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육백 열 한 번째 주제
요즘 주로 그런 악몽을 꾼다.
어렵게 힘들게 헤어졌던 옛 연인과 싸우는 꿈.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쫓기는 꿈.
나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끝없는 두려움에서 도망쳐야 하는 꿈.
고통을 느낄 순 없지만
마치 어딘가가 부수어 질 것만 같은
그런 공포로 내달린다.
찾고픈 걸 찾지 못하고
늦어지고
쏟아지는 두려움을 안은
악몽을 꾼다.
꿈이라는게 거기서 거기 겠지만
나는 꿈 속을 헤메이는 때가 많아서
이런 꿈을 꾸고 나면
온종일 머리가, 마음이 어지러워진다.
꿈은 꿈일 뿐이지만
나는 이토록 자그만 마음 뿐이라
헤집어진 머릿속에서 허둥거린다.
그러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지고야 마는
그런 꿈을 꿀까봐
걱정하곤 한다.
나약하고 조악한 나의 마음이
일개 악몽에
그렇게 무너지고야 말까봐.
나는 또 그런걸 걱정하곤 한다.
뭐 현실에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겁쟁이면서 말야.
-Ram
요즘 어떤 관계에 대해 인지부조화를 꽤나 자주 느낀다. 내가 그 사람의 입장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나 표현들을 서슴지 않고 하는 모습에 아무리 흐린 눈으로 보고 싶어도 아니라는 생각이 꽤 강렬하게 든다.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과 해결하는 방식, 관점, 감정선조차 너무 달라서 쉽게 동조하기 어렵다.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 나가고 싶어도 자꾸만 흐린 눈을 해야 하는 상황들이 나를 괴롭게 한다. 자면서도 그 마음을 계속 갖고 있었는지 악몽이 되어 다가왔다. 마음의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내 소신대로 나아가야지. 내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해 흔들리지 말아야지.
-Hee
“이석원 씨 맞으십니까? 지금 댁에 계시죠?”
자다가 깬 석원은 통화를 건 사람이 경찰이라고는 생각도 못 한 채 전화를 받았다. 집에 있다는 말하자마자 초인종을 누르는 경찰. 순간 석원은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잠깐 생각했으나 이내 문이 부서지라 두드리는 소리에 곧바로 문을 열었다.
“신고받고 나왔습니다. 1시간 전 단구동 00가게 앞에서 음주운전 하셨죠?”
석원은 말문이 막혔다. 분명 단구동에서 음주를 하긴 했지만 차를 두고 집에는 걸어왔는데…?
“음주 중에 나와서 차를 이동 주차하시지 않았어요?”
주차장 입구를 30cm 정도 막았던 바람에 전화를 받고 나와 한 바퀴 정도를 전진했던 게 떠올랐다. 잠깐, 가게 안에 cctv는 있었던가? 대낮이라 가게 안에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는데 누가 신고를 했지?
순간 어떻게든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해야겠다는 유혹이 엄청나게 일었다.
“일단 음주 측정 좀 하겠습니다.”
술을 집에 와서 먹었다고 해야 하나? 이미 걸어왔다고 말했는데 이게 변명거리가 되나? 가게 cctv에 내 모습이 찍혔을까?
“혈중 알콜농도 0.058로 면허 정지입니다. 조만간 연락을 드릴 텐데, 그때 경찰서에 오셔서 상황 진술하시면 됩니다.”
소주병은 짝수로 맞춰야 한다며 억지를 부리던 춘재놈만 아니었어도, 내가 굳이 우리 집 근처에서 먹자고 우기지만 않았어도, 기어를 중립에 두고 손으로 밀기만 했었어도 걸리지 않았을 텐데. 신고한 사람은 어떤 억하심정이 있어서 나한테 그랬을까. 하필이면 승진 심사를 바로 코앞에 둔 상황. 집까지 찾아온 경찰을 보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아이와 아내.
막막한 상황이 매 순간, 심지어는 잠을 자는 동안에도 갖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소용도 없을 이런저런 가정들을 해보다가 가족의 얼굴을 떠올리며 흠칫 놀라 잠에서 깬 순간, 이 모든 게 그저 꿈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신에게, 아버지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
-Ho
나에게는 특이한 점이 있다
행복할수록 잠을 안자고 스트레스가 많을수록 잠을 많이 잔다
몸이 점점 피로해질 때는 기분 나쁜 악몽이 찾아오곤 하는데 피로도가 쌓일수록 악몽에 시달린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꿈, 누군가 나를 죽이려는 꿈, 세상이 종말하는 꿈 등 그 외에도 기억이 안나더라도 역겨운 기분으로 꿈에서 깨곤 한다
이런 꿈을 꾸다보면, 특히 스트레스가 극도로 많을 시기이다보니 꿈에서의 감정이 깨고나서도 그대로 남아있다
자고나서도 잔 게 아닌
잠자는 게 무서워지는 또 하나의 스트레스가 된다
그런데 사실 내가 진짜 악몽이라 생각하는 건 이런 꿈이 아니다
나에게 악몽은 행복한 꿈이다
너무 행복한 꿈을 꾸고 일어났을 때 현실을 마주하고 좌절하는 처참함, 불가능성들이 나를 두 번 죽이는 셈이다
그럴 땐 도피한다 다시 현실이 아닌 꿈으로
다시 그 꿈으로 들어가야 해
노력하면 가끔은 같은 꿈을 두 번 꾸기도 한다
진짜 현실은 따로 있는데
현실을 마주하는 게 버거워 게임으로 도피하는 것처럼 나도 잠으로, 꿈으로 도망간다
근데 지금은 두 눈 똑바로 뜨고 직시하고 싶다
마약이 왜 무서운 줄 아는가
마약을 하면서의 고통보다 마약을 끊은 현실에서의 고통이 더 끔찍하기 때문에
현실을 직시하는 게 얼마나 무서울 줄 잘 알지만 평생 환상 속에서 살고 싶지 않다
-NOVA
2025년 9월 21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