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도란도란 프로젝트 - 사백 서른 세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주말에 집에 부모님이 다녀가셨다.


오시겠다는 소식에

사실 온통 날이 서 있었다.


응답하라 드라마 시리즈 중,

친정엄마가 방문한다는

전화에


연탄이며, 쌀이며, 화장품을

잔뜩 빌려서

잘 지내는 모양새를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그대로 떠올랐다.


부랴부랴 냉장고를 채웠고,

잔뜩 쌓인 쓰레기를 내다버려도

성에 차지 않은 채로


부모님이 오셨다.


문을 들어서는 순간마다

엄마는 방의 곳곳을 눈으로 훑었다.


서울살이 하는 딸이

어떻게 해놓고 사는지

무척이나 궁금해 하셨던 터라

묵묵히 안내했다.


양껏 돌아보시고 나서는

아빠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제 괜찮네.


엄마도 이제 걱정을 놓는다고 했다.

잘 꾸려놓고 사는 걸 보고

30년만에 처음 마음을 내려놓고

간다며 부랴부랴 떠나셨다.


내심 걱정으로 가득했던 것들이

조금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분명 조금은 레벨업한 기분이

들다가도

왜인지 내심 헛헛한 마음이 드는건지.



-Ram


평소 얼굴에 표정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 있다. 왜 저 사람은 표정이 저렇지, 왜 웃지도 않지 등등 여러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는데, 막상 곤경에 처하거나 황당하고 때론 화날 법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도 그냥 평소 그 표정 그대로더라. 원체 그 표정. 본래 그 표정. 그러다 보니 아무런 감정의 동요가 없어 보였다. 제길. 난 얼굴에 표정이 많은 편이라 감정이 그대로 얼굴에 비춰지는 편인데. 얼굴에 감정이 많이 드러나게 되면 때론 포커페이스인 상대를 만날 때 불리한 경우가 있다. 아무리 마인드컨트롤을 하고, 표정을 최대한 없애려 노력해 봐도 내 표정을 100% 감출 수가 없어서 언제 나아지나 하는 고민을 할 때가 종종 있다. 나도 최대한 이성적이(으로 보이)고 싶다고. 근데 있잖아. 내가 최근에 겪었던 경우들을 아무리 객관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여러 방면에서 곰곰이생각해 봐도 이런 경우엔 당연히 화가 나고 황당하다 싶은 게 맞는 것 같기도 한데?



-Hee


먼저 입사한 선배들을 제치고 승진하는 게 적잖이 부담스러울 것이라던 여러 우려들과는 달리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았다. 아무렴,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어쩌면 부러 기쁜 티 내지 않고 덤덤한 척했던 일이, 마치 승진이라는 게 없었던 일인 양 매일 아침 먼저 고개 숙여 인사하며 겸손한 척했던 일이 도움이 되었을지도. 아무튼 간 승진은 얼마간의 내적 충만함과 통장에 여유를 주었고 별안간 자취를 감추었다. 언제 다시 돌아오겠다는 인사도 없이.


고작 한 단계 올라간 레벨은 뭐라도 좀 나아졌다는 느낌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다시 처음부터 경험치를 모아야 한다는 지겨움을 숙제로 내주었다. 그러니 괜히 더 허탈해졌다. 오히려 못마땅하다는 듯 시비라도 걸어오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었더라면 확실한 실감이라도 들었을 텐데. 고작 이만큼을 위해 그렇게나 애를 써왔던가. 그냥 조금 더 마음 편하게 살았어도 좋았을 것을.



-Ho


네 발로 기어 올라야하고, 돌아보면 올라있는 언덕. 굳이 오르지 않아도 누가 뭐라잖는 것.



-소고


2022년 4월 24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접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