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사백 서른 번째 주제
내 그리운 것들은
다 그곳에 있다.
나의 가족,
나의 어릴적 때묻은 장소,
나의 친구와 나의 추억 그런 것들.
그럼에도 내가
꼿꼿하게 외지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그 때의 나를 마주보기 두려워서 인것같다.
연꽃잎에 둘러진듯
어릴 적 나는
쉽게 부서지고 무너지곤 했다.
약간의 생채기 만으로도
마음이 잔뜩 망가지곤 했다.
그만큼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을 사랑했었다.
고향에 내려갈때면
그 때의 공기와
그 곳에 남은 많은 것들을
현재에 묻혀보고야 만다.
숱한 향기들이 섞이고 섞여
지금의 나를 흔들곤 해서,
그래서 고향이
그리우면서도 어렵게 느껴진다.
그리움은 그 정도의
추억에도 쉽게 희석되고야 마니까,
나는 애써 외지인으로
꼿꼿하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Ram
계단에서 넷북을 들고 쪼그리고 앉아 가로등을 스탠드 삼아서 와이파이를 겨우 찾아 컴퓨터를 했던 그곳도, 인디안밥을 품에 안고 덩그러니 이불만 놓인 방에 들어와 안정감을 느낀 그곳도, 내가 다니고 졸업한 학교는 아니지만 모교 동아리방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애정을 가졌던 그곳도, 짐을 막 풀고 잠시 아파트 앞에 나와서 누군가에게 이별을 고했던 그곳도 모두 다 내 고향이었다. 이젠 찾아갈 수 없는 곳이 더 많아졌지만, 언제나 마음속에 아련하게 남아있는 장소들. 앞으론 어떤 곳이 그리워질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곳에 이미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이 곳이 바로 내 다음 고향이 될지도 모르겠다.
-Hee
1.
격리하며 일주일을 집 안에서 앓고 있던 사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고작 일주일 자리를 비웠을 뿐인데 일거리는 마치 두세 달을 방치해둔 것 마냥 위태롭게 쌓인 채 목을 옥죈다. 꽃이고 나발이고 아무런 생각도들지 않을 만큼 육중한 부담감이 밀려온다.
“아무래도 이번 주말에는 계속 출근해서 일해야 할 것 같아. 걸린 돈이 꽤 큰 사업이라 미룰 수가 없어.”
“그럼 올해도 꽃놀이는 같이 못 가겠네... 대체 왜 이렇게 살아야 해?”
(당신이 내려오면 일도 하고 꽃놀이도 할 수 있을 텐데, 그럴 용의까지는 없으면서 투정 좀 하지 마, 제발.)
“미안해. 벚꽃이야 내년에 봐도 되는 거잖아, 한 번만 봐주라...”
SNS를 보면 온통 꽃 사진이다. 벚꽃이야 집 앞에도 흐드러지게 피어있는데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이 없다는 이유로, 그 꽃 사진 대열에 끼지 못했다는 이유로 공연히 쓸쓸함을 느끼는 지영을 보며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내가 대체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는걸.
2.
토요일 퇴근길에는 차를 회사에 두고 집까지 걸어왔다. 코로나 전에는 회식을 할 때마다 혼자 걸어서 가곤 했었던 길. 낙동강을 따라, 생태공원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벚꽃터널을 걷는다. 평소에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던 길인데 딱 이 시기에만 사람들로 가득해진다. 삼삼오오 모여 걷는 사람들. 고개를 치켜든 채 천천히 걷는 사람들 속을 혼자 바쁘게 걸으며 느낀 소외감 덕에 지영의 짜증과 억울함이 쌓은 막막함도 소화된다.
부산 출장 생활도 이제 곧 끝이 난다. 그러니 이 벚꽃길도 올해가 마지막이 될 것이다. 얼마 전에 이사를 하며 고향을 완전히 떠난다는 마음에 묘한 서운함을 느꼈는데 그 마음이 다시 한번, 훨씬 더 거대하게 밀려온다. 가정이 생기고, 생활 터전을 완전히 옮겼으니 앞으로는 부산으로 돌아와야 할 이유마저 없어졌다. 그렇게 떠나고 싶었던 도시를 이제서야 완전히 떠나게 되었는데도 어째선지 상실감은 찾아왔다. 이 잔정 없는 도시도 고향은 고향이라고.
-Ho
마음이 부르는 곳이 고향. 그래서 더욱 마음을 다양하게 주어야 하고, 그렇게 마음 뉘였던 곳이 어느 날 문득 생각나면 고향.
-소고
2022년 4월 3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