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무 말 없이 냉면을 먹었다

입추의 바람과 메밀의 조용한 위로

by 서가

그날은 유난히 말이 적었다.

같이 간 사람이 그랬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그랬다.


입추가 지났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더운 날이었다.

강남역에서 내린 후 지하로 이어진 통로를 따라 백화점 안으로 들어섰고,

엘리베이터는 한없이 느리게 11층을 향해 올라갔다.

상영 시간도, 약속도, 마감도 없던 날.

그저 뭐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움직이고 있었다.


11층 식당가에 도착해 처음 본 간판은 ‘평양면옥’이었다.

별다른 고민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에어컨 바람이 멈춰있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조용하고 차분한 공기.

모서리 쪽 테이블에 앉자,

직원은 물 대신 면수를 조용히 내어주었다.


묘했다.

따뜻한 면수를 마시는 동안,

텅 빈 속이 아니라

텅 빈 마음을 데우는 것 같았다.


냉면이 나왔다.

메밀면 위에 계란 반 쪽, 얇은 제육, 편육.

그 위로 살짝 퍼지는 무절임과 오이채.

투명한 육수 속에서 모든 고명이 조용히 가라앉아 있었다.


국물은 밍밍했다.

하지만 그 슴슴함 속에서,

이상하게도 복잡했던 머리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자극적인 맛이 아니라서 더 오래 머물렀다.

면은 가위 없이도 부드럽게 끊어졌고,

고기는 잡내 없이 깔끔했다.

어디 하나 과하게 튀지 않아서

내내 조용히 씹고, 삼키고, 또 씹었다.


옆 테이블의 대화 소리는 희미했고,

가게 안은 대체로 혼밥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누구도 말이 많지 않았고,

누구도 급하게 먹지 않았다.


그 시간이 좋았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괜찮은,

한 사람의 자리에서 조용히 머물 수 있는 식사.


계산을 마치고 나오며

다음에 또 올지는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처럼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이곳이 문득 떠오를 것 같았다.


마치

기억 속 작은 쉼표처럼.




사진출처 : 강남 신세계백화점 평양면옥 솔직 방문기|맑은 육수, 슴슴한 냉면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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