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도란도란 프로젝트 - 사백 서른 한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으레 MBTI를 묻곤 한다.


몇 년 전이면 혈액형을

맞춰보라는 둥

그런 이야기랑 비슷한 맥락인가보다.


성격유형을 묻다보면 가장 좋은 점은

상대방을 이해하기 좋다는 점이다.


아 이사람은 그런 타입이라서

그런 행동을 하는구나,

하고 말이다.


이해의 범주가 넓어지는 기분이다.


다만 고까운 기분이 드는 것은

그걸로 선긋기와 편가르기를

할 때이다.


이런 타입이랑은 잘 안맞는대,

라면서 '나'를 알아보기도 전에

노력해보지 않는 상황들,


이를테면 A형은 소심해서 싫어

같은 것들.


주변에 성향과 성격은 다른 것이라고 누누히 이야기한다.


나는 E의 성격일지라도

때때로 조용한 곳에서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P의 성격일지라도

필요에 의해 루틴을 만든다.


그저 그런 이야기들 말고


나는 상대방이 어떤 노래를 좋아하고,

무슨 이야깃거리를 꺼내고,

길을 걷다가 보이는 것들에

무슨 생각이 드는지,

사회 현실에 대한 의견이라던지,


잡다하고 사소한 모든 것들이

궁금하고 재밌을 뿐인데,


이렇다할 성격도

어떤 알파벳으로 묶여질지

요란한 요즘이다.



-Ram


그냥저냥 심리테스트 같던 MBTI가 세상에 회사 면접에서도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물론 사람들의 성향을 한눈에 파악하기 좋은 건 알겠는데.. 이게 절대적인(물론 그들은 절대적이라고 말하지 않겠지만) 지표가 될 줄이야.. 생각보다 MBTI의 파워가 세고 강해서 놀랐다. 안 그래도 엊그제 회식을 갔었는데, 한국인들끼리의 회식이라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MBTI를 묻더라. 친한 동생이 MBTI를 워낙 좋아해서 나보고도 해보라고 하길래 진즉 해놔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대화에도 못 낄 뻔. 사실 아직까지 해당 알파벳들이 각각 무슨 의미를 띠는지는 정확하게 잘 모르겠다. (맨 앞자리의 뜻만 대충 아는 수준...) 사실 내 MBTI도 외우지 않아서 주변에서 물어볼 때마다 아이폰 메모장을 켜는 사람이 바로 나.. 회식 중 한 동료 직원분은 나와 MBTI 중 1개 빼고 3개가 모두 같다며 매우 즐거워했다. 그리고 각 MBTI 유형을 의미하는 사람 유형까지 묻길래, (나는 내 MBTI 유형에 해당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이 안 나서 검색해 본 후) 어떤 유형의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했더니, '역시 그럴 줄 알았다', '그런 사람이었냐' 등등 각자 해석하고 싶은 대로 나를 해석했다. 거기에 난 딱히 더할 말이 없어서 '하하.. 그렇군요.'라고 하며 소맥잔을 들었다. 회식 자리에서 MBTI 이야기가 나오기 전 그 직원분은 내 성향과 자신의 성향이 매우 달라서 '어떻게 그런 마음을 먹을 수 있냐', '어떻게 그렇게 태연하냐' 등의 질문을 했었다. 뭔가 이 MBTI도 나중 되면 학연, 지연, 혈연처럼 MBTI연이 생길 것만 같은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Hee


검사 결과는 열이면 열 istj가 나오지만 istj의 특성에 내가 딱 들어맞지는 않았다. 어림짐작으로 나는 70퍼센트의 i, 65퍼센트의 s, 55퍼센트의 t, 60퍼센트의 j 정도로 구성된 성격이 아닐까. 그러니까 굳이 분류를 하자면 istj 이긴 한데, infp에도 결코 멀지만은 않은 성격유형. 어쩌면 애초에 나는 infp였었는데 정형화된 직장생활 동안에 istj 쪽으로 기울어버린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고등학생 때 받았었던 전문적인 mbti 검사 결과가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데도 한국인들 중에 몇 퍼센트 안 되는 유형이었던 게 기억난다.) Istj의 특징만큼 계획적이지 않고, 이성적이지 않고, 효율을 따지지도 않는데도 아무튼 간 istj라니. 하지만 내가 istj에 딱 들어맞는다는 사실을 지영을 만난 뒤에 힘들이지 않고 받아들이게 됐다.


