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
엘르라는 이름의 장미를 만난 건,
봄 햇살이 유난히 부드럽던 날이었다.
더위를 느낄세라 선선한 봄바람이 불어왔고,
봄바람에 묻어난 짙은 꽃향기에 홀린 듯이
나는 장미정원으로 이끌렸다.
가녀린 꽃잎을 다소곳이 펼친 채
불어오는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렸지만,
그 장미는 결코 꺾이진 않았다.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나는 그 장미가 웃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흔들리면서도 피어 있는 모습이,
참 다정했고, 어딘가 슬프도록 아름다웠다.
꽃 한 송이 피우기 위해
고단했을 너의 여정들과
앞으로 시들어갈 일만 남았다는 애달픈 사실을 알지만,
그럼에도 온 세상에 너의 존재를 뽐내며
환하게 미소 짓는 장미를 보니
당연했던 모든 것들이 당연하지 않아졌다.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로받는 순간들이 있다는 걸,
그날 엘르 장미가 내게 가만히 알려주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속삭이듯 말했지.
“너처럼 나도, 흔들려도 꺾이지 않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