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박스 옆의 조용한 옮김
고속터미널역에서 내려와 익숙한 계단을 따라 지하로 향한다.
바람은 멈추고, 대신 책 냄새와 사람들의 낮은 속삭임이 그 자리를 채운다.
영풍문고.
언제 와도 익숙한 이름. 낯설지 않게 쌓여 있는 책 더미들.
그 날도 평소처럼 책을 들여다보던 중, 문득 무엇인가가 나를 끌었다.
'향기'였다. 정확히는, 기억 속 향기.
분명 예전에 신세계 식품관 구석 어딘가에 있던 그 브랜드.
카멜커피. 그 특유의 크림 얹힌 진한 커피.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몰려 있지 않았다.
어라, 여기가 아니었던가?
향을 따라 걷다 보니, 메가박스 옆 조용한 통로.
그리고 나무 간판 하나가 조용히 말을 건다.
"그 자리에 없다고 해서, 사라진 건 아니에요."
조용히 옮겨와 있던 카멜커피.
나는 그렇게, 우연히 다시 그곳을 마주하게 되었다.
말차라떼를 주문했다.
평소엔 시그니처 커피지만, 그날은 왠지 초록빛이 더 끌렸다.
작고 조용한 종이컵 하나.
거기에 얹힌 크림은 마치 말도 없이 날 반겨주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양은 조금 아쉬웠다.
딱 세 번 마시니 바닥이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짧은 시간이 오래 남는다.
광장 쪽 의자에 앉아 컵을 손에 쥐고 있자니
햇살이 가볍게 무릎 위에 내려앉았다.
누가 먼저 말을 걸지 않아도 편안한, 그런 시간이었다.
요즘은 어딜 가도 사람들이 많고, 자극적인 게 많고, 그래서 피곤한데
이곳은 그냥 조용했다. 조용해서 좋았다.
이 커피 한 잔이 무언가를 '다시 찾는 느낌'을 주는 건,
그 브랜드의 힘이기도 하고, 그 순간의 내 상태이기도 했겠지.
그러니까 가끔은 사라진 줄 알았던 것들이
사실은 자리를 옮겨 내 곁에 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시 찾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그것.
사라진 게 아니라,
나만 잊고 있었던 것.
그런 커피. 그런 공간. 그런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