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불명"

도란도란 프로젝트 - 육백 서른 두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알 수 없는 불안함이 계속

엄습한다.


우리 엄마는 어느날 갑자기

아팠다.


아니 아픔을 진단받았다.


원인은 알 수 없었다.


이유없는 질병에 우리는 모두

무너져내렸다.

일상도 미래도 모두 멈춰진채로

현재의 문제를 쳐내기 급급했다.


그런 와중에도 엄마는 엄마를 되짚었다.

뭘 잘못 먹었던걸까,

이런걸 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그런 생각들이 원인이 없는 병의

원인을 만들고 싶어했다.


이유 없는 청천벽력에 우리는

그대로 휩쓸렸고

지나갈 아픔에 그대로 노출되어

울고싶었다.


그래도 누군가는 현실과 싸워야했다.


그렇게 우리는 갑자기 쏟아진

일들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

그런 시간을 지냈다.


그리고 지금 잔잔해진 파도가

불현듯 불안해지곤 한다.


언제 저 불안이 우리를 집어삼킬까 두려워서,


기우일지 모르지만

나 스스로 그걸 막지 못할까봐

그런게 불안해지고야 만다.


아스라이 먼, 없을 이야기일지라도.



-Ram


일어나는 일들의 99.999%는 전부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날갯짓, 스치듯 마음을 훑고 지나간 한 마디, 짧은 순간이지만 강렬한 인상, 스쳐간 옷깃, 마음을 움직인 장면, 놓칠 뻔한 눈빛, 무심한 솔직함, 호르몬의 장난 등.



-Hee


언젠가 한때 잠시 살았었던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귀찮게 자꾸만 날 껴안고 배를 만져대던 인간은 나를 이곳에 내려두고 어째선지 잠시간 울먹이더니 혼자서만 돌아갔다. 몇 날 며칠 큰 인간 둘이서 싸우고 울고 난리 법석을 피우더니 아마 그 주제가 나의 거취 문제가 아니었을까, 이제서야 유추할 수 있게 됐다. 어느 날부터 나보다도 작은 인간이 하나 들어오더라니, 아마도 그들은 조막만 한 나의 영역까지도 필요했을까. 아니면 그간 내가 너무 안하무인격으로 요구사항이 많았던 게 이유였을까. 장거리 영역 이동을 그간 몇 번이나 해봤지만 그때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알 수가 없었다. 기운 빠지고 막막한 일이다. 다행인 일이라면, 나를 유난히 좋아해 줬었던 인간을 다시 만났다는 것. 그땐 분명 두 명이 있었는데 어째선지 지금은 한 명만 보인다. 둘이서 영역 싸움이라도 했었던 걸까. 한동안은 이곳의 대장에게 잘 보이려 노력하는게 좋겠다. 어쩌겠어. 잘 적응해서 살아야지 뭐.



-Ho


고양이를 보호소에서 첫 눈에 반해 데려왔고 고양이를 데려오자마자 많이 아팠다. 한쪽 뒷다리를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어디가 아픈지는 모르겠고 병원부터 무작정 예약했다. 솔직히 금액도 두려웠다. 동물병원 가면 30-50은 나오는 것 같았으니.


내 몸에 이동가방을 지니고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5kg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수의사 쌤 말은 이러했다.


뼈에 이상이 없고 고양이가 큰 통증을 느끼지 못하네요. 원인을 모르겠습니다. 무통주사를 놔드려보겠습니다.


엑스레이 비용조차 안받더라. 더 무서움이 찾아왔다. 원인없는 병이라니. 동물 병원 가면 다 해결될 줄 알았다. 호전은 없었고 이미 살도 빠지고 밥도 안먹고 겨우 와서 애교만 부리는 정도. 알고보니 고양이는 통증을 숨기는 동물이랬다.


주사의 효능을 별로 느끼지 못한 채 이틀이 흘렀고 병원에 재진하러 또다시 방문했다.


여전히 나아진 게 없다 하자


부작용으로 토를 할 수도 있겠지만 진통제는 먹여봅시다. 제가 계속해서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면 정형외과로 가야 할 것 같네요.


정형외과? 수의사한테 간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구나! 찾아보니 큰 병원에서는 외과/내과/수의사까지 나누는 듯 했다. 솔직히 말하면 비용이 가장 큰 걱정이었다. 그래서 제발 먹고 나아라 먹고 나아라 생각했다. 이미 내 생활비를 줄여서 용품에만 20을 쓴 터이니 큰 복병이었다.


고양이는 생각보다 회복 속도가 좋았다. 이틀치 약을 먹고나니 살도 다시 붙고 다시 온 집안을 뛰어다닐만큼 날로날로 빠르게 호전되었다.


지금도 수의사는 왜그런지 모르겠다고 한다. 원인은 그냥 짐작일 뿐, 십자인대 문제인지 바이러스 때문인지 나또한 예상할 수 없다. 모든 건 추측이고 아픈지 안아픈지는 고양이 자신만 알테니. 다만 문제가 해결됐다면 해결만 됐다면 원인이 중요한가.




-NOVA


2026년 2월 15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매거진의 이전글"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