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사백 네 번째 주제
01.
그런걸 좋아했었어
날 세운 네 모습 뒤에
작은 손을,
허물어진 벽 뒤에
가녀린 속내를,
그런 나약한 이면을
좋아했었어.
딱 그만큼만.
02.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다.
고작
겨우
이깟
이런 단어들은
결국 나를 깎아먹는 그림자가 된다.
상대방에게 뱉는
고까운 단어들로
대단할 것 없는 내 인생까지
묶어서
구석에 처박을 필요는 없는 일이다.
03.
30대가 되고 나서
돌아보면 대단한 어른일 줄 알았다.
어른이라는 단어는
그쯔음엔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인생의 대단한 고민과
여러번의 고배를 마시고
삶의 닻을 올린 어른.
우리가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 내일 먹을 점심 메뉴일 줄.
누가 알았느냔 말야.
여즉 나는 껍데기만
어른인척 밀려난
철부지였는데.
-Ram
1.
누군가에겐 너무 당연한 것인데, 고작 그것들 중 하나를 겨우 해준 후 생색냈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런 네가 드디어 바라는 것을 해냈다니. 앞으로도 항상 한결같았던 그 모습 그대로 절대 변치 않길 바라고 바란다. 늘 불만이 가득한 채로, 뭐라도 변화가 있거나 변하려고 한다면 거부반응을 잔뜩 보이고, 항상 지나간 것들을 후회하면서, 그냥 그저 그렇게 살아. 그 순간 나와는 달라서 재밌었다고 느꼈지만, 결국 투덜거림으로 꽉 찼던 생활을 했던 사람아.
2.
내가 예약한 오지은의 노래가 흘러나오자 술에 취해있던 우리 세 사람은 신나게 떼창을 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마음처럼 느껴졌었지. 그렇게 나는 그들과 친해졌다고 생각했지만 그 후로 셋이 다같이 모이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친해보였던 남은 그 둘도 결국엔 멀어졌다지. 난 그때 너희들이 참 좋았어.
-Hee
처음에 큰 파도를 만나 선두가 들썩일 때마다 놀이기구라도 탄 것 마냥 환호성을 내지르던 사람들이 몇 분 뒤엔 잠잠해졌다. 운항 허가가 겨우겨우 떨어진 날씨에 울릉도 가는 배를 탄다는 것은 세 시간 넘게 내릴 수 없는 아비규환의 바이킹에 올라타는 것임을 늦게나마 깨달은 것일 테다. 숨을 씨익 씨익 내쉬며 호흡에만 집중하는 사람들. 기도하듯 고개를 숙인 사람들. 점심에 먹은 것들을 열심히 멀미 봉투에 게워내는 사람들. 우욱 하는 소리와 온갖 음식물이 뒤섞인 역겨운 냄새들.
화장실을 가려다 크게 들썩이는 선체에 넘어진 할아버지는 참지 못하고 토사물을 바닥으로 쏟아냈다. 왜 선체 바닥을 카펫으로 해두었을까. 시큼한 냄새가 잘 빠지지도 않을 텐데. 멀미를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드러눕는 사람들이 많아서일까. 눈을 한참 꼭 감았다 뜨니 어느새 다른 사람을 밟게 될까 봐 한 발자국 내딛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선체 바닥에는 시체처럼 누워 있었다.
괜히 울릉도에 가자고 했을까? 놀이기구라면 질색하는 지영은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눈을 꼭 감고 손으로 귀를 접어눌러 막은 지영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절반 왔어, 이제 삼십 분 남았어, 곧 도착이야, 근데 왜 섬이 안 보이지? 포항에서 울릉도까지는 세 시간 조금 넘게 걸린다기에 시계를 보며 열심히 어르고 달랬는데 출발 세 시간째에 배는 너울성 파도 덕에 울릉도까지 고작 절반 정도를 나아갔을 뿐이었다.
-Ho
전쟁같은 기간이 끝났다. 나는 무조건 쉬겠다 다짐하며 매트리스 속에 몸을 파묻었다.
허리가 아플만큼 늘어져있었다. 도저히 잠이 오지 않을 만큼 잤다. 배가 고플때까지 버티다가 가장 만만한 옷과 슬리퍼를 신고 식당을 찾는다. 오늘은 중식이 좋겠다.
”간짜장 하나 주세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맛있게 볶인 양념과 생 양파 춘장 반찬거리가 놓인다.
큼지막하게 썰린 김치를 한 입에 넣고, 한 번 볶여 윤기나는 자장면을 휘휘 말아 한 입에 넣는다. 노오란 단무지를 반달 모양으로 베어 삼킨다.
한 번 씹을 때마다 양파의 산미와 자장의 고소한 맛이 코끝을 쏜다.
밥이 좀 들어갔다고 그제야 주변 사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배달 주문을 받는 소리, 웍이 달그락거리며 돌아가는 소리, 기름에 무언가가 튀겨지는 소리.
옆 방에서는 중국집 애기들이 빨려들어갈 것 처럼 유튜브를 보고 있다.
“이따 배달하는 오토바이 태워줄꺼야?”
”응 그러자.”
“안돼.”
아기와 아버지, 어머니가 잠시 실랑이를 벌인다.
어릴 적 아버지가 이발소를 다녀올 때에 가끔 간짜장 하나를 시켜드셨다.
그가 홀로 시간을 보내는 몇 안되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더 좋은걸 먹지 그러냐는 나의 질문에 아버지는 “나는 이거면 충분해.”라며 크게 웃음지었다.
요즘엔 나도 이거 하나면 족하다.
나는 그의 식성인지 삶의 모습인지를 닮았는지 모르겠다.
무엇하나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인데, 다시 만들 수 없는 풍경이다.
-소고
2021년 10월 3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