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_ 더블린 사람들

소설

by mina

space_ 아일랜드, 더블린


그 남자를 처음 본 건 더블린에서야. 아니 정확히는 인천공항에서였을까? 어쩌면 비행기 안에서 오가는 모습이었겠지만, 내 눈에 그의 존재가 들어온 건 아마도 아일랜드에 도착해서였던 것 같아.

우리 일행은 열흘의 짧은 일정으로 연수를 갔는데, 아주 늦은 밤 아일랜드 공항에 내렸어. 고층 건물이라고는 젼혀 보이지 않는 아일랜드의 수도이자 소박한 도시인 더블린의 골목 호텔에서 긴 여독을 풀기로 했지.


‘오늘 밤은 그냥 잠을 자기에는 아쉬운 특별한 날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던 참에, 누군가 방문을 두들겼어. 일행 중 한 명이 함께 더블린 밤거리를 구경하러 갈 사람은 나오라는 말을 전하더라. 같이 방을 쓰기로 한 룸메이트는 그런 쪽은 관심이 없는 건지, 제 또래는 없다고 판단했는지 일찍 잠들겠다고 거부했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그들과 함께 안개 짙은 더블린의 밤거리를 쏘다녔어.

유럽 안에서도 위스키로 유명한 나라, 술을 많이 마시기로는 한국 못지않은 유명세를 가진 나라, 기네스라는 맥주를 만드는 나라. 아일랜드의 밤거리는 안주 하나 없이 위스키 싱글 몰트를 들이켜는 젊은이들로 새벽녘까지 북적거려서 낯설지 않았지.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영국과 맞붙어있어 300년 넘는 식민지배를 받은 이들이 술을 즐겨 마시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고 생각했어.











누군가에게 나의 육체(영토)를 빼앗긴 것뿐 아니라, 나의 마음(사상)까지 지배당한다는 건 슬프면서도 참 무기력해지는 일임을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야.




아일랜드는 조금씩 비가 자주 내려 습하고 안개가 짙었는데, 아침마다 느껴지는 목이 싸하게 잠 길듯 한 한기와 청량감이 싫지 않더라. 생각보다 추운 날씨에 나는 한국에서 가져간 빨간 머플러를 열흘 내내 목에 두르고 다녔는데, 사람들은 나를 ‘빨간 머플러’라고 부르기 시작했어.


B612-2015-11-10-16-28-18.jpg


그렇게 별명을 부르면서 조금씩 친해질 즈음 우리는 업무 일정 사이사이 조금씩 더블린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어. 낡은 성곽이 쓸쓸해 보이던 부서진 아일랜드의 고대 유적지, 세계적인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생가와 독특한 음색의 앤야(아일랜드 출신 가수)의 음악이 들릴 듯 끝없이 펼쳐진 거센 파도가 치는 해변까지.


이 모든 기억들은 몽환적일 뿐만 아니라 전혀 다른 세계에 온 듯한 느낌마저 들었는데, 가만히 돌아보면 우리에게는 시차적응을 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었기에 당연한 일이었지. 어쩌면 우리는 아예 시차적응을 하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몰라.


연거푸 마셨던 아일리쉬 커피(위스키+커피+크림을 올려먹는 아일랜드식 커피) 때문이었는지 제대로 잠을 잔적이 없어서인지, 꿈꾸듯 노래하는 앤야 음색 때문이었는지 열흘 내내 꿈속을 걸어 다닌 듯한 몽환의 일정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나는 그에게 뜻밖의 세 가지 선물을 받았어. 그러니까 나는 아일랜드에 도착한 날 그를 처음 만났지만, 그와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날 특별한 관계가 된 거지.


돌아오는 공항에서 무심하게 별말 없이 전해주던 세 잎클로버(아일랜드의 문양)가 그려진 작은 가죽 팔찌, 직장으로 며칠 뒤 배달된 제임스 조이스의 책 ‘더블린 사람들’. 그리고 그가 메일로 보내온 몇 장의 사진들.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연신 아일랜드의 풍경을 찍는 줄만 알았던 그가 내게 보낸 사진들은 온통 빨간 머플러를 하고 활짝 웃고 있는 나의 모습이었어.


나는 그에게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어.

우리의 관계는 그렇게 몽환의 세계 안에 갇힌 거지.

그와 나의 기억 속에서만 말이야.




keyword
작가의 이전글3100번 정류장_와인을 좋아하는 고양이를 만난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