지영은 infp다. estj의 요소가 단 1퍼센트도 없을 것만 같은 완전무결한 infp. 뭐가 됐든 티도 잘 안 내면서 누가 좀 알아봐 주길 바라는 관종. 지나가는 비둘기가 갑자기 불쌍해져서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울보. 오로지감정만 앞서는 원시적인 성격에다가 더해 게으르기까지. 지영은 임플란트 비용을 지원받지 못해서 민원대에죽치고 앉아 몇 시간이나 자기를 괴롭혔던 사람을 저주하고 욕하면서도 집에 가서는 그 욕쟁이에게 도움이될만한 사업이 또 없을까 공들여 찾아보는 사람이다. 나로서는 평생토록 이해할 수 없는 면면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 면면이 나의 istj적 성격에 확신을 준다.


Mbti 궁합을 보면 지영과 나는 만나서는 안 될 조합이 맞다. 나는 틀딱, 지영은 찐따. 연애 전부터 mbti 신봉자였던 지영 탓에 우리는 예언처럼 어떤 연애를 하게 될지 알고서 연애를 시작했다. 그 파국과 닮아있는 연애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나는 지영의 성격이 지랄맞다고 생각했다. 종일 불평에 고민을 늘어놓으며 사람을 질리게 했고, 도움이 될만한 방법을 제시해도 듣고 싶은 말이 아니면 지영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자주 우울했고, 그보다 더 자주 눈물을 흘렸고, 감정이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 내리락했다. 그런데 아마도, 지영이 느낀 내 성격의 지랄맞음도 만만치는 않았을 것이다.


그때는 곧 헤어질 것 같았는데, 오늘도 벚꽃을 구경하며 놀다가 기차 시간이 다 되어서 헤어지려는 때에 쉽게 발걸음이 내디뎌지질 않는 애틋한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비슷한 성격이어야만 잘 지낸다는 건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겠고, 연애를 하는동안 정반대의 성격이라도 같이 살아가는 게 그리 어렵지만은 않다는 것. 그 확신 하나를 공고히 해두었다. 그러고 나니 한때는 그렇게나 걱정스럽던 mbti 궁합도, 서로를 지랄맞게 느끼는 성격차이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인간을 고작 16유형으로 정의한다는 게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일 텐데 참 멀리도 돌아온 셈이다.



-Ho


필자는 MBTI의 아이러니가 있다. 서로를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 만들고 표현하는 인간 유형(MBTI) 이 결국엔 상대를 사회적인 포장지로 둘러싼다음 보기 좋게 쌓아두는 행위처럼 비춰지기 때문이다. “얘는 ENTJ 그룹, 얘들은 내가 아는 INTP 그룹…”같은 것이다. 결국 우리들은 MBTI를 말하면서 몰개성해지고, 가까워지려는 의도보다 더욱 멀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필자의 아이러니는 사고실험의 산물이다. 살다보면 돌아가는 행위가 가장 빠른 경우도 존재한다. 직선 거리는 이론상 가장 빠른 거리이지만, 그것이 섬이나 협곡처럼 되어 있어서 다리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때, 직선을 가로지르는 것 보다 돌아가는 것이 더욱 덜 고통스러운 경우도 있다. 처음 만난 사람과 10분만에 자신의 어릴적 상처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경험도 있지만, 어떤 사람과는 5년 간의 스몰톡 끝에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경우도 분명히 경험한다. 전자의 경험은 첫 만남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만 후자의 경험은 두고두고 인생의 깊은 맛을 느끼게 되는 소중한 사건으로 남기도 한다. 살다보면 삶의 이모저모가 맞아 떨어지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이 툭툭 놓고 간 퍼즐들이 너무나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완성되는 일을 겪기도 한다. MBTI의 아이러니가 머릿속에서 나온 차가운 공장의 모순이라면, 후자의 아이러니란 사람의 손끝에서 발생한 미세한 힘조절이 만들어낸 예상 못할 해프닝이다.


MBTI가 편견, 장애물이 되어 선입견으로써 동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MBTI 이후 발생하는 사건은 우리가 ‘상대에게 호기심을 갖고 있기’ 시작한 이후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MBTI가 그 사람을 판단하는 편견이라고 판단될 즈음 우리는 서로에게 더욱 많은 인내심(혹은 실망할 준비)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MBTI란 짧은 시간에 서로를 파악하기 좋은 교양있는 대화 수단이고, 서로에 대한 선입견을 통해 오히려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는 시간적인 완충장치를 확보하는 행위다. 나는 가끔 자신을 돌아볼 때 MBTI로 시작했더라면 더욱 서로를 깊게 알아갈 수 있는 리드 타임(lead time)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 같은 사람들의 얼굴들이 아지랑이처럼 뭉쳤다가 풀어지곤 한다.



-소고


2022년 4월 10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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