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도란도란 프로젝트 - 사백 스물 여덟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우리는 서로 싫어하는 마음이 없었다.

미운 감정도 없이 돌아설 때에

누군가 마음을 짓이기는 것만 같았다.


아무말도 꺼낼 수 없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가진 시간이 지금이 끝이라는 걸

느끼고 있었다.


당신을 좋아할 때에도,

난 그저 말없이 기다릴 뿐이었다.


기다리는 시간들에

사무쳐

그렇게 나는 선 채로 밀려나고

떠밀리면서 당신에게서 멀어져갔다.


여전히 그리워 하고 있다고,

좋아했었다고,

당신을 끝없이 아꼈다고,

말해야 했었다.


말하지 못했던

내탓이었다.



-Ram


어떤 말이라도 내뱉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생각해 봐도 내가 말을 내뱉는 순간 서로에게 상처될 것이 뻔했으니까. 그래서 그냥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담을 수 없는 말을 내뱉고 나면 그 뒤 상처들은 더 클 테니. 사실 어떤 말을 내뱉더라도 속이 시원할 수 없다. 영원히. 그래서 엄마랑 다투면 정말 속이 너무 상한다.



-Hee


코로나가 사무실을 휩쓸고 지나간 지 5일 차. 같이 근무하는 12명 중 9명이 격리당하고, 살아남은 셋이 근무하는 사무실은 지나치게 조용하다. 드문드문 한숨과 작은 욕지거리가 새어 나왔다가 짙은 적막에 희석되어 사라진다. 말 한마디 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바쁘기도 했고, 또 하필 말수가 적은 사람들만 남기도 했다지만 그렇다고 치더라도 심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조용한 사무실.


각자 세 사람분의 일거리를 나눠가지며 어떻게든 잘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월요일을 시작했는데 그 마음이 수요일부터는 다들 무너진 것 같았다. 코로나 음성과 양성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면 주저 않고 양성을 선택할 만큼 어려운 며칠이었다. 짜증과 억울함이 하루하루 커져만 가던 와중에 드디어 금요일. 퇴근 무렵. 숨막히게 조용한 사무실에 퇴근 방송이 울림과 동시에 말없이 속으로 쾌재를 지른다. 하.. 시팔! (세상에는 환희가 담긴 욕설도 있다.)



-Ho


말 없다는 개념은 말의 존재로부터 시작된다. 말이 없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말의 존재를 인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말이 없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말을 충분히 많이 소유해야 한다. 여기서 충분히 많은 말은 상대적이다. 어떤 사람은 열 마디가 충분하여 한 마디 뿐일 때 말 없음의 의미를 알 수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일억 마디 말도 충분하지 못하여 그것을 말이 없다 표현할 수 있다. 그리하여 말이 없다 라는 생각을 스스로 할 때에, 그 과부족에 대한 생각은 자신의 것이며 오로지 나의 마음 용량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말 없음에 대한 생각을 나눌 때에는 상대의 말의 정도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자신의 기준으로 말이 많아도 그것은 상대에게 부족할 수 있다. 한 없이 침묵하는 상대에 대하여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다. 둘일 때에 "말 없음"에 대한 기준을 잡는 것이 그 이상의 숫자와 대화할 때보다 더 어렵다. 둘은 균형이 팽팽하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의 현재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는 일념 아래, 말 없음에 대한 두 사람의 대화는 기준선이 양쪽에 모두 존재한다. 국경으로 치자면 내 국경을 한참 들어오고 나서야 상대의 경계가 그이면서 동시에 나의 영토는 상대방이 생각하는 그것보다 훨씬 더 깊은 토지를 침범하게 되는 것이다. 말은 생각의 일부를 전달하는 수단이다. 말을 않음으로써 생각 전달이 그쳤다 여길 수 있다. 그렇지만 말을 하지 않게 됨으로써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전달받기도 한다. 에로스적인 사랑이 사랑의 전부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죽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 사실인데, 그것은 에로스가 아니지 않냐"라고 되묻는 것처럼, 말을 않음으로써 사유를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편적이다.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일어나는 것은 말을 하지 않는 것 뿐이다. 말은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의 하나일 뿐. 말이 없다고 하여 생각이 전달이 멈추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말이 없음은 의지에 달려있다. 입을 열어, 글을 적어, 몸을 움직여 생각을 전달 하지 않을 의지다. 안 하는 것은 선택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말 하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말 하기를 포기하고 다른 것을 선택하기도 하고, 포기하는 행위 자체로 모든 것을 놓아버리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후의 행동과 관계 없이 말 없음은 그 자체로 말에 대한 의지 상실을 의미한다. 상실은 획득으로부터 오는 박탈감을 내포하기도 한다. 이것의 끝은 무언가 추락하거나, 사라지거나, 잔해가 남는 듯한 씁쓸함이 있다. 그러나 말 없는 이의 상실감은 선택에 의한 것이고, 선택한 이는 말을 포기할 때와 마찬가지로 획득에 대한 힘을 축적할 수 있다. 우리는 획득한 순간부터 상실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상실할 줄 알며 기다리는 것과 다시 한 번 올 획득을 생각하는 정신은 어딘가가 다르다. 그 어딘가의 균형을 찾고, 맞추고, 조절해보는 것이 사람인듯 하다.



-소고


2022년 3월 20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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