내게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향수는 언제나 해소될 일 없을때 가장 아름답다. 이뤄지지 못할 때에 완성되는 것들이 있다. 20대의 오페라하우스가 그러했듯 30대의 도쿄에 대한 동경은 영 충족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그것대로 완성이겠지만, 완성된 마음으로 괜찮은 걸까.
-소고
2021년 10월 17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