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역사소설_우주를 떠도는 이름들에 대하여

소설

by mina

space_청동기시대 부족 마을


출처 : 픽사베이





이름을 차지하기위한 두 부족의 투쟁은 자그마치 수십 년 째 지속되고 있었다.

두 개의 작은 구릉을 사이에 두고 흐르는 붉은 하천을 차지하는 자가 국명을 가질 자격이 있다는 어느 예언서의 문장이 발견된 것이 화근이었다.


붉은 하천은 기다란 자연 제방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몇 백 년을 흐르는 동안 풍화되고 마모되어 영양분이 풍부한 토사가 하천 양쪽으로 흘러내렸다. 하천을 차지하는 것은 거대한 경작지를 확보하는 것이니 농경지는 이들에게 막대한 잉여생산물을 안겨줄 것이다. 이는 또한 부족에게 안정적인 자원공급처가 되어 계급과 조직을 공고히 할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무기를 살 수 있는 권력을 부여한다. 그리하여 부족은 국가가 되고 국가는 다시 제국이 될 것이다.


붉은 하천을 얻는 자는 거대한 역사를 얻는 것이니, 이는 곧 역사에 남을 이름을 얻는 것이다. 하천을 얻지 못한 자는 패배하고 멸망할 것이다.


예언서는 축복과 저주를 한꺼번에 내리고 있었다.

하천을 마주하는 두 부족에서 온 무명의 장수들은 수 십 년을 싸웠다. 죽은 아비의 아들은 다시 아버지를 위해 싸우며 죽어갔다. 긴 전쟁이 지속되는 순간에도 사랑은 생겨났고, 사랑과 사랑 사이에 아이들이 태어났다. 여인들은 장수들이 흘리는 피를 닦아내며 눈물을 훔쳤지만, 아이들은 이름을 얻기 위해 싸우는 아버지를 이해해야만 했다. 거대한 명분이었다.


어느 해 건기가 지나고 우기에 다다르자, 하천의 물은 급속히 불어나기 시작했다. 한 무명 장수의 지략으로 하천에 새로 생긴 지류 사이의 보 주변에 인공 제방을 쌓았다. 적들이 그곳을 지나기 직전, 미리 잠복해있던 이들이 인공제방을 무너뜨리자 수많은 장수들이 물살이 휩쓸려 떠내려갔다. 무명의 장수들은 다른 무명의 장수들을 위해 마지막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단 한명의 적의 숨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승리를 향해 가는 마지막 전투는 더 치열하고 처절했다. 붉은 하천은 핏물로 선명하게 붉어졌다. 완벽한 승리였다.


마침내 이들은 ‘적(赤)’이라는 국명을 얻었다.

지략가인 장수에게는 ‘명장’이라는 이름이 수여됐다.

하천은 ‘승천’으로 불렸다. 승리를 기념하여 거대한 동상이 세워졌고

성의 외벽에는 전투의 내용을 기록하는 부조가 새겨졌다.

모든 마을과 도로와 각종 건축물에 하나 둘씩 이름이 생겼다.


역사는 승자의 이름만을 기억한다. 현재의 우리에게는 과거를 지나온 승자의 이름만 남아있다. 수많은 무명의 전사들과 무명의 부족 국가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패자의 시간과 기억은 조각조각 흩어져 우주 어딘가를 떠돌다가 가끔씩 바람과 바람 사이에서 울음 소리를 낸다. 휘이이—



그들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신을 추모하며 쓸쓸히 떠돈다.

그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찬란했던 시간도, 화려한 궁궐도 아니다.

다만 추억한다. 더 이상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의 이름에 대하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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