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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Dec 28. 2021

손재주 없는 사람이 하는 일

나는 손재주가 없다. 그러니 발재간도 있을 리 없다. 

내가 할 줄 아는 건 공부 정도였다. 아, 오해는 마시길. 그건 그냥 내 정리정돈 강박증 같은 것의 산물이다. 머릿속도 정리가 안돼 있으면 참기 어려워서 달달 외우든 쥐어뜯든 깔끔하게(?) 정리했으니 비교적 시험을 잘 보았던 것뿐이다. 수행평가와 학종 같은 무지막지한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으니 다행이었(는지 불행이었지는 죽어봐야 알겠)다.


2003년인가 석사과정 논문 심사를 앞두고 택시바퀴가 내 발등을 지나가서 중대 앞 정형외과에 입원했었다. 2012년에는 유통법(?) 개정으로 실시된 강제휴무 첫날이라 모처럼 쉬게 되었는데 직원들에게 내 신용카드 들려 소래포구로 회식하라고 보내놓고 나는 손목터널 증후군 수술을 위해 입원했다. 정중 신경을 누르는 수근관을 터는 수술을 받았지만 이미 근육이 많이 소실된 터라 손에 힘이 없고 물건을 잘 떨어뜨린다. 3년 전에는 그래서 가위가 손에서 미끄러졌는데 무수리 마인드가 무의식적으로 발동해 나도 모르게 발을 내밀었다가 발가락이 부러졌다. 참고 지내다 성탄절 지나면서 통증이 너무 심해 병원 갔더니 골절이랬다. 딱 이즈음이었던 것 같다.


내 손발은 이렇게 주인을 잘못 만나 평생 고생이 심하다.


그럼 뭘 해서 먹고살지? 

손재주도 발재주도 더구나 천재도 없는 사람이 먹고사는 방법은 그저 잔머리다. 문학 그거 한 10년 해보고 포기한 것은 그래서. 약간의 재주와 욕심을 성실함으로 버무려 발표하는 작품집은 지구를 갉아먹는 쓰레기만 양산할 뿐이라 생각한다. 종이책 한권은 나무 몇 그루라던가.


"지금부터 향후 2,3년 간 발표하는 작품은 문제작에 오를 정도의 수준이어야 합니다."


지면을 부탁하려던 게 아니었다. 어떻게든 지면을 알아보고, 계속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야 한다는 조언을 따라 작품을 한번 보여줄 요량으로 의사를 타진하는 메일을 보냈던 것인데 내 후임으로 들어온 자의 답이 그랬다. 

그의 말은 죽비로, 예언으로, 때로는 악담처럼 아프게 나를 때렸고, 나는 내 주제를 파악한 다음 손을 들었다. 나는 소설을 쓸 수 없어... 마지막이 된 내 과목명은 <나도 소설을 쓸 수 있다> 였지만.


똘끼와 반듯함 사이에서의 방황을 진작 끝냈다.


따 놓은 라이센스가 있으니 약국을 할 기회가 찾아왔다. 작정한 건 아니고, 문학쪽으로 더 갈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던 시기와 맞물렸다고 할 수 있겠다. 시작했고, 십년을 넘었다.


더 쓰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학교를 나온 것을 후회하지 않듯.

그냥 나는 나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그러니까 일기를  브런치에 쓰는 셈인데 왜? 

그냥. 쓰고 싶으니까.

이게 나다.


한 페친께서,

"그래도 작가라는 사실은 존경스럽고, 제 글에 다는 댓글이라거나 독해가 섬세해 제가 엄청 감동을 받는 경우가 많으니 문청과 작가로서의 삶이 님도 모르게 주변에 따뜻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라는 엄청난 답을 주어 최고의 덕담이 되었다. 

따뜻한 영향이라니... 정말로 글을 배운 보람이 있다. 그렇게 배운 글을, 약국 POP에 들어갈 (홍보)문구 쓰는 데만 쓰지 않아 정말 다행이지 뭐야.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십시오. 

그대의 존재는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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