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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Nov 30. 2021

스마트소설)
그가 자신을 방어하는 방법

태어난 지 1년이 지나도 걸을까 말까 하는 연약한 생물 종인 인간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높은 나무에 올라가거나 굴을 파서  따위 주거 형태를  개발해내야 다. 몸에 옷을 입히고 방패를 드는 직접적인 방어수단을 마련하기도 다.


현대의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방어책을 마련하고 구사하게 되었다. 우리가 방어해야 할 것은 이제 그 엿날의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공격이 아니라 심리적이며 관계적인 공격, 가치지향적인 것이려나.


입사하자마자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은 사람이었다. 출생의  비밀, 친척의 비리, 한번의 이혼, 각자 자식을  두고 다시 재혼할 수밖에 없었던 늦둥이의 출생. 그리고 비행의 수준을 넘어서는,  공소시효 지난 어릴범행에 심지어 전과 사실과 그로 인해 지금 처한 법적 재무적 상황까지 모두.


나는 그가 그런 말들을 씨 얘기하듯 꺼내곤 할 때마다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무척 당황스러웠고 표정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몰라 애먼 서랍만 열었다닫았다 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일반적이고 평범한 사람들의 잣대를 당연히 나도 가지고 있다고 말해야 하나. 그래서 근무에 적절하지 못한 사람일까가 걱정된다고 솔직히  말해야 하나, 이런저런 궁리들이 떠돌았다. 아니면 차라리 굴곡진 한 인간의 삶을 대하는 작가의  시선으로 대단한 인생 역정에 경의를 표하고, 인생 까짓 뭐 있나요 까보면 다 소설의 주인공이죠 이런 너스레를 떨며 쾌활하고도 통 큰 선배의 포지션을 취해야 할까 생각도 했다.


근무 시간이 오버랩되어 잠깐 함께 있는 시간이면 틈나는 대로 자신의 그런 얘기를 신이 나서 늘어놓았다.

내가 '신이 나서'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비웃음이 결코 아니다. 말 그대로 그는 신나게 말을 했으니까. 그의 분위기는 뭐랄까 언제나 조증과 울증이 교차하는 조울증 환자 같았다. 어떤 날은 정반대로 내게 한마디도 하지 않고 기분을 통 짐작할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다가는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들어가보겠습니다, 만 했다.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가장 없고 질색을 하게 되는 태도는, 문자무지시를 내리면 답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이었다. 문자메시지 쓰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어서 궁금하거나 보고할 사항이 있으면 언제전화라고 했으나, 그래서 몇 번  전화가 오긴 했으나 시원찮았다. 오죽하면  내가, 나랑 말하기 싫어요? 내외하세요? 농반진반으로 쏘아부쳤을까.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고 태도도 공손했으나 그렇다고 시키는대로 고분고분하게 구는 사람은 아니었다. 퇴근할 때면 순진무구한 얼굴로 정말 꾸벅, 절을 하고 갔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건 나를 향한 게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뻘 되는 사입부장에게 하는 절이었던 것 같다.


백일 남짓 일하고, 이달  말로 그만두겠다고 한 게  보름 전이다.

지시사항에 대한 리액션이 없는 것에 몇 번 지적을 받은 터였다. 본인 말대로 매출이 너무 없어서 급여를 인상할 수도 없는 형편이라  매달리며 붙잡을 일은 아니다 생각됐으나 새로 사람 뽑을 여유도 없이 날짜 박아 그만두겠다는 건 철부지 어린애들도 안하는 짓이다. 다음날 얘기를 나누면서 내 복안을 말하고 의사를 타진했으나 이후로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딱히 계속 다니겠다는 뉘앙스가 있었던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제대  말년'의  개기는 냄새를 피우지도 않았다. 

그랬는데..... 월급날이 돌아와 급여 이체했다는 내 톡에,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로 자신의 퇴사통보한 게 오늘 아침이었다.


자신에 대해 말을 많이 했지만 정작 자신의 감정에 대해 한번도 말하지 않은 사람. 싫다거나 기분이 안 좋다거나 서운하다거나 화가 난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

그러면 보통의 사람들이  밝히기 꺼려할 만한 자신에 관한 어떤 사실들은, 먼저  나서서 드러냈던 사람. 마치 방패처럼 갑옷처럼. 그랬다. 그랬던 것을 이제 알겠다.

그의 방어법은 그것이었. 치부를 드러내고 보여주는 것으로 뭔가를 방어하는.


고슴도치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뒤늦게.

노가다가 편해요 하던 그가 숨기고 싶었던, 아니  지키고 싶었던 자신의 가장 한 살은 무엇이었을까. 

돈이 많이 필요해서 시골로 내려간다는 그에게, 나와는 대화하지 않겠다는 완강한 몸짓을  드러낸 사람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돈  푼뿐이었다. 물론 명분은 있었다. 멀리 있는 어머니 산소에 다녀오느라  저녁 근무가  힘든 나를 위해  그가 그날 번을 섰었다.

나는 울적하고,  불같이 화가  나던  처음의 마음을  누그러뜨린 채  연장근무 수당을 따로 보냈다.

  

'말을 하란 말이야 이 자식아.'


어쩌면 산에 불을 질렀다거나 하는 그 무용담들이 그리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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