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바구니"

도란도란 프로젝트 - 사백 다섯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옛날 드라마를 보면

병문안이나, 집에 방문할 때

과일 바구니를 사 가는 게 나왔다.


지금은 잘 안하는 것 같지만,

꽃집에서 쓸 것같은

요란한 핑크색 레이스? 같은

힘있는 천을 두른 바구니에

메론이나 파인애플같은

메인 과일을 필두로

여러 과일이 채워져 있었다.


마치 프랑스에 가면

바게트빵이 종이백 사이로

숭숭 나온 이미지를 상상하듯


그냥 내 과일바구니 이미지는 그랬다.


크고 촌스럽고 요란한 것.


그러다 작년 즈음

회사 선배가 크라프트지 색깔의

상자를 보자기로 감싼 걸

선물로 주었다.


애플망고 과일바구니.

바구니?라기엔 너무 정갈하지만

새삼스럽고 즐거웠다.


내가 벌써 이런 과일 선물을 받아도 되는 때가 왔나,

싶으면서도


굳이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받아도 되는거구나 싶은 마음이

번잡하게 어질러져서

그것대로 기분이 좋았다.


무언가 받는다는 건

여전히 기쁜 일이다.


속에 들었던 과일은 후숙하며 끝까지 잘 먹었던 기억 뿐이라

이제 애플망고만 봐도

그 때의 생각이 나서

달큰한 남새가 나는 것 같달까.



-Ram


4년 전에 코타키나발루에 갔을 때 SaltxPaper라는 문구점에서 마치 과일 바구니처럼 과일 모양 스티커들을 세트에 팔길래 (스티커치곤) 나름 거금을 주고 샀다. 다시보면 솔직히 그렇게 유니크하지도 않고, 귀엽지도 않은데 그땐 왜 그 스티커에 눈길이 가고, 손길이 갔는지. 유일하게 그 문구점에서 산 스티커가 그 과일 모양 스티커들이라 스티커 파일에 넣어두고 아끼고 아껴 쓰다 결국 지금까지 단 한 개의 과일도 꺼내 쓰지 못하고 구매한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사실 스티커는 쓰라고 있는 건데.. 마음이 많이 가는 스티커는 어디에 쉽사리 막 붙이지도 못하고, 아까워하는 내 꼴이 웃겨서 오늘은 다이어리에 붙여보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 뒤로 갈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문구점에 언제든지 다시 갈 수 있다는 것! 그땐 다른 스티커들도 잔뜩 사 와서 아끼지 말고 마구마구 붙여야지. 아끼면 다 똥이야!



-Hee


어머님 아버님 예쁘게 봐주세요❤️


과일을 보자기로 한 번 감싸고 문구가 써진 리본까지 붙여진 용도가 확실한 과일바구니. 값의 절반은 리본 값이 아닐까 의구심이드는 비싸고 조그마한 과일 바구니를 내 돈 주고 사려니 현타가 세게 오는데, 이게 결혼인가 싶다. 이미 결혼 계획 다 세우고 준비하는 와중에 조금 비싼 선물 주는 이벤트로 전락해버린 K 프러포즈 마냥,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돈과 가치를 비교하게되는 순간들이 앞으로도 매 순간 찾아올 것이다.


부모님 인사가 첫 시작이라 마음이 조금 약해졌다. 남들 다 하는 거라고 하니 안 하기도 애매한 찝찝한 마음에 망고 세 박스는 살것 같은 값에 겉만 번지르르한 과일 바구니 하나 사들고서 지영이 부모님을 만나러 간다. 집 한 채 해갈 능력이 없으니 자연스레 위축되는 와중에 바구니가 마침 부적같이 느껴진다. 예쁘게 봐달라며 건넸으니, 웃는 얼굴에 침 뱉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외가 식구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당신을 무시하는 말들에 기분이 나빠져 결혼 안 하겠다면서 뛰쳐나갔었다던 아빠는 그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빠는 과일 바구니를 안 사 가서 그랬을까.



-Ho


과일 바구니를 보면 풍요를 저장해 둔 창고 같다는 생각을 한다. 차곡차곡 빈틈없이 쌓여있는 것이 무너뜨리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다. 과일이 생각나는 저녁 괜스레 하나 꺼내 먹어 볼까 싶다가도 둥근 것들이 쌓여 온전히 탑이 진 그것을 보면 왠지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다. 나라는 존재는 결국 나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 없어져도 티 안날 것 같은 귤 같은 것을 까먹는 것으로 소심한 시도를 시작한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빼먹다보면 영원할 듯 단단해보이던 피라미드가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소고


2021년 10월 10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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