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예순 번째 주제
**도란도란 프로젝트가 텀블러 공식 한글팀 (http://hangulteam.tumblr.com/) 블로그에 소개되었습니다.
사실 작년 12월달에 소개되었는데 뒤늦게 알게되었습니다.. 하하하.
관심가져주신 텀블러 한글팀과 항상 읽어주시는 여러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텀블러 한글팀 블로그의 도란도란 프로젝트 소개글
http://hangulteam.tumblr.com/post/105616619557
앞으로도 도란도란 프로젝트는 자근자근한 이야기들로 공간을 채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번주, 60번째 주제부터 Ho가 도란도란 프로젝트에서 글을 이어갑니다.
Ho의 마음 속에 담긴 깊은 이야기부터, 길을 걷다가 스치는 소소한 이야기까지 모두 도란도란 프로젝트에서 읽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함께 오랜 인연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Ram, Hee, Cheol
“밤에 영화나 보러 가볼까?”
평범하고 특별할 것 없는 이 한마디가
아버지의 입에서 흘러 나온 것은
분명 놀랄 일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본디 그런 남자였다.
마음의 표현은 낯부끄럽고
필히 표현하지 않아도, 내세우지 않아도
당신의 마음을 내가 다 알 것이라는 믿음으로
묵묵히 뒤를 지키는 그런 남자였다.
그런 사람이었기에
다 큰 딸에게 데이트를 가자거나
예쁘다는 말 등은 아끼고 또 아꼈다.
고목나무 같던 아버지의 마음이 세월의 바람을 맞으며
슬그머니 유연해 진 것을 당신은
감정표현의 잎을 한 두 잎 떨어뜨리며 나타내곤 했다.
영화를 보러가자는 일반적인 데이트 신청에도
아버지의 머리 속에서는 수많은 고민과 망설임이 있었으리라.
아직도 어리광쟁이인 딸을 위해 먼저 다가오는
당신의 몇 발자국 이었으리라.
그 날 본 영화의 제목이 무엇이었는지,
얼마나 대단한 배우와 멋진 그래픽이 내 눈을
사로잡았는지는 그닥 중요하지 않았다.
딱딱해진 아버지 손을 잡고 사던 팝콘,
피곤한 하루 일과의 끝에 대형 스크린에 앉으니
몰려오는 졸음을 애써 쫒으시던 아버지의 옆모습,
영화가 끝나고 어둑해진 골목을 지나
집에 돌아가던 그 시간.
그런것들이 너무나 소중해서 잊혀지지가 않는다.
함께 영화를 보았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특별하고 소중한 것인지는
이따금 그 때를 떠올릴 때마다 먹먹한 가슴이 증명해주곤 한다.
아버지와 영화를 보러 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지금도 간간히 걸려오는 아버지의 전화 한 통에는
보고싶다거나 너무나 사랑하고 아낀다는 등의
풍부한 감정의 표현은 없다.
다만 밥을 무얼 먹었는지, 잠은 잘 잤는지 등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물음에도 나는 퍽 코끝이 시큰해지곤 한다.
-Ram
1.
CGV에서 파는 나쵸를 엄청 좋아한 적이 있었다. 따끈한 치즈소스에 무미건조한 나쵸를 찍어먹는 그 맛. 그 이후로 지금까지 나쵸를 좋아한다. 그렇지만 마트에서 파는 수 많은 나쵸과자들은 다들 양념이 너무 진해서 잘 사먹지 않게 되었다. 지금은 영화볼때 거의 먹을 것을 들고가지 않는다. 물이나 커피 한 잔이 전부인 것 같다. 영화관에 외부음식이 허용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뭔가 엄청 기뻐했는데, 뭐 지금 생각해보면 별로 내게 영향을 주진 않는 것 같다.
2.
영화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종종 영화보러 가기 싫어질 때가 있다. 상대방을 보며 대화를 더 많이 하고 싶다던지, 아직 하지 못한 말이 남아있을 때라던지, 무언가 상대방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을 때라던지, 서로 함께 있을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아 헤어지기 아쉽다던지 등등. 결국 영화가 그런 시간들을 잡아먹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3.
어떤 영화를 보든지 간에 나는 그 영화에 대한 아무 정보없이 보는 것을 선호한다. 스토리는 물론이고, 비하인드 스토리나, 감독이 누군지, 배우가 누군지 등등의 정보따위들 말이다. 그리고 클로저를 보았다. 왜 나탈리포트만은 험난한 배경에서 버려지고, 힘들고, 아프고, 그러면서도 이겨내려고 하고, 힘든티내지 않으려하는 역할들이 잘 어울리는 걸까. 그 후에 나탈리포트만이 어떤 영화를 찍었는지 전부 보지는 않았지만, 뭔가 레옹의 마틸다가 큰 모습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이건 내가 레옹을 엄청나게 많이 봐서 그런거겠지. 레옹도 그렇고, 클로저도 그렇고 굉장히 어려운 감정선을 지닌 배역들이라고 생각이 되고, 나탈리포트만이 어린나이에 이러한 배역들을 맡았다는 것에 괜한 걱정도 됐다. 각각의 배역에 빠져들어 연기를 하면 그 역할에 몰입되어 자신을 그 캐릭터에 내재화 시킨다는데. 그러면 도대체 어떤 자아가 버틸 수 있을까. 여러 감정선들을 겪으며 그녀의 자아는 어떻게 성숙되어지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역시 제일 쓸데없는 걱정은 연예인 걱정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생각하길 멈추었다. 아, 그리고 옛날 싸이월드 시절부터 사랑짤로 돌아다니던 그 나탈리포트만의 캡쳐가 이 영화에서 기인했을 줄이야.
