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사백 오십 아홉 번째 주제
나의 주변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다른 곳에
똑 하고 떨어지면
느끼게 된다.
언어도, 인종도 다른
어떤 곳에 내던져지면
나의 환경이 얼마나
포근했었던 건지,
피부로 깨닫게 된다.
나를 안아주던 환경,
나를 단단하게 해주던 말들,
그런 것들이
한 순간에 부정되고
새로워질 때,
그 때에야 비로소 알게 된다.
나를 에워싸고 있던 것들이
나를 오롯이 사랑한
것으로 생겼던 벽이라는 것을.
그리고 어른이 되어가면서
그 벽을 지켜 줄
사람이 희미해져가면
그제야 내가
누군가를 위한 환경이,
배경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Ram
천장 낮고 답답한 사무실에서 탈출한 뒤 한숨 돌릴 새도 없이 발리의 땅을 밟았다. 공항에서 한 시간으로 예상했던 짱구까지는 이 차선 도로라곤 볼 수 없는 발리의 골목과 엄청난 교통량으로 인해 거의 2시간 정도 차에 꼼짝없이 갇혀있다가 도착했다. 숙소에 캐리어를 던져두고 나온 짱구의 거리는 여기가 유럽인지, 호주인지 헷갈릴 정도로 로컬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려웠고, 대부분 벌겋게 타서 낮에 바다에서 선탠과 서핑을 즐기고 온 티가 팍팍 났다. 짱구의 메인 거리엔(처음엔 그냥 골목 중 하나인 줄 알았는데 하루에 만 오천 보이상 걷다 보니 내가 처음 걸었던 그곳이 바로 메인이었다) 가로수길에 즐비한, 아니 가로수길보다도 더욱 감각적인 인테리어의 편집샵들이 굉장히 많아서 의외였는데, 심지어 그냥 티셔츠 한 장에 한화로 기본 5만 원이 넘는 가격택이 붙어있는 곳이 대부분이라 자연스럽게 자본주의의 메카라는 수식어가 절로 떠올랐다. 그리고 밤이고 낮이고 할 것 없이 오토바이의 매캐한 냄새, 조금만 막혔다 하면 울리는 차량의 경적소리들이 가득 찼던 짱구의 거리는 그토록 좋아하던 테라스 자리를 피하게 만들었지만 원숭이들이 뛰어다니는 우붓의 골목을 더욱 아늑하게 만들었다. 원숭이 숲이 없었다면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싶은 우붓은 의외로 한국인들이 많았고, 가족끼리 온 여행자들, 커다란 배낭을 메고 온 백패커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붓 시장에선 짱구에서 본 티셔츠들을 절반 가격에 팔고 있었고 그 가격에서 최대 90%까지 깎아서 살 수도 있었다. 짱구보다 로컬 인들을 더 많이 볼 수 있었던 우붓의 거리엔 날마다 지정석 같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흥정을 하는 택시 기사들이 참 많았고, 로컬 음식들을 파는 와룽들은 생각보다 늦게 오픈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서 로컬 음식을 먹고 싶었던 내 계획이 무색해졌다. 하지만 의외로 맛있는 커피를 파는 카페들이 참 많아서 커피를 마실 때마다 행복했고, 짱구고 우붓이고 할 것 없이 친절 대회에서 1등 한 사람들만 고용한 듯 너무 친절해서 몸 둘 바를 몰랐던 숙소 직원들과 의외로 (그랩보다) 저렴했던 로컬 택시의 가격, 기대 이상으로 입맛에 맞았던 발리의 로컬 음식들도 모두 좋았다. 다음번에 또 발리에 가고 싶은 마음이 아직까지 남아있긴 한데, 그땐 아예 다른 마이너한 지역들을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발리 사진들을 정리하고 있다.
-Hee
2년 차 사회복지직 공무원의 두려움과 우울. 자연을 즐기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의 환경파괴. 대단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역겨운 이면. 어깨 부닥침이 반드시 싸움으로 번지는 악마들의 도시 인천. 환경을 주제로 글을 쓰려다가 인간에게 질려버렸다. 매주 부정적인 감정만 쏟아내는 것이 스스로 염려스러워 글을 하나도 다 완성시키지 못했다. 환경을 생각했을 때 나는 왜 추악함을 보게 되는가. 금방이라도 세상을 멸망시킬 것 같은 기후 위기가 발생하는 이유와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내 활자의 세계가 이미 좁을 대로 좁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또다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다.
-Ho
주변 환경을 차단하고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정리는 작은 집중이며 비움은 더욱 크지만 아직 작은 집중 활동이다. 야생에서 벗어난 순간부터 인간은 자신의 주변을 정리했고, 수집하며 집약시켰다. 우리는 흐트러뜨리기 위해 정리한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흐트러뜨릴 일 없게 흩뿌려진 인생은 더 정리할 일도, 더 만들 것도 없다. 결국 만드는 것이란 부수기 위함이며, 지식을 쌓는 일이란 잊어버리기 위함이고, 말을 않기 위해 말을 하는듯 하다. 누군가는 그렇게 자신을 흩뿌려놓고 고고히 죽음을 기다린다. 그렇지만 오늘도 누군가는 흐트러뜨리기 위해 무언가를 집어 쌓는다. 다른 이가 그것을 무너뜨리는 한 있어도 쾌적함을 이어주기 위해서.
-소고
2022년 10월 23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