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온 아래, 느리게 익는 대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붉은 네온이 먼저 나를 불렀다.
돌벽 아래로 흐르는 빛.
사람들은 서로의 등을 보이며
웨이팅 키오스크 앞에 번호를 남겼다.
나는 숫자 대신
너의 이름을 떠올렸다.
한 번도 제시간에 오지 않던 사람.
그래도 늘 도착하던 사람.
예약자 호명이 지나가고
알림음이 한 번 더 울렸다.
우리는 같은 시간대를 살지만
각자의 분침을 다르게 움직인다.
창가석으로 걸어가며
유모차의 바퀴가 카펫을 스칠 때 나는 소리를 들었다.
저편 아이는 공룡 알을 쥐고 있었고,
작은 손이 반짝였다.
도마 위에 검은 칼이 꽂힌 채
빵이 먼저 왔다.
따뜻함이 식탁을 가만히 덮을 때,
우리는 오늘의 말을 정리하기로 했다.
“빵이 바뀌었네.”
네가 먼저 말했다.
나는 결을 따라 첫 자리를 잘랐다.
겉은 가볍게 마르고, 속은 숨을 쉬었다.
수프가 도착했다.
버섯의 향보다 먼저
양파의 단단함이 스푼에 걸렸다.
눈치 채지 못한 사이,
우리는 지난 계절을 마셨다.
멀리 선로가 보였다.
창에 비친 철길은 겹쳐져
또 다른 선을 만들었다.
우리의 대화가 늘 그렇듯,
한 방향으로 가다 다른 길을 겹쳐 그렸다.
메인은 늦게 왔다.
마늘이 얹힌 고기에서
기름이 조용히 흘렀다.
잘린 단면의 붉은색이
한 번의 망설임처럼 흔들렸다.
포크를 들고
나는 네가 놓친 문장을 주워 들었다.
“괜찮을 거야.”
우리는 서로에게 오래 써온 문장을
다시 한 번 꺼내 놓았다.
옆자리에서는
도톰한 면이 소스에 잠겼다.
투움바의 꾸덕한 무게.
입 안이 조용해지는 순간,
말보다 온기가 먼저 도착한다.
너는 멤버십 앱을 열어
쿠폰 하나를 꺼냈다.
되돌릴 수 없는 것들 사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계산은
이 정도의 절약과, 몇 번의 미소.
창밖으로 구름이 흘렀다.
구름은 늘 같은 속도로 지나가는데
우리는 다르게 늙어 간다.
한 계절은 네게 빨랐고
다른 계절은 내게 더디었다.
아이의 공룡 알이
테이블 모서리에서 굴렀다.
아이는 울지 않았고
아이는 금방 또 웃었다.
단단한 껍질 아래,
미지의 부드러움이 숨을 쉬고 있었다.
네가 물을 마셨다.
나는 나이프를 내려놓았다.
안부를 묻는 일은
가끔 서로의 식욕을 확인하는 일과 닮았다.
조금 남겨도 좋고,
다 비워도 괜찮았다.
커피를 권했지만
우리는 고개를 저었다.
더 말하면 무너질 것 같은
두어 개의 단어가 있었고,
덜 말해도 닿을 것 같은
침묵이 여기 있었다.
계산대 앞에 서서
네가 한 번, 내가 한 번 웃었다.
계산은 끝났는데
마음에 남는 잔액이 있었다.
그건 누구도 환불받지 않는 종류의 것.
문이 열리고
쇼핑몰의 바람이 들어왔다.
철과 유리의 냄새가 섞인 바람.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너는 “다음에”라고 말했다.
다음은 늘 가까웠고,
또 늘 멀었다.
우리는 그 두 사이를 오래 걷는 사람들이었다.
내려가는 버튼이
둥근 빛으로 켜졌다.
발밑에서 가벼운 진동이 올라왔다.
나는 손에 남은 빵의 향을 맡았다.
식어도 남는 온기.
그것으로 오늘을 마치기로 했다.
문이 열렸다.
사람들이 타고,
사람들이 내렸다.
나는 네가 없는 층을 눌렀다.
가끔은 틀린 층을 눌러 내려가도
다시 올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안다.
문이 닫혔다.
붉은 네온은 금세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창가의 빛은
내 눈 안쪽에 남아 있었다.
도마의 나뭇결처럼,
작고 조용하게,
오늘의 시간을 붙들고 있었다.
사진출처 :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용산 아이파크몰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