4.아 정말 엄청 예전에 잠실에서 야구보고, 끝나고 셋이서 삼성역까지 걸어간 적이 있었다. 한창 야구볼 때라서 열정적인 응원 후에 걸어갔던 거라 그렇게 그 길이 멀 줄은 몰랐다. 지금 찾아보니 얼마 안걸리네.. 가서 저녁먹고 다같이 드래곤길들이기1을 코엑스에서 심야영화로 봤다. 푸하. 역시나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애니메이션이라서 그런가… 아무튼 8명 정도의 사람들과 함께 커다란 상영관에서 최대한 편한 자세로 본 기억이 난다. 그때 밍이 나한테 팝콘에 버터구이 오징어를 죽죽 찢어서 넣어줬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었다. 오징어의 꼬릿꼬릿한 맛과 향과 팝콘의 고소한 맛과 향이 섞이며 최고의 궁합을 자아냈었다.
5.그러고 보니, 나 중학교때 영화동아리였었는데. 어떤 영화를 봤는지 왜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 걸까. 그땐 딴 짓 하기 바빴나보다. 쿨쿨 잠자거나, 책상 아래 몰래 숨겨놓은 핸드폰 자판을 꾹꾹 눌러가며 아무 의미없는 문자메세지를 보냈었거나. 이제라도 영화가 대단한 것인지 알았기에 다행이다.
-Hee
물어본다.
“취미가 뭐에요?”
“영화나 드라마 보는 거에요, 그쪽은요?”
“나는 좀 특이한데, 글쓰기랑 춤추기에요”
놀랍다는 반응.
“인상 깊게 보았던 영화나 드라마는요?”
여기까지 오면 보통 자기가 보았던 영화들 중에 기억나는 것 몇 개를 둘러대는데, 이 부분에서 대충 상대의 수준을 알 수 있다.
나는 그 사람이 말하였던 영화나 드라마를 기억해둔다. 어찌되었든 내가 관심 있는 사람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이야기일 테니까. 대충 둘러댄 영화나 드라마일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나 역시 나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친 영화 몇 편이나 내가 썼던 글들 중 좋았던 글들을 추천해준다. 꼭 읽어보거나 감상해보길 바라면서 무엇인가 공감대를 형성해보길 기대해본다.
나의 글이 지독히 재미가 없기 때문이겠지만 대부분 중간에 포기한다.
가족들은 애초에 관심도 없다.
그렇지. 나는 아직 그토록 부족한 사람.
돈과 권력 그리고 빛나는 미모 같은 것들을 가져야만 소중한 이들로부터 주의 깊은 관심을 받게 되는 것일까? 돈과 권력이 존중의 필요조건인 것일까?
그저 본능 혹은 본성인 것일까?
우리는 때때로 어떠한 행동들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공동체에서 존중 받기 위해 그러한 사실들을 외면한다. (예를 들면 학업평가를 위한 시험을 위해 맹목적으로 암기하고 쉽게 잊어버리는 것. 예들은 정말 엄청나게 많지만 구태여 나열한들 무얼 할까)
단지, 나를 오롯이 채우기 위한 고민을 할 뿐이다.
그리고 그이가 말했던 영화, “다이하드”를 한 편 보고있다.
-Cheol
1. 영화에 숨어있는 모든 의미들을 낱낱이 알고서 순식간에 영화를 조각내고 싶었다. 매일같이 어두운 방에서 영화를 보던 나는 자연스레 영화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정말로 몇 없었던 그 때는 그 하나하나들이 너무도 소중했기 때문에 더 깊게 빠져들고 싶었고 나는 바보같이 날카로운 시선의 영화 평론가 흉내를 내려고 했다. 그저 영화가 그려내는 정서를 마음껏 받아들이고 캐릭터에 공감하면 될 뿐인데 말이다.
영화 자체에 대한 이해도 통찰력도 없이 떠들어대는 말들은 어느 순간부터 하나같이 ‘난 좀 달라'라고 소리내기 시작했고 그 걸 알게 된 뒤부터 나는 다시는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영화에서 내가 찾아내는 것들이 남들의 것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요즘은 그냥 웃긴 장면에서 하하흐히 웃고 슬픈 장면에서는 닭똥같은 눈물을 굳이 참아내지 않으려 애쓴다. 나는 아무래도 영화가 좋긴 하니까.
2. 맞닿은 무릎의 따뜻함이 간질거리던 머리카락 사이사이 스며든 꽃 향기를 만지던 시간 끝없이 조물조물했던 작은 손가락, 마디 두 어깨가 스치다못해 겹쳐져 한 덩어리가 되어버렸던 두 시간 남짓은 이를테면 팔베게 같은 시간
-Ho
2015년 3월 1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