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사백 스물 여섯 번째 주제
제법 쑥스러운 자리였다.
자리를 깔아주면
귀 끝까지 빨개지고야마는
나로서는
어지간히 부담스러운 자리였다.
나를 나로만 보여주는 곳은
어디에서나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나라는 자체가 여전히
어색하고 불온전한 존재라서
그렇다.
이름 세글자 뿐인 사람이라서
어떠한 대단한 업적 없이
그저 그런대로 살아온 나라서
그렇다.
그렇게 나를 부르는 자리는
어떤 말을 꺼내야 할까,
고민이 많아지는 밤이다.
-Ram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무모하기 짝이 없었던 그 시절, 깎이지 않은 상태여서 누가 봐도 꽤 독특했었을 당시에 조심스럽게 다가왔던 친구. 당찬 포부가 담겨 한 마디, 한 마디 자신 있게 내뱉던 이야기도, 듣다 보면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어서 실소가 터지는 이야기도, 차마 그 누구 앞에서 꺼낼 수 없었던 이야기들도, 모두 경청해 주며 같이 웃고 울던 시간들을 보내고 나자 어느 순간부터 서로를 가장 친한 친구라고 당당하게 소개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한 점이 있다. '끼리끼리', '비슷한 사람끼리 모인다'라는 말이 있듯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나와 이 친구는 매우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정 반대의 성향을 가졌다고 해도 무방하다. 서로 추구하는 이상향도 달랐고, 자체의 분위기나 사람을 대하는 스타일, 심지어 옷을 고르는 센스까지 달랐다. 서로 좋아하는 것들을 말하다 보면 그 친구는 내게 어떻게 그런 것을 좋아할 수가 있냐며 (예를 들어 민초..)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그 상황이 웃겨서 그냥 껄껄 웃어버렸다. (다시 말하지만 민초는 죄가 없어..) 그래도 다행인건 마음의 결이 맞지 않으면 서로에게 지치거나 충분히 부담을 느끼거나, 재미가 없거나 흥미가 없을 수도 있었지만 우린 서로에게 관심이 많았고, 궁금한 점도 많았다.
미친 듯이 탐독을 갈구하던 시절엔, 책을 보다가 좋은 글귀를 발견하면 사진을 찍든, 글귀를 한 글자 한 글자 적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일 먼저 보내주었고, 괜찮은 카페나 식당을 우연히 알게 되면 가장 먼저 가자고 건넸다. 그 외에 함께 공감하거나 서로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전시회, 공연, 원데이클래스 등을 보기만 하면 바로 링크를 보냈고, (친구가 함께한 덕분에) 나조차 평소 가보지도 않았던 동네나 장소를 향해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나는 누가 들으면 별것도 아닌 시시한 부분이라도, 그 시시함조차 이 친구와 공유하고 싶었고, 큼지막한 해프닝들은 물론이고, 하늘이 너무 예뻐서 행복했다는 사소한 감정, 누군가가 무의식중에 베풀었던 친절로 감동받은 마음, 생각지도 못한 칭찬을 받아 머쓱하면서도 뭉클했던 순간, 누군가에 대한 소회까지도 마치 고해성사를 하기라도 하는 듯 그 친구에게 시시콜콜 털어놓았다. 그럴 때마다 이 친구는 한 번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고, 엄청난 공감력으로 그 순간만큼은 '제2의 나'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얼마 전엔 이 친구랑 이야기를 나누다가 대뜸 이 친구가 그랬다. 지난 10년 동안 서로를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많은 부분들이 자기한테 녹아있을 거라고. 그래서 그런가. 이젠 눈빛만 봐도, 표정만 봐도 어떤 마음인지 알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우리는 한 건물에서 층만 다른 상태로 가까이 살아도 봤고, '붕어빵 사왔는데 같이 먹을래?'라는 말을 건네며 식을새라 품 속에 꼭 껴안고 온 붕어빵이 식지 않을 만큼의 거리에서도 살아봤고. 서로 다른 나라에서 멀리 살아도 봤지만 '몸이 떨어져있으면 마음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인 것만 같다.
비록 다시 내가 비행기를 타고 6시간 이상을 가야 하는 먼 나라로 조만간 떠나지만, 우리는 매일같이 웃으면서 전화를 하고, 무슨 일만 있다 하면 카카오톡의 대화창을 부실 듯이 웃어 젖히겠지. 이런 순간들이 늘 고맙고, 많이 소중해. 내가 느낀 넌 한 떨기 꽃이라고 표현하고 싶지만 사실 넌 고작 한 송이처럼 연약해서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려버릴 것만 같아, 늘 강한 갑옷을 선물해 주고 싶은 사람이야. 비록 이젠 돈을 주고 흑역사를 생성하는 때가 왔지만, 그건 그거대로 귀엽게 간직하자.
-Hee
다정함과 가족. Ram을 생각하면 단번에 이 두 단어가 떠오른다. 아마 앞으로도 나에게서는 나오기가 힘든 주제의 글을 Ram은 정말이지 잘 쓰고, 나는 꽤 자주 그녀의 글에 감동받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과의 추억이 담긴 따뜻한 글을 보고 나면 자연스레 부모님께 전화를 걸고 싶어졌고, 깊은 고민이 담긴 글과 마음을 다잡는글을 보고 나면 덩달아 나도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고는 했다. 내가 투정과 한숨 섞인 글을 쓰는 동안 그녀는 쉬지도 않고 매주 누군가를 즐겁게, 아프게 만드는 힘이 있는 글을 써낸다.
얻어가는 것이 꽤나 많은 반면에 비슷하게라도 돌려줄 능력이 없어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많지만 오늘은 그녀의 글을 꽤 길게 읽어오고 있는 한 명의 독자로서 그저 감사하다는 말만 남기고 싶다.
-Ho
안녕하세요, 도란도란의 1/4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항상 좋은 글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Ram님의 글을 읽으면 얕지도 깊지도 않은 내천 위로 편지를 띄우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종이배에요. 어떤 말을 적어서 꾹꾹 접은 다음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종이에 떠나보내는 거에요. 누구나 한 번 배를 띄울 기회가 있다면 적을 수 있는 말. 그런 말을 읽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아닐까요. 아무래도 저는 잘 모르겠지요.
-소고
2022년 3월 6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