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프지마오약국에는 특별히 더 많은 사람들이 온다. 평일에 너무 바빠 통증까지 미뤄놓고, 주말이면 더는 참지 못하고 찾아오는 것인가 하는 말도 안되는 분석을 하곤 한다.
험한 말을 하는 것으로 상대의 마음을 할퀴고 스스로는 우쭐해지는 인간 종이 있는가 하면 선한 사람들도 있다. 언제나 플러스 마이너스 그리고 그 합은 플러스다. 오늘도 아프지마오약국의 약사는 환자들에게 필요한 잔소리를 많이 하고, 그 오지랖으로 마감 무렵에는 늘 목이 아프다. 별점 4.3을 넘어서는 약국인 것도 그래서.
결산을 해보니 두 건의 결제 실수가 발견됐다. 가끔 있는 일이다.
동그라미 세 개를 찍지 않아 생긴 실수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단말기 화면에는 0과 00과 000이 있다. 추측하는 그대로다. 000을 꾹 누르지 않았거나, 눌렀다고 생각하고 확인하지 않은 채 결제가 끝난 것이다.
나머지 한 건의 범인(?)은 나였다. 가장 많은 실수를 하는 사람은 언제나 나다. 십 년이 넘었는데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것을 뭐라 불러야 할지. 돈을 우습게 안다거나 약을 주는 것에만 집중해서 그렇거나... 약사님이 수학은 잘하셨는데 산수는 못해서 그렇다고 하신 분도 있었는데 이런 말들도 사실 위로가 안된다. 이건 뭐랄까 습관 같은 것이다. 아직도 몸에 배지 못해서라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사람이 좀 멍청하게 여겨져서 씁쓸하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마감 시간을 훌쩍 지나 10시 25분쯤 왔던 여자 환자였다.
증상에 대해 오래 대화를 나눴고, 다니는 병원에 대한 불만도 내게 털어놨던 그 아가씨는 조금 전 전화를 걸어왔다. 카드사 전화를 어제 받았는데 바빠서 못하고 지금 하는 거라며 미안해 한다. 미안하기는요. 번거롭게 한 내가 미안하죠... 언제 시간 될 때 한번 나오시라 했더니 그냥 계좌이체 해드리면 안될까요 한다. 미안하고, 또 고맙지요 나야.
차액의 계좌이체는 즉시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휴대폰 번호를 알게 되고 이름(과 계좌번호까지^^)도 서로 알게 된 두 여자는 문자로 덕담을 주고 받았다. "다음에 또 뵐게요 약사님"을 끝으로.
그날 나는 밤 11시에 약국 롤스크린을 내렸다. 왜 그렇게 늦게까지 있었느냐고? 마감시간 10시가 지나 컴퓨터 전원을 막 끄려는데 고객센터 김여사님이, 지금 급하게 약국으로 오고 있는 환자가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물었기 때문이다. 내 대답은 언제나, 기다릴 테니 오시라고 하세요다.
부부였다. 기다려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면서, 그런데 오는 도중에 열린 약국이 있어서 샀다며 약봉지를 내밀었다. 필요한 약을 샀는데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아 일부러 온 것이었다. 더 추가할 게 없을까요, 하신다. 목이 아프고 쉰 소리가 나는 증상에 맞는 약이었다.
그 약사님이 약을 잘 주셨네요. 제가 더 드릴 것은 없어 보입니다.
그러면 저희가 뭐 영양제라도 사갈까 봐요.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선한 부부는 굳이 둘이 복용할 수 있는 것으로 하나 추천해주십사 했고, 활성비타민 성분을 포함한 비타민B군 제제를 드렸다. 약국의 마감 시간은 진작 끝났으니 나는 내 할일을 다했고 마트는 아직 폐점 전이라 한껏 느긋해져서 우리는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사람 사는 곳이다.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선한 마음이 있는.
내가 해준 따뜻한 말들이, 내가 했던 선한 행동이
나비처럼 세상으로 퍼져 나갈 것을
늘 나는 믿고 있지 않았던가.
11시가 넘었으므로, 12월 9일부터 시작된 선유고가차도 통행금지(여의도 방향은 진입금지다)에도 불구하고 그리 막히지 않고 집으로 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