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죽음을 비껴 살아간다

쉼표, 그리고 며칠.

by 심온

익숙한 카톡방에 메시지가 쌓여 있다.


오늘은 또 누구의 생일이지? 열아홉 명의 대학 동아리 동기들이 모인 곳. 졸업 후에도 매년 생일이면 따뜻한 축하 메시지가 오가던 그곳에, 오늘은 낯선 단어와 말줄임표가 가득하다. 화면을 위로 올리다 멈춘 내 손가락이 떨린다. 이 믿기지 않는 소식 앞에서,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이게 뭐야 대체.


"<부고> 너무 갑작스러운 소식이라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 ㅇㅇ가 오늘 자전거를 타다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아직 장례식장을 잡지 못해 조문은 내일부터 가능하다고 하니, 정해지면 알려줄게. 너무 가슴 아프고 안타깝다."


평소 일상을 조용히 살아가던 착한 친구의 부고를, 이제는 부장검사가 된 동기가 전했다.




우리는 합창단에서 함께 노래했다. 그의 테너와 내 베이스가 어우러지던 그 시절이 문득 떠오른다. 법대생이었지만 스타크래프트에 더 열정적이었던 친구. 어떤 전략으로도 이길 수 없던 그의 게임 실력은 지금도 전설로 남아있다.


잘생긴 외모와 달리 수수하고 털털했던 모습이 선명하다. 대학 시절부터 함께였던 여자친구와 결혼을 했고, 그의 집들이 이후로는 가끔 동기모임에서나 마주칠 수 있었다.


우리 동기들은 서로의 소소한 행복을 나누며 살아왔다. 결혼식장에서의 축복과 새집의 설렘을 함께했고, 희미해진 기억들은 서로의 입을 통해 다시 생생하게 피어났다. 그렇게 우리는 수십 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걸어왔다.


순식간에 우리는 한 사람을 잃었다. 영정사진 속 그의 밝은 미소만이 우리와 함께 남았다.


장례식장 2호실에서 그녀와 마주쳤다. 세월이 흘렀지만 그녀의 모습은 여전했다. 작은 키에 순정만화를 닮은 얼굴, 그러나 커다란 눈에 담긴 익숙한 웃음 대신 깊은 슬픔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저… 대학 친구…"

목소리가 떨렸다. 제수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죠, 왜 모르겠어요."


아이는 아빠를 닮아도 너무 닮았다. 제수씨의 눈가가 붉어졌다.


"마지막까지도 우리 곁에 남아 있고 싶나 봐요."

그 한마디가 내 마음을 후벼 팠다.


하얀 국화꽃 사이로 친구들의 발걸음이 무겁게 이어졌다. 장례식장 테이블에 둘러앉은 여덟 명의 동기들은 말없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본다. 휴대폰 화면에는 늦는다는 메시지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장례식장이 아닌 평소의 뒤풀이 자리였다면, 우린 자연스레 합창곡 '남촌'을 불렀을 텐데. 녀석과 함께.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가 한자리에 모였지만, 노래 대신 침묵만이 흘렀