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자리에서 마주한 나의 온도
백석역 1번 출구를 나서면,
밤공기와 함께 삶의 부스러기들이 흘러나온다.
폐점 준비 중인 꽃집,
껌딱지가 누군가의 신발 밑창에 철썩 들러붙는 소리,
그리고 수요일 저녁 7시의,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외로움.
나는 그 골목 끝에 있는 조그만 술집을 찾아갔다.
백석양조장.
누군가는 단골이고, 누군가는 오래전 실연의 잔을 기울인 곳이며,
누군가는 그저 지도를 따라 도착했을 뿐인 공간.
나는 세 번째 부류였다.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기름 냄새,
막걸리 병들이 즐비한 벽,
누군가의 폴라로이드 속 웃음이 나를 향해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중 하나를 오래 들여다봤다.
낯선 얼굴, 낯선 표정. 그런데
어쩐지 그 안의 ‘감정’만은 아주 낯익었다.
테이블에 앉아 주문했다.
모듬전, 꼬막초무침, 그리고 느린마을 막걸리 한 병.
주문이 끝나고 고요가 생겼다.
도시에서의 고요는 언제나 기묘하다.
차라리 웅성임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때 옆 테이블에서 들려온 한 마디.
“전은 진짜, 혼자 먹기 아깝죠.”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누구에게든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리고 누구에게든 의미 있을 수 있는 말이었다.
모듬전이 나왔다.
고추전은 아삭했고, 육전은 지나치지 않게 부드러웠다.
가지는 처음엔 생경하다가,
어느새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전이란 음식이 원래 그런 건지도 몰랐다.
익숙한 듯 낯설고,
소소한 듯 치명적인.
막걸리를 따랐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건
‘술잔이 마주치지 않는 술자리’다.
그건 잔을 비우는 일이 아니라,
온기를 홀로 마시는 일이니까.
그래서 나는 내 잔을 들어
건너편 의자에 올려놓았다.
빈 잔.
누군가 있었다는 자리를
누군가 있어야 한다는 방식으로 복원해보았다.
꼬막초무침 위에 소면을 얹어 한 젓가락 들고,
열무김치를 그 위에 덮었다.
바로 그 순간, 내 입 안이 아니라
내 안쪽 어디가 녹아내렸다.
말하자면,
지나간 어떤 계절이 새삼스럽게 혀끝에 닿은 느낌이랄까.
나는 내가 원래 전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어릴 땐 명절에만 먹던 것이었고,
성인이 되고 나선 너무 기름져서 멀리하곤 했는데
지금 이 순간 나는 기꺼이,
다음에도 또 전을 먹을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그날 나는 나를 다시 만들었다.
누구와 함께가 아니라,
무엇을 마주하며.
늦은 밤,
벽에 적힌 누군가의 문장 위에
나는 조용히 내 이름을 남기고 싶어졌다.
‘이 자리에 다시 오고 싶다.’
어느 날은 누군가와,
어느 날은 또 혼자라도.
백석양조장.
소음과 온기 사이의, 적당한 온도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