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도란도란 프로젝트 - 사백 스물 일곱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퇴사를 결정한 순간부터

마음이 간질거려 참을 수 없었다.


후련하지도, 슬프지도 않은

미묘한 감정 줄타기였다.


떠날 것에 대한 적적함,

쌓아왔던 것에 대한 씁쓸함,

새로운 곳에 대한 두려움,


그런 것들이 뒤섞여서

일렁였다.


떠나고 싶었던 마음,

아팠던 시간들이 발판이 되어

결국 새 자리를 만들었다.


나를 어떤 조직이 표현해주진 않지만,

내가 담긴 그릇이 무슨 모양인지는 중요했다.


나의 결정이

나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선택한 모든 것들이

다만 틀리지 않았음을

기대어 바랄뿐.



-Ram


1.

헤이즈의 쓸쓸한 목소리가 너무 잘 어우러지는 찬 바람에 낙엽들이 뒤섞여 흩날리고 있던 거리를 걸어가며 엉킨 고민들을 어떻게 풀지 생각하고 있던 찰나에 인생의 중요한 하나의 선택이라고 해도 될 만한 옵션이 나타났다. 그리고 나는 망설이지 않고 퇴사를 결정했다.


2.

괜찮은 안녕이란 없다.

등산 도중 잠시 벤치에 앉아서 숨을 돌리다 가볍게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리만큼 쉬운 안녕은 없다.

헤어짐을 고하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Hee



1.

제 갈 길 찾아서 다른 곳으로 떠나는 사람들을 축복했고, 정년을 다 채우고 후련한 마음으로 떠나는 사람들을 축하했고, 안타깝게도 정규직 전환이 안 돼서 마지못해 떠나야만 했던 사람들을 위로했다. 떠나기 전에 같이 식사도 하고 악수와 포옹을 하고 때로는 눈물을 글썽인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떠나보내는 사람이 점점 늘어날수록 그런 일에도 점점 무뎌지기 마련이라서 요즘은 누군가의 퇴사에 별달리 감흥이 잘 일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혈액 암 판정을 받고 한참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던 우석 선배가 느닷없이 출근해서 사람들에게 마지막이라며 인사를 건넬 때는 어째선지 눈물이 멈추질 않고 흘렀다.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서 그저 고개 숙여 인사만 건네는 내 어깨를 쓰다듬는 그에게서 위로를 줘야 할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 영원히 익숙해질 수 없을 것 같은 생경한 느낌이었다.



2.

대구에서 효상을 픽업해서 장례식장으로 올라가는 길에도 효상은 끊임없이 태영의 부고를 누군가에게 전했다.


“태영이랑 같이 알고 지낸 사람이 그렇게나 많았어요?”

“아니, 같이 일했었던 애들한테만 했어. 승인이, 대훈이, 영선이, 준혁이. 기억 안 나? 너도 같은 사무실에 있었잖아.”


이름을 들으니 흐릿하게나마 떠오르는 얼굴도 있었고, 이름마저 낯설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었다.


“퇴사자들끼리 무슨 모임이라도 있어요? 저는 퇴사한 사람 중에 지금 연락하는 사람 선배까지 포함해도 기껏해야 서너 명인데. 선배는 여태 꾸준히 연락 잘 하셨나 봐요”

“그냥 소식 몇 번 물어본 정도지. 그마저도 최근 몇 년 동안은 못 했었는데, 그래도 태영이 부고는 전해야지.”


먼저 연락을 잘 하지 않는 데다가 언젠가 하루는 몇 년간 연락이 없었던 사람들의 연락처를 죄다 지워버렸던 탓에, 태영의 소식을 하루 사이 열 명도 넘는 사람에게서 전해 들은 반면에 내가 소식을 알려야겠다고 떠올린 사람은 고작 두어 명밖에 없었다. 세상에는 효상 같은 사람도 있고 나 같은 사람도 있는 법이라지만 그날따라 태영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더해져 이런 내 성격이 유난히 모자라고 부끄럽게 느껴졌다.



-Ho


어딘가에 소속되어야만 나올 수 있다. 처음부터 없던 것으로부터 해방 될 수 없다. 해방은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니다. 소속됨으로써 느끼는 감정이 있다면 해소될때 느끼는 감정 또한 있다. 상태의 변화는 감정의 변화를 만들어내는데, 이것은 필시 유지된 상태에서 누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완성된다. 많은 사람들이 입사를 꿈꾼다. 밤을 새고, 경직도 됐다가,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다가 환호한다. 모든 이들은 언젠가 소속이 사라진다.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맺고, 어떤 형태로든 퇴사한다. 당신의 형태에 깃든 감정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우리는 그것이 끝날 때부터 소희할 수 있다.



-소고


2022년 3월 13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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