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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a Dec 25. 2023

꼬리곰탕 택배를 열다가


아버님을 위해 준비해 드린 조촐한 생신축하파티가 맘에 드셨는지, 그날 밤 시어머니가 전화로 느닷없이 주소를 부르라고 다그치신다.


당신이 매년 시키는 꼬리곰탕집이 있는데 그걸 우리 집에도 보내주겠다는 말씀.

어머님의 삶의 경험에서는 겨울이면 꼬리곰탕 한두 번 먹어줘야 속이 든든하다는 것.

우리 집에는 꼬리곰탕을 먹을 만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지만, 나는 순순히 주소를 불었다(!)

결혼을 해보면 안다. 어른의 호의를 거절하는 것에는 많은 용기와 각오가 필요하다는 것을. 차라리 안 먹더라도 그냥 받고 말지 라는 경험의 축적. 삶의 노하우랄까.


어쨌든 그 꼬리곰탕이 추위를 뚫고 왔다.  

아무도 그 꼬리곰탕을 먹지 않을 것을 알지만 나는 차곡차곡 부엌한쪽 선반에 쌓아두었다.

이제 먼지가 소복이 쌓이다가 유통기한이 지나기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그렇게 꼬리곰탕을 버리는 행위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내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요즘 종종 ‘호의’에 대해 생각한다.

‘호의’라는 이름으로 나는 누군가에게 수많은 마음의 짐과 불편함을 지어주고 있지는 않은지.

멀리 갈 것도 없이, 아이와의 관계에서 성찰해 본다.

내가 아이에게 하는 대다수의 잔소리가 이 꼬리곰탕과 같은 건 아닐까.

어딘가로 휘발되거나(바로 버려지거나) 마음 한구석쯤 쌓여있다가 엄마 말이 맞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날이 오면 미련 없이 버리게 되는.


기름기 잔뜩 껴 먹자마자 속이 더부룩할 것 같은 꼬리곰탕을

나는 하루에 몇 번씩 아이에게 억지로 떠 먹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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