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도음악상가_여름에게 온 편지

소설

by mina

space_제주 내도음악상가



드르륵

하늘색 편지봉투를 뜯자 세 단으로 접은 편지지 앞면에 나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편지 어디에도 수신자 이름만 있을 뿐, 발신자의 이름은 없었다. 다만 제주 우편국 도장이 찍혀있는 것으로 보아, 제주에서 보내진 것이라 추측할 뿐이었다. 이메일이 아닌 종이 편지를 받아본 것이 얼마만인지.

대체 누가 보낸 걸까? 일단 내 주변에 제주에 거주하고 있는 지인은 없다.


나의 이름까지 알고 있다면, 적어도 무작위로 보내는 행운의 편지나 스팸편지는 아닐 것이다.

혹시 내가 몇 년 전에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타임캡슐 이벤트류에 참여했던가? 그렇다 해도 저 편지 봉투는 내가 좋아하는 색깔도 취향도 아니다. 무엇보다 내 글씨체를 내가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지. 그러고 보니, 낯이 익는 손글씨다.


설마 예전 남자친구들 중 한 명이 어느 날 문득 내가 떠올랐다고, 이별을 후회한다는 편지라도 보낸 걸까? 두어 명을 떠올려봤지만 편지와는 거리가 먼 이들이었다. 문자로 안부를 물어오거나, 밤늦게 술에 취한 목소리로 보고 싶다고 주정 섞인 전화를 해오면 모를까.

그때 불현듯 어떤 남자가 하나 떠올랐다. 혹시... 그 사람일까?

내가 그를 만난 것은 몇 달 전 혼자 제주를 여행할 때였다.

공항에서 멀지 않은 이호테우 해변의 번화가는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열대 야자수로 꾸며놓은 동남아처럼 꾸며놓은 칵테일바나, 지중해풍으로 꾸며놓은 레스토랑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렇게 번화가를 지나 한적한 여유롭게 해안도로를 따라 걷다가 통유리로 된 2층 건물에 작은 간판이 보였다.

'내도음악상가'


음악상가? 음악을 판다는 건가?

건물 측면으로 나있는 철계단을 따라 올라갔더니 두꺼운 철문이 있었고, 철문을 열고 들어가자 바의 입구가 보였다. 그리고 입구에는 손글씨로 이렇게 적혀있었다.


이곳은 음악을 듣는 곳입니다. 목소리를 낮추고 대화는 자제해 주세요.


대화를 금지하는 bar라니. 궁금증이 일어 힘주어 철문을 열고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정면에 보이는 모던한 카운터에는 흰 티셔츠의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 서너 명이 있었는데, 티셔츠에는 no song no romance라고 적혀있었다.


재밌는 곳이군. 안내된 곳으로 자리를 잡고 앉아 주변을 둘러보자 몽환적인 풍경이 시야를 압도했다.

오른쪽 통창으로는 이호테우 해변 정경이 보였는데, 해가 질 무렵 제주 서쪽바다는 오렌지 빛과 붉은빛이 거칠게 뒤섞여 밀려오는 파도와 함께 숨을 멎게 했다. 풍경을 해치지 않도록 은은하게 놓인 간접조명들과 모던한 테이블들은 더없이 잘 어울렸다.

출처: 내도음악상가 업체등록사진


그리고 무엇보다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압도하는 LP음반의 아날로그 음악들.

마치 음반 속 가수가 내 옆에서 노래를 부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음질이 훌륭했다.

‘아. 이곳은 음악과 풍경을 파는 곳이구나!’

조금은 위압적으로 보였던 ‘대화를 자제하라’는 문구는 어쩌면 이 풍경과 음악을 즐기는 이들에게 너무나 당연한 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짐빔하이볼을 한잔 시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음악을 주제로 유명영화의 OST음반들이 한쪽 벽면에 장식되어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재즈와 블루스가 연신 흘러나왔고, 음향과 풍경에 매료된 나는 가만히 잠시 동안 언어와 사고를 닫고 청각의 감각만을 열어두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런 근사한 장소를 만든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핸드폰을 열고 검색창에 ‘내도음악상가’를 입력했다.









다행히 이곳 주인의 이름과 인터뷰 기사 두세 개를 찾을 수 있었다. 그는 교환학생을 다녀온 이후 자본주의를 거스르는 경제공동체를 만들어 실험적인 창직을 하고 있다고 했다. 몇 년 간 다니던 대기업에서 퇴사해 을지로에서 공동체와 함께 작은 바를 운영하다가 제주에 내려와 게스트 하우스를 열었고, 이제는 음악을 주제로 한 공간을 만들었단다. 기사 안에는 그가 생각하는 경제관념과 경영철학이 명확히 드러났고 나는 그가 제법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개의 기사를 더 찾아보자, 드디어 그의 얼굴이 함께 실린 기사를 찾았다!


사진 속 그는 하늘색 셔츠를 단정히 입었고 다부져 보이는 얼굴형에 냉철한 눈빛을 지닌 듯 보였다. 어라! 가만 그는 방금 나에게 하이볼을 건네주고 간 사람이잖아!

나는 목마름과 함께 그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기사 속 인물이자 이곳의 주인인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제법 도수가 있는 하이볼 때문이었을까? 음악 때문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파도와 노을 때문이었을까? 나는 용기를 내어 카운터에 앉아있는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하이볼 한잔만 더 주시겠어요? 아! 그리고 저는 이여름이라고 합니다.”


출처 : 내동음악상가 업체등록사진


추천음악 : 정수민, 미안감

https://youtu.be/yBcAYn87Wm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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