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에 울릉도여행을 계획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울릉도는 한반도에서 가장 눈이 많이 오는 지역 중 하나다. 폭설이나 거친 파도에 배가 뜨지 않아 겨우내 고립되기를 며칠 혹은 몇 주 동안 계속되는 곳.
그러나 내가 그에게 멀어지는 방법은 이것뿐이다. 나의 세계를 온전히 지배했던 그의 갑작스런 이별통보에 나는 가끔씩 그의 집 앞을 서성였고, 의식을 치르듯이 그와 함께 했던 장소를 찾아가며 그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짓 따위를 간헐적으로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게 헤어지고 다시 그를 만났다가 다시 헤어지고. 같은 패턴으로 이별과 재회 사이를 반복하는 동안 돌아온 것은 지독한 자기혐오.
서로의 집이 가깝다는 것은 빠른 시간 안에 상대와의 정서적 거리를 좁히는데 도움이 되지만, 역설적으로 이별에 순간에는 가장 큰 방해요소가 된다. 하여 나는 그와 가장 쉽고 빠르게 사랑에 빠졌지만, 지금은 가장 어렵고 오랜 이별을 겪고 있는 중이다. 누군가를 좋아했던 이유가 나중에는 상대를 싫어하는 가장 큰 사유가 되는 것처럼.
이별하지 못하는 나를 벌하는 것인지, 이별을 통보해놓고도 가끔씩 그립다고 연락해오는 그를 벌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나는 곧 울릉도에 기록적인 폭설이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듣자마자 그길로 짐을 챙겨 서울역으로 향했다. 밤기차를 타고 포항으로 내려가는 중에도, 배가 항구를 떠나 출발하는 하는 순간조차도 걱정스러웠다. 파도나 배멀미에 대한 걱정이 아닌 나를 지배하는 고민과 걱정은 이런 것들이다.
서서히 시야에서 육지가 멀어지는 것을 견딜 수 있을까?
그도 언젠가는 저렇게 나에게 조금씩 사라질까? 나는 멀어지는 그를 향해 헤엄쳐 가지 않고 지금처럼 가만히 기다릴 수 있을까?
망망대해의 파도를 한참 바라보다보니 어느덧 에메랄드 빛 해안풍경을 뒤로한 섬에 도착했다. 울릉도는 제주도와는 달리 가파른 절벽이 많았는데, 사람들이 이런 곳에 오랫동안 삶을 일구고 살아가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섬을 하루 안에 일주하는 ‘데이 투어’에는 평일 치고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참여 했다. 가이드는 날씨가 좋을 때에 독도를 육안으로 볼 수 있지만, 오늘은 그럴 수 있는 날씨가 아니라며 아쉽다는 말로 투어를 시작했다. 나는 가이드의 말을 들으며 보이는 것 보다 보이지 않지만 있다고 믿는 것이 훨씬 더 어렵고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호객꾼들이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폭설이 내리기 전에 피곤하더라도 오늘 꼭 울릉도를 한 바퀴 돌아봐야한다는 말로 관광객들을 현혹했는데, 나를 포함한 많은 관광객들이 그의 말에 넘어간듯 보였다. 그렇게 항구에서 즉흥적으로 신청한 투어는 그럴싸한 홍보 팜플렛 사진 속의 최신 SUV 차량이 아닌 낡은 미니버스로 진행되었다. 구불구불한 해안도로를 따라 내륙에서 볼 수 없는 이국적인 빛깔의 해안 풍경, 오징어를 말리느라 분주한 인부들, 휴가를 마치고 독도로 복귀하는 해경들의 모습이 보였다.
꼬불꼬불한 섬의 도로를 따라 한참을 달리다보니 버스는 어느새 울릉도 정상의 나리분지에 도착했다. 이곳은 섬의 가장 높은 곳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평평했다. 산으로 둘러쌓인 분지 안에는 작은 마을이 있고,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전통 가옥들이 남아있었다. 낡은 집들은 마을의 중심에서 지독히 고립되어 보였지만 싫지 않았다. 가이드가 추천하는 울릉도식 나막집을 개조한 작은 식당에 들어가 산나물로 지어진 밥을 먹었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고 아무도 이 여행에 대해 묻지 않아 낯선가운데 편안함을 느꼈다. 때로는 익숙한 것들이 더 불편할 때가 있는 법이니까.
-띠링
밥값을 계산하면서 카운터에 전시된 명이 나물을 사려고 집어든 그 순간, 그에게 문자가 왔다.
-어디야? 오늘 밤도 올 거니?
그는 나를 기다린다는 뜻일까? 혹은 기다리지 않으니 오지 말라는 뜻일까?
이별이후 그가 가끔 보내는 이 짧은 문자들을 나는 이렇게 ‘해독’한다.
그의 언어는 마치 이중 언어로 쓰여진 암호처럼 읽을 때 마다 다르게 읽히고 나는 그의 말을 ‘오독’하지 않으려고 유심히 같은 문장을 반복해 읽으며 그의 감정을 해석하려고 노력한다. 잠시 동요되는듯 했으나 나는 다시 한적한 울릉도의 풍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에게 답변을 하지 않는 쪽을 택하며 핸드폰 전원을 끄고 명이나물을 집어들었다.
섬의 동쪽 언덕 끝에 위치한 리조트는 도동항과 제법 거리가 있었다. 조용하고 고즈넉하게 지어진 별채들은 각각 떨어져있었다. ‘고립’이나 ‘거리감’, ‘침묵’ 따위의 단어들은 때때로 나를 사무치게 외롭게 만들었지만, 지금의 나는 이 단어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만약 이 글자들이 허공에 떠다닌다면 나는 뜰채를 쥐고 잡힐 때까지 정신없이 채집 할 참이다.
밤기차를 타고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서너 시간의 배를 타고 섬으로, 그리고 다시 섬을 일주하는 빠듯한 하루 일정을 마친 나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짐도 풀지 않은 채 그대로 잠이 들었다.
의식의 세계에서와는 달리 꿈속에서 나는 또 그를 기다린다. 나의 마음에는 여전히 폭설이 내린다. 그가 내게 했던 말과 눈빛, 입가에 주름이 한껏 지도록 보내던 미소. 그와 함께 나눈 것들이 하루 종일 내 마음에 내린다. 그렇게라도 그를 보는 것이 나의 이별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방해가 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