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의 역사가 컴퓨터나 메타보다 짧기 때문에 생긴 웃지못할 에피소드들이 있다. 전기차가 불이 났을 때 드는 기름이 소방차 한 대라는 기사도 있었다.
아파트 단지에 설치된 충전소는 입주민 전용으로 못박아 매우 폐쇄적으로 운영된다.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오면 아파트 주차장에서 충전할 수 있지만 사업장 부근에서는 충전하기가 쉽지 않았다. 앱에서 내 차 위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완속충전장치로 어떤 교회를 지목해주었는데, 평일(?)이라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는 견고한 자물쇠로 잠겨 있고 아래에 적힌 사무실로 연락하라는데 전화는 불통이었다. 대형 마트는 급속 충전만 가능했다. 그래도 얼마 전 여행길에 지인은 나를 배려하여 전기차 충전소가 있는 펜션을 예약하는 센스를 발휘했다. 앞마당 너른 주차장에 떡 하니 서 있는 충전소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어서 얼마나 좋았던지.
속 쓰린 개인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하이브리드 차량인 내 차의 번호판 바탕색은 파란색이 아니다. 파란색 번호판이 전기차 전용이라는 걸 알고 있는 유식한 사람들이 내 차를 오해하여 일어난 에피소드다.
어느 날 아침 충전이 끝난 차를 다른 곳으로 이동 주차하려고 지하로 내려갔더니 차 유리창에 메모가 한 장 붙어 있었다. "이곳에 주차하는 사람이니 ( ) 인성을 알 만하다" 어쩌고 하는, 거의 욕에 가까운 글이었다. 창피하여 수식어는 괄호 안에 넣었다. 창피하다고 한 것은, 같은 아파트 주민이라 내가 창피하다는 소리임.
얼마나 세상을 좁게 보고 있는 사람인지 알 만했다. 자기가 아는 게 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조금만 눈여겨 보면 하이브리드 차량 표식도 있고, 에너지절감장치 스티커도 붙어 있다. 뒤쪽에 주유구처럼 생긴 곳에 커플러가 꽂혀 있는 것도 볼 수 있었을 텐데. 자신이 드나드는 출입구 옆 편한 자리에 떡 하니 서 있는 차가 그냥 불쾌했을까. 그래도 그렇지, 아니 1동 차가 멀리 떨어진 3동 출입구 옆에 뭐하러 굳이 주차를 하겠는가. 분기탱천 그런 메모를 남기려면 전후사정을 잘 알아야지 이건 거의 인신공격이잖아?
관리사무소에 연락하여 3동 승강기 안에 안내문을 붙여달라고 했다. 주차장 충전소 자리에서는 파란색 번호판이 아닌 하얀색 번호판의 하이브리드 차량도 충전 중일 수 있다는 사실을. 내 휴대폰 번호를 남겨달라고 했으나 사과하는 전화는 오지 않았다.
충전 공간은 제한적이고 충전해야 할 차량은 많아지면 아무래도 다툼이 생길 수 있다. 세상이 달라지면 이에 따라 갖춰야 할 매너도 늘어나는 법이다.
충전 후에는 신속하게 차량을 다른 곳으로 이동해주는 매너도 필요하다. 되도록 다음 차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차할 때도 신경을 써야 한다. 나는 2시간이면 충전이 끝나기 때문에 밤까지 기다리지 않고 바로 충전을 한다. 오래 충전해야 하는 차를 배려하여 전기료가 비싼 한낮에 충전하기도 한다.
옆에서 충전하고 있던 내 차를, 내가 보는 앞에서 '문콕'을 하고도 태연한 표정으로 충전기를 꽂던 젊은 아기엄마의 차에는 나도 메모를 남겼다.
<아이를 태우고 내리는 거 힘든 거 알지만 문콕했으면 최소한 미안하다는 말은 하셨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고보니 차에 붙이는 다양한 스티커들이 생각난다. 영어 [Baby on board]는 자동차로 여행하는 다른 운전자들이 주의를 기울이도록 자동차의 뒷창에 놓는 작은(보통 12cm 또는 5인치) 표지판으로, 차량에 아기가 있을 수 있으니 비상 사태의 경우 응급 요원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알고 있다. 귤이 회수를 건너 탱자가 되었나?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된 일인지 거의 협박조의 문장으로 바뀌었다. 이 안에 4대독자 있다, 까칠한 아이가 타고 있어요 등등. 장거리 운전자에게 웃음을 주는 요 정도까지는 애교로 봐주겠지만 아주 심한 표현도 많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쓸데없이 사진을 찍어 모아둔 적도 있었다. 자동차가 재산이나 신분 과시용으로 쓰이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하지만 필수품이고 소모품이라는 생각이 지나친 나머지 운전자의 인격을 드러내기도 한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듯하여 덧붙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