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로강정은 아직도 오픈을 하지 못했다. 아파트 입구 상가 끝 핸드백을 팔던 자리였는데 내부 공사를 시작한 게 추석 전이었다. 상가 앞 은행나무가 물들고 은행알이 떨어져 고린내를 풍기고 잎이 지고 낙엽을 모아두는 커다란 구청 비닐봉투가 놓이고 그 봉투가 다 채워지도록 가마로강정은 문을 열지 못했다. 다가가 안을 들여다 보면 밖에서 제일 잘 보이는 곳에 주문과 계산을 맡을 법한 자리가 놓였고 바닥은 시멘트 그대로였지만 내부 도장공사는 다 마친 상태였다. 종이 박스와 페인트 통, 사다리 등이 을씨년스럽게 놓여 있었다.
소상공인지원금은곳간지키기를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는 기재부의선심에 달려있는 것일까. 늘공인 그들은 더 걷힌 세수 규모를 왜 몇 조원씩 줄여서보고했던 것일까.
<아프지마오약국>
아프지마오약국 매출은 지난달 대비 천만 원이 줄었다. 지출은 더 이상 줄일 데가 없다.
여러 요인이 있지만 가장 큰 건 동선의 단락(斷落)이라는 게 약국장의 진단이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수도권지역 상향 조정(아 길다. 숨차다)으로 인해 약국으로 직접 오는 출입구가 폐쇄되었고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곡소리 난다.
<공가>
공가가 늘어나고 있다. 5층 아파트 한 라인 열 집 중 일곱 집이 공가인 곳도 있었다. 나머지 집들도 11월 30일까지 이주한다는 축하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복개천 산책로 옆에 있는 아파트단지였다. '축 안전진단 통과'로 시작돼, 혼란을 가져오는 문구로 구성된 플래카드들이 순차적으로 내걸렸다. 통과했다는 말이괜찮다가 아니라 문제가 있으니 처리해야 한다는 뜻임을 이해하는 데 한참 걸렸다. 이런 어법 모순의 문구로 구성된 축하 플래카드가 순서대로 또 종류별로 다 내어걸리고, 드디어 마지막으로 조합원 이주를 축하하는 플래카드 내걸기까지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곳에 사는 사람들 중 다수가, 재산 가치를 이렇게 상승시켜준 대통령과 또 여당을 심판한다며 나선 사람들을 지지한다는 게 잘 이해가 되지 않지?그래서였나 처음 그 글씨를 보았을 때 80년 관악캠퍼스의검은색 건물이 떠올랐던 것은.
중앙도서관과 대학 행정을 맡은 본부가 들어있는 건물 외벽에 스프레이로 휘갈겨 쓴 독재타도, 민주항쟁 등의 글씨가 저렇게붉은색이었지 아마. 그곳에서 79학번 김태훈이 투신했다. 같은 79학번인 한 법대 출신 윤가는 자신을 정의와 공정을 지키는 부서의 수장으로 임명한 대통령에게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퍼부으며 골수 보수 야당의 대선 후보가 되었다. 칠흑같은 대학 시절을 보낸 세대의 모습은 하나가 아니다.
그 암흑기를 만들어냈던 자들이 있다. 12ㆍ12 군사쿠데타를 거쳐 5ㆍ18 민주화운동을 학살로 내몰아 권력을 쟁취했던자는 사과도 하지 않고 추징금도 내지 않은 채 최근 집안 화장실에서 쓰러져 죽었다. 그의 친구이자, 자신이 지휘하던 예하 부대를 빼내 서울로 이동시키는 위험천만한 짓을 벌이고뒤를 이어 대통령이 되었던 자는 며칠 앞서 죽었다.
<나무들은 어디로>
나무들은 이제 어디로 가나 "들에 핀 꽃들"처럼.
이 모든 말장남은 실은, 남아있는 나무들 때문에 시작한 글이다.
오래된 아파트 단지 안에는 늠름한 은행나무와 메타세콰이어와 벚나무와 단풍나무가 많았다. 재건축이 결정되어 축하 플래카드가 내걸린 마당에는 이제 곧 나무들만 남을 텐데 그 나무들은 모두 어디로 가나. 하남시에 있는 나무고아원으로 갈 수 있을까.
그냥 싹 밀고, 베어버리는 게 아마 훨씬 효율적이고 경제적일 것이다. 오래 끌던 재건축이 마침내 시작되고 보유하던 집의 재산 가치가 억수로 상승해 느긋하고 너그러운 기분이 된 사람들이 감상에 젖어서는, 놀이터 앞에 아주 잠깐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는 사진들을 내어걸기도 했었다. 여기 사람들이 살았구나를 느끼게 하는 사진은, 어쩌면 당연하지만, 찾아보기 힘들었다. 아파트를 집답게 만들던 아름드리 나무들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문학나무>
문학나무2021년 겨울호가 도착했다. 아직도 소설을 쓰는 사람이 있고, 그 소설을 심사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주차장이라 생각되는 곳으로 가 차를 세웠으나 그곳이 법당이었다로 시작하는 소설이었다. 윤후명이 심사평을 남겼다. 책은 곧바로 폐지를 모아두는 박스로 들어갔다.
재홞용을 거쳐 재생용지로 태어나면 나무 몇 그루는 살리려나. 아예 나무를 베지 말고, 종이로 책 만드는 일을 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