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런"

도란도란 프로젝트 - 사백 일흔 아홉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나는 끝없는 물욕이 생겼다가도

금세 줄어든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멋진 커리어우먼 같은

수백짜리 가방도 들어야 할 것 같았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언젠가 드라마에서

거래처를 만날 때,

값나가는 가방이 중요한 장면을 보여주었는데,

그것대로 이해는 되면서도


삭아 없어지는 가방에

월급을 부어넣을 자신이 없었다.


물건이란 것이 내게

효용가치가 그저

소모품이라서,


긴 줄을 서서 사야하는

오픈런이 이해가 되진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들의 마음은 이해하더라도

내가 그걸 원하진 않을 것 같았다.


무엇이든 그렇게 갈망하고,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고 기다리며

그 기쁨을 한껏 취하는게

어디가 나쁘다는 건지 알 순 없다.


그래도 언젠가 저 긴 줄에서

발을 동동거리며 서 있을 내가 되어 있진 않을까?


붕어빵, 타코야끼 오픈런 쯤은

꽤 해보았으니

한다면 잘 해내지 않을까?



-Ram


한창 코로나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못살게 굴고 있던 2020, 말레이시아 정부는 락다운을 실시했고, 한 가구당 한 사람씩만 밖에 나가서 꼭 필요한 생필품을 사 오는 것 외 다른 활동들은 모두 금지한 적이 있었다. 모두가 패닉에 빠져있었을 때 백신이 나오면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한정적인 백신의 양으로 인해 말레이시아 건강 앱을 모두 다운로드한 후 거기서 자신의 기본 정보를 입력하면 마치 로또에 당첨되듯 어느 날 짠! 하고 언제 어디서 백신을 맞을 수 있는지 예약 알람이 울린다. 나 역시 내 정보를 입력하고 백신 예약 알람을 기다렸다. 한 일주일 정도 되니 백신 예약 알람이 왔는데, 시노백 백신이 예약되었다. 시노백보단 화이자를 맞고 싶어서 과감하게 백신 예약을 취소하고 또 다시 정보를 입력한 후 알람이 오길 기다렸다. 한번 취소해서 그런가, 일주일이 지나도록 알람이 오지 않았다. 괜히 한인 커뮤니티도 매일 여러 번 들락날락하고, 말레이시아 앱도 괜히 새로고침 해보고. 그러다 한인 커뮤니티에서 화이자 워크인이 된다는 글이 내 눈에 들어왔다! 따로 예약을 하지 않아도 하루 할당된 백신을 다 사용해야 하므로 백신이 떨어지기 전까지 그냥 워크인으로 방문하면 백신을 맞을 수 있다는 따끈한 소식! 당장 다음날 백신 오픈런을 하기 위해 일찌감치 일어나 부리나캐 준비하고 그 장소로 갔다. 약간 큰 실내체육관 같은 곳이었는데 정문 앞에 군인들이 쫙 서서 한 사람씩 신상을 체크하고 들여보내줬다. 조금 긴장된 마음으로 백신 맞으러 왔다고 하니 다행스럽게도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 주었고 원하던 화이자 백신도 맞을 수 있었다. 그렇게 첫 백신을 맞을 수 있었다.



-Hee


정말이지 갖고 싶은 물건이 있는데, 몇 날 며칠 새벽부터 매장 앞에서 줄을 서도 구매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면, 그냥 마음편히 포기해버리는 방식이 옳다고 믿는다. 그렇게까지 매달리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다. 그런 소비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삶에 염증을 발생시킨다. 나는 스스로가 넘쳐흐르는 물욕을 갖고서도 오픈런이라는 것을 시도할 의지를 품어본 적 없는 의지박약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어떤 안도감을 느낀다. 시답잖은 정신승리일지도 모르지만 이런 게 내 삶을 온전히 붙잡고 살아가도록 만들어준다.



-Ho


이번 주도 휴재합니다.



-Om


2023년 3월 12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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