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육백 열 번째 주제
20살이 되고 나면
인생의 선생을 골라야만 한다.
아니 찾아가야만 한다.
늘 주어지는 대로 배우다가
갑자기 인생을 선택의
연속으로 바꿔야 하는 부분이
당혹스럽기만 하다.
가끔 단단한 친구에게서
혹은 동생에게서, 선배에게서
여기저기 배울 것들을 찾아내곤 하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그사람을 마음 속의 선생님으로
두게 된다.
그사람의 의견이 궁금하고
선택이 궁금하고
그런 생각을 엿듣고 싶어진다.
어릴 땐
그런 사람들이 파다했는데
내가 눈을 닫고
귀를 닫고 나니
옹졸해진 속 탓에
선생님이 줄었다.
배우고픈 의지는 줄고
가르치고픈 얍삽한만 늘었다.
부족함을 내비치면 안 될것 같은
자존심에 더 그렇다.
이러다 아무도 나를 무엇도
알려주지 않는 무지랭이가 되면
어떻게 해야할까!
내 마음속 선생님들을
계속 돌아봐야지
지켜보고,
고견을 여쭙고
그렇게 살뜰히 배워야지 했던
시간을 잊지 말아야지.
-Ram
1.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양과 질은 상대적이지만.
결국 잘 흡수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하다.
2.
아, 왜 강남에서 그녀를 생각하지 못했던 걸까.
나의 세 번째 영어 선생님이었던 그녀는 지금 강남에 있다.
연락을 자주 하는 것도 아니고,
소셜미디어에서도 요즘 자주 보이지 않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나를 대하는 그녀를. 내가 생각하는 그녀를.
언젠가 다시 만나고 싶다. 꼭.
-Hee
십여 년 전에 친구와 오랜 시간 주고받은 편지를 천천히 읽어보며 그 예전의 나에게서 많이도 배웠다. 언뜻 보아도 지금보다 더 성숙해 보이는 사유의 과정, 마음의 온도, 삶에 대한 책임감과 열정, 취향에 대한 탐구. 그 모든 과정을 거쳐서 어째서 지금의 내가 되었을까, 의문이다.(대단히 실패한 현실과의 타협..)
출산을 두어 달 앞둔,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어른이 되고 싶은 시기다. 어린 나를 통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통해, 앞으로도 선생 삼아 배워갈 게 많다는 사실이 꽤 든든하게 느껴진다. 현실은 도서관에서, 서점에서 육아 바이블 같은 책을 막막하게 펼쳐보는 일만도 꽤 벅차지만. 일단 오늘은 밤을 선생 삼아 시원하게 뛰며 명상의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뭐든 해보면서 배우는 게 습득 속도가 빠른 편이기도 하고, 하루하루가 가는 게 아쉬운 계절이니 말이다.
-Ho
내 인생에 여러 선생을 만났지만 그 중에서도 기억 남는 한 사람이 있다.
고3 때 담임이었던 정선생.
그 사람은 여학생에겐 물건을 집어던지고 남학생에겐 머리를 때리는 등 양아치짓과 허세로 둘러쌓였다.
요즘 세상에 나올 수 있나 싶은 말도 안되는 행동을 종종 했는데 어떻게 여태껏 학교를 다닐 수 있었는지.
아, 머리는 똑똑했다. 교묘하게 학생들을 괴롭혔고 엄청난 폭행은 아니었기에 늘 문제삼지 않고 넘어갔었던.
문제는 정선생만의 것이 아니었다.
고3 시절은 전혀 좋은 기억일 수 없다.
학우들은 조금 떨어진 친구를 놀리고 비웃었다.
한 학우가 놀리면 다른 학우들이 따라서 웃는.
나도 웃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기괴했다.
그 애들이 사람같지도 않은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나는 그때 모든 게 꼬여있었다.
그럼에도 그게 얼마나 잘못된건지 분명히 판단한다.
완전하게 정선생과 아이들은 잘못되어 있었다는 것에 확신한다.
‘죽은 물고기만이 흐름을 따라간다’
미국 속담이다.
모든 선생은 다 나를, 우리를 이렇게 가르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이게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이것만 정답이고 나머지는 실패라 생각한다. 직접 들었고.
나는 거꾸로 갈 것이다. 연어가 반대로 가는 것처럼.
순서가 뭐든 시기가 언제든 중요한 게 그게 아니라는 걸 나는 안다.
누군가 실패한 인생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 틀이 너무 답답하다. 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그 생각은 변함없고 잎으로도 그럴 것이다.
-NOVA
2025년 9월 14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