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자의 신앙 고백
살면서 꽤 여러 번 예수님의 사랑을 전달받았습니다.
이번 글은 무신론자의 신앙 고백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1)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제가 다닌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미션스쿨이었습니다.
매주 채플 시간이 있었고, '종교'라는 이름의 성경공부도 했습니다.
6년의 반복 덕분에 웬만한 찬송가는 모두 외우게 됐습니다.
귀에 익은 노래에 입이 저절로 움직일 정도입니다.
가장 많이 부른 찬송가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매달 반에서 생일파티를 했는데, 생일 당사자를 위해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커다란 싸구려 케이크를 앞에 두고 노래 한곡을 불러주고는, 50조각 낸 케이크를 나눠 먹는 게 월례 행사였습니다.
"당신은"으로 시작되는 그 가사도, 코스트코 케이크도 그저 지겨울 따름이었습니다.
노래는 그럴싸하게 불렀지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말에는 도무지 공감이 안 됐습니다.
저는 그렇게 느낀 적이 없었으니까요.
아무 감흥도 없는 가사가 가식적으로 들릴 뿐이었습니다.
(2)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믿니?"
수능을 마치고 첫 남자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때만큼은 정말 제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은 기분도 들었습니다.
어느 날 남자친구의 어머니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믿니'?"
저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의로라도 끄덕일 수 있었을 텐데 그땐 그러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아니'?"라고 물으셨으면 "네"라고 답했을 텐데요.
6년 동안 배웠으니까요.
믿음도 예의도 없었습니다.
그땐 그랬습니다.
(3)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2004년 대학에 입학해 캠퍼스에서 '유정 언니'를 만났습니다.
어쩌다 보니 '유정 언니'와 매주 화요일 이메일을 주고받게 되었습니다.
언니의 마지막 메일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요즘 언니가 생각하는 말씀은 잠언 8장 17절 말씀이야.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유정 언니'는 참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눈빛도 글도 외모도 빛나는 사람이었습니다.
'유정 언니'가 오랜 시간 뒤 불현듯 떠오른 건 의외의 인물 때문이었습니다.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에 나온.
언니가 다니는 교회가 어디인지 모른 채 헤어진 건 차라리 다행이었을까요.
때늦은 답장을 보내보았지만, 더 이상 이메일 주소는 유효하지 않았습니다.
(4) "사탄에 씌었다"
유정 언니가 지나가고 또 다른 언니가 찾아왔습니다.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거의 반은 죽어지내던 무렵, 캠퍼스에서 '희정 언니'를 만났습니다.
캠퍼스 포교는 참 마법 같은 구석이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을 잘도 알아보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언니네 교회까지 따라갔습니다.
처음 성경 공부를 하는 날, 창세기 1장을 읽으면서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천지창조가 왜 이리도 아름다운지요.
하나님께서 얼마나 저를 사랑하시면 천지를 창조하셨단 말입니까!
저의 격한 반응에 '희정 언니'도 좀 당황한 듯 보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이별 후유증이 꽤나 심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약입니다.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을 6일 만에 창조하셨고, 저의 이별 후유증은 6개월 만에 치료되었습니다.
다음 남자친구를 만난 것입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하나님이 보내주신 사람이 아닐까?
드디어 고통이 끝나고 빛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아차.
저는 몰랐습니다.
교회는 저의 고통이 '그런 방식'으로 끝나는 걸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는 걸요.
알고 보니 교회에서는 '자유연애'를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오로지 장로가 지정해 주는 짝과의 결혼만이 허용되는 곳이었습니다.
예배당에서 남편과 따로 앉는 '희정 언니'를 보고도 왜 몰랐을까요.
그곳은 '남녀칠세 부동석교'였던 것입니다.
'천지창조'의 환희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내적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희정 언니'도 저를 쉽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사랑이었습니다.
결국 "사탄에 씌었다"는 말을 듣고서야, 태초부터 시작된 사랑도 싸늘하게 식어버렸습니다.
(5) "사탄의 방해"
당시로서는 그 교회를 '사이비'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지창조'를 정공법으로 배워보기로 했습니다.
미션스쿨 졸업생답게, 고등학교 선생님께 상담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은 제가 예수님을 만나는 길에 "사탄의 방해"를 받고 있다고 걱정하셨습니다.
감히 사탄이 발도 못 붙일 만큼 큰 교회를 찾아가야 했습니다.
일요 예배가 1부, 2부, 3부 끝도 없이 이어지는 대형교회를 찾아갔습니다.
너무 기대했을까요.
설교는 놀랍도록 지루했습니다.
'천지창조'의 환희는 없었습니다.
졸다 깰 무렵, 제 앞으로 헌금 상자가 도착했습니다.
죄송하게도 저는 십일조를 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상자를 옆사람에게 그냥 넘기고 싶었는데, 헌금 봉투 한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게 아닙니까.
상자 담당자는 저의 봉투를 주시했습니다.
차마 빈 봉투를 낼 수 없는 이중 감시 구조였습니다.
