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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끝"

도란도란 프로젝트 - 오백 여든 다섯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너는 알까,

내가 이 지긋지긋한 엉망의 관계를

억지로 여기까지 끌고 왔다는 사실을.


나를 왜 믿었냐고,

너를 왜 기다렸느냐고,

우리는 상처뿐인 말로

생채기내면서 슬퍼했지.


그 때가 지금도

나에게 한없이 슬픈 날이면서

아픈 날인걸 알까.


사실 우린 진작 끝났어야 했다.


내가 네게 싫은 소릴 못하게 된 순간부터,

네 눈치를 보던 나,

그리고 내 눈치를 보던 너,


우리가 우리가 아닌 사이로

지내던 날들,

붕붕 떠있던 거짓된 시간들이

그래도 행복했다.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난 같은 선택을 할거야.

내가 도망쳤다고 비난해도 좋아,

아니 조금 슬프겠지만 말야.


모든 슬픈 노래 가사의 주인공이 되어

매일을 울고 후회해도

끝은 변함없이 찾아왔을 것이다.


그렇게 될 줄 알았거든,

결국에 관계라는 게

야속하고 이기적이거든.


이런 끝을 바란 건 아니었어.

그럼에도 끝이 있을 줄 알았어.


그런게 관계의 끝에

다다랐다는 거니까.



-Ram


1.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원히 보지 않을 사람(들)이고, 곧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관계들은 일주일 전, 한달 전의 나를 비웃듯 기약 없이 이어져 가게 되었다. 반면 나랑 평생 알고 지낼 것 같았던 사람(들)은 인연의 끈이 허무하게도 쉽게 끊어져 버렸다.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 같은 일일까. 며칠 전 친구와의 대화가 떠오른다. 정말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고, 어디서 어떻게 이어지게 될지 모르니 어디서든 잘 해야 한다고. 근데 그게 말이 쉽지.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잘하는게 제일 어려운 일이다.


2.

지금은 연락을 하지 않지만 가끔씩 대화하고 싶다고 생각이 드는 대상이 있다. 그 대상과의 대화가 그리운 날들이 있다. 그렇게 끝을 내지 말걸. 아니 끝을 맞이하도록 두지 말걸 그랬나.


3.

관계를 이어가려면 에너지가 필요한데, 그 에너지는 체력에서 나오는 것 같아.



-Hee


몇 달 전부터 잡힌 약속을 취소하고 다음 주말 부산에 간다. 아빠의 얼굴 좀 보게 내려오라는 말이 비장하게 들린 탓이다. 나 또한 비장해야 할 것만 같은 마음이 된다. 아빠의 마음이 많이 약해졌다. 혼자서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게 된 순간부터였는지, 시야가 또렷하게 보이지 않게 된 순간부터였는지 잘은 모르겠으나 부쩍 느껴진다. 끝을 준비하려는 것이.


지영이 아직까지는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는데, 무시하고 2세가 생긴 것을 아빠에게 말했다. 아직 성별조차 알 수 없는 내 자식의 존재가 아빠에게 약간의 기쁨이라도 줄 수 있을까 봐서. 그렇게나 보고 싶어 했으면서도 끝내 태어나는 것까지는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에 산통이 다 깨졌지만.


사람이 죽는다고 관계가 끊어지는 건 분명 아닐 텐데, 아빠의 삶을 마무리하는 모습에서는 자주 그 끝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는 흔적이 보인다. 어쩌면 죽은 사람과의 관계를 끝난 게 아니라며 붙잡고 있는 것이 산 사람의 욕심일 뿐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본격적인 모습이다.


삶과 죽음이 갈라놓는 그 분명한 단절에 대해 자꾸만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순간이 나에게도 찾아온 것 같다. 배신감과 슬픔에 잠긴 미련한 자식으로서 아빠의 준비를 도울 수는 없더라도 나 자신의 마음을 다잡아 놓고 이 다음에 찾아올 무엇들을 대비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자주 울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해야 할 일을 이어서 해야겠지.




-Ho


흔히 이야기하는 손절을 해본적도 있고,

당해본적도 있다.


누가 무엇을 잘못했다기 보다는

그냥 관계의 유통기한이 다 되어서인 거 아닐까?

그 관계가 소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력하지 않은것 이겠지.

그래서 인지 몇 없는 남은 인연들을 잘 돌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이


2025년 3월 23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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