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의 밤, 용산의 손

반다이남코 스토어에서 배운 우연의 기술

by 서가

에스컬레이터가 층을 갈라 올렸다.

유리 난간에 비친 내 얼굴은 조금 늦은 오후의 색이었고, 위로 갈수록 소리가 커졌다.

캡슐이 서로 부딪히는 가벼운 금속음, 카드를 섞는 손끝의 마찰음, 아이들이 숨을 참는 소리.

리빙파크 6층에 닿는 순간, 나는 작은 별의 궤도로 들어서는 기분이 들었다.


입구를 통과하자 벽 하나가 통째로 작은 우주였다.

가샤폰 기계들이 초록빛, 파란빛을 흘리며 서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구멍을 찾아 한 점으로 모이고, 동전이 사라진 자리로 시간이 떨어졌다.

누군가는 원하는 파츠를 얻고, 누군가는 같은 것을 반복해서 뽑았다.

누군가의 실패가 옆 사람의 성공을 보증하는 일은 없지만,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는 그 낙차마저 놀이였다.


나는 주머니 속 목록을 접었다.

기대는 늘 문장을 길게 만들고, 길어진 문장은 눈앞을 가린다.

대신 샘플 테이블에 올라선 작은 것들을 찬찬히 보았다.

눈매가 조금 다른 얼굴, 미세하게 흔들린 도색, 어쩔 수 없이 남는 이음선.

완벽하지 않은 것들이 서로 기대 서 있었다.

그 결이 어쩐지 사람 같았다.


매장 한가운데, 원형 카운터가 천장의 푸른 링에 맞춰 천천히 숨을 쉬었다.

포스가 여러 대라는 사실보다, 줄이 한 줄로만 흐르지 않는다는 점이 안도감을 주었다.

각자의 번호가 불릴 때마다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계산을 마친 사람들은 같은 속도로 흩어졌다.

그 장면을 올려다보니 미러 천장 속에서 우리는 정확히 동심원을 그리고 있었다.

모든 기다림은 원형으로 기억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고, 돌아오고, 조금 달라져서 다시 서는 일.


타마시이 스팟의 유리는 다른 시간대를 보관하고 있었다.

고개를 기울이면 자세가 바뀌고, 한 걸음 물러서면 서사가 길어진다.

칼을 드는 손, 날개를 펼치는 등짝, 방패를 비스듬히 세운 발목.

포즈란 결국 버티기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넘어지지 않으려는 의지, 그 위에 쌓아 올린 형상.

한 장의 정보 카드가 캐릭터의 나이를 말할 때, 나는 유리의 온도를 손등으로 느껴보았다.

안에는 열이 없고, 밖에만 체온이 있었다.


카드게임 존에서 의자들이 낮게 끼익거렸다.

덱을 쥔 손들의 움직임은 구두점을 찍는 문장 같았다.

턴을 넘기는 간격에 말이 자랐고, 패를 내는 순간에 표정이 뒤집혔다.

패배한 얼굴에는 어쩐지 오래된 안도감이 깃들어 있었다.

지는 법을 아는 사람만이 다음 판을 시작할 수 있다.

그것은 삶에서 가장 배우기 어려운 룰이기도 했다.


다시 입구 쪽으로 돌아와 작은 방 형태의 디오라마 앞에 섰다.

휴대폰 화면을 든 손이 초점을 잡고, 가구와 조명이 축소된 세계를 현실로 불러냈다.

거리감이 사라지는 순간, 작고 정확한 물건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그럴싸해졌다.

무대가 된 책상, 무대가 된 컵, 무대가 된 그림자.

나는 스크린을 내리고 실제를 바라보았다.

실제는 언제나 약간 덜 반짝였고, 그래서 더 오래 남았다.


결국 나는 캡슐 하나를 뽑기로 했다.

손잡이를 돌리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새삼스럽게 힘을 주자 안쪽에서 스프링이 터무니없이 부드럽게 돌아갔다.

투명한 공이 손바닥에 안착하자, 옆에 서 있던 소년이 숨을 들이켰다.

우리는 서로의 결과를 들여다보았다.

그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내 것, 내 손에 필요한 것은 그의 것이었다.

교환은 말없이 이루어졌고, 둘 다 조금 더 가벼워졌다.


원형 카운터에 서서 결제를 마치는 동안, 어딘가에서 어린 울음이 터졌다가 곧 멎었다.

직원의 목소리는 일정했고, 영수증은 얇았다.

나는 종이의 모서리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마치 오늘의 기다림을 종이의 가장자리로 밀어 넣는 일처럼.

포인트 적립을 묻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쌓아 온 것들이 포인트라는 단어와 거의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당장 쓸 수도 있고, 조금 더 모아 더 큰 것을 살 수도 있는 종류의 축적.


문 밖으로 나오니 에스컬레이터가 아래로 흘렀다.

아이파크몰의 바람은 층마다 온도가 달라, 내려갈수록 일상의 냄새가 짙어졌다.

뒤돌아본 상층부의 푸른 링은 여전히 작게 빛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계속 올라오고, 캡슐은 계속 구르고, 카드의 뒷면은 여전히 불확실했다.

하지만 불확실이라는 이름의 질문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곳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 내가 배운 건 우연의 기술이었다.

원하는 것을 정확히 집어 올리는 손보다, 뜻밖을 받아들이는 손이 더 멀리 간다는 사실.

전시가 재고를 보장하지 않고, 줄은 언제든 합쳐졌다가 갈라진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사람들은 서로의 시간을 조심스레 건네받는다.

한 번의 실패와 두 번의 비유, 세 번의 미소로.


밖으로 나왔을 때, 저녁은 아직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주황빛이 유리에 남아 각자의 얼굴을 반쯤 덮었다.

나는 주머니 속 캡슐을 한 번 더 굴려보고, 멈춘 지점에 손톱으로 작은 흠을 냈다.

다음에 다시 돌아오면 이 표시를 알아볼 수 있겠지.

원형의 한가운데, 우리가 서 있었다는 증거로.




사진출처 : 반다이남코 코리아스토어 용산 아이파크몰 리뉴얼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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