천 원이냐, 오천 원이냐, 만원이냐.
아니면?
구멍은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생각의 틈으로 제 안에 냉소주의자도 소환됐습니다.
냉소주의자는 자신을 무신론자라고 소개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순식간에 전도당했습니다.
냉소주의자는 빈 봉투를 상자에 넣는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그의 손이 참 차가워서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이 너무나 자유로웠습니다.
이후 저는 불가역적인 무신론자가 되었습니다.
(6) "영성지능 아세요?"
프리랜서를 하면서 닥치는 대로 일을 찾았습니다.
한 번은 당근마켓에 'AI 글쓰기' 관련 아르바이트 공고가 올라왔길래 얼른 지원했습니다.
사전 줌미팅에서 'AI 연구자'라는 남성이 "나는 신과 연결되어 있다" 뭐 이런 글을 작문하라기에 좀 이상하다 싶긴 했지만, 인공지능은 쓰지 못하는 글을 요구하나 보다 하고 태평하게 넘겨 버렸습니다.
저는 작가니까요.
냉소주의 치고는 참 의심 능력이 떨어진다고 해야 할까요.
사실 돈벌이도 좀 급했거든요.
신촌에 있는 한 카페에서 '정식' 면접을 봤습니다.
아르바이트 지원자들이 이상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심리상담 코치'가 면접을 진행한다고 했습니다.
개인적인 아픔이나 우울 같은 것을 참 많이도 묻는다 싶었습니다.
쓸데없이 성실히 답했습니다.
제 진짜 코치님 생각이 나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더 진심을 담아 속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저는 과거의 아픔을 대부분 깨끗하게 털어버린 상태였습니다.
감정이 담백했습니다.
취약한 구석이 거의 없었습니다.
집요한 질문에도 전혀 무너지지 않을 만큼요.
누가 보면 가히 창과 방패의 대결이었을 겁니다.
한쪽에서는 계속 '신'의 언어를, 다른 한쪽에서는 계속 '무신'의 언어를 구사했으니까요.
면접자도 지쳤는지 다음 단계로 나아가자며 본론으로 들어갔습니다.
"영성지능이 높다"며 함께 공부하면 좋겠다는 말이었니다.
'어떤 공부'인지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지 않았습니다.
이쯤 되면 확정이지요.
또 당한 겁니다.
저의 코치님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습니다.
"이런 것도 코칭인가요?"
"그런 상담은 신종 포교방식이에요"
'땅땅땅'
확정입니다.
'희정 언니' 이후에 20년 만이었습니다.
세상이 저에게 또 이럴 수는 없는 겁니다.
엄청난 분노에 휩싸였습니다.
그들에게 쓴 진심이 너무나 아까워 미칠 것 같았습니다.
'가짜 AI 연구자'와 '가짜 심리 상담가'에게 한바탕 욕을 퍼붓고도 진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취재 능력을 100% 발휘에 밤새 그들이 어느 종교의 어느 지부 소속인지 까지 알아냈습니다.
몇 날 며칠을 당근마켓을 감시하며 '그 종교'에서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아르바이트를 모조리 신고했습니다.
거의 퇴마 수준이었습니다.
당근마켓 고객센터에서는 아마 제가 더 무서웠을 겁니다.
그렇게 며칠을 광적으로 보냈고, 더 이상 신고할 건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저도 제정신으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그동안 뭘 한 것일까요.
그들의 이름을 알아내고 종교를 알아내서 무엇하려고요.
돌이켜보면, 그들은 자신의 신념대로 한 것일 뿐이었습니다.
그 누구보다 자신이 믿는 바에 진심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어쩌면 저에게도 기회를 주려고 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단지 너무 무지해서, 기만당했다고 밖에 생각 못한 것이고요.
이 일을 계기로 그동안 사이비로 매도했던 모든 종교를 돌이켜 보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유정 언니도, 희정 언니도 떠올랐습니다.
봉투 한가운데 뚫린 그 구멍까지도요.
그리고 제가 하고 있는 '수행'이라는 것도 어쩌면 그렇게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속에서 깊은 참회가 올라왔습니다.
그들의 방식이 옳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들의 신앙까지는 부정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사탄에 씌었다"는 말은 어쩌면 일부 사실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7) "Jesus Loves You"
알파벳도 잘 모르는 선준이가 어느 날 종이 하나를 내밉니다.
쪽지에는 ‘Jesus Loves You’라고 쓰여 있습니다.
아마도 유치원에서 나눠준 포스트잇인가 봅니다.
겉표지에 있는 글자를 따라 쓴 것 같았습니다.
선준이에게는 아무런 편견도, 의심도, 냉소도 없습니다.
아이에게는 오직 엄마에게 줄 '하트'만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부처님 얼굴을, 오늘은 예수님 하트를 그려줄 수 있나 봅니다.
이젠 항복입니다.
아무리 무신론자라고 해도, 더 이상은 저항할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요.
'Jesus Loves You'
이제 비로소 제가 만난 예수님을 진솔하게 이야기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살면서 제가 만난 진짜 예수님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