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시야가 흐려지던 날
처음 이상하다고 느낀 건,
수학 시간이었다.
분명히 알고 있는 공식이었는데,
칠판의 숫자들이 번져서 잘 보이지 않았다.
가볍게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보았지만
세상은 더 흐릿해져 있었다.
방과 후,
혼자 교실에 남아 칠판을 바라봤다.
멀리 있는 글씨를 한 자 한 자 또렷하게 읽던 날들이
이렇게 금방 지나갈 줄은 몰랐다.
그날 집에 돌아와
거울을 마주했을 때,
처음으로 렌즈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쳤다.
‘안경 말고, 렌즈부터 써도 되는 걸까?’
렌즈를 낄 줄도 모르면서
렌즈가 더 어울릴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와
안경은 왠지 ‘나이든 것 같은’ 이미지라는
이상한 고정관념 사이에서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며칠 뒤, 안과에 갔다.
하얀 벽, 쿨한 진료 조명,
그리고 너무도 담담하게 건네는 의사의 말.
“렌즈부터 써도 됩니다.
그 대신, 꼭 눈 상태부터 정확히 확인받아야 해요.”
내 눈은 생각보다 약했다.
0.5 / 0.3
난시도 조금 있었고,
건조함도 있다고 했다.
하루용 렌즈를 권했다.
그마저도 짧게만 쓰라고.
렌즈를 낀다,
그건 단지 ‘예쁘게 보이고 싶다’는 마음보다
‘내가 내 눈을 어떤 방식으로 책임질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렌즈는 생각보다 까다롭고,
안경은 생각보다 안정적이었다.
결국 나는 안경을 먼저 골랐다.
처음 눈 위에 올라온 투명한 렌즈가 아닌,
콧등에 걸리는 익숙한 프레임.
그 무게가
생각보다 위로가 됐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안경을 쓰고 나서야
비로소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칠판도,
친구의 얼굴도,
내가 앞으로 걸어갈 길도.
렌즈가 잘못된 선택이라는 건 아니다.
그건 지금보다 조금 더 익숙해졌을 때,
내 눈이 괜찮다고 말해줄 때
그때 천천히 선택해도 늦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시야가 흐려지던 날,
나는 안경을 썼고,
그날부터 다시
내 일상은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시력 교정의 첫걸음은
렌즈냐 안경이냐보다,
내 눈을 있는 그대로 마주보는 용기에서 시작된다는 걸
그 여름, 나는 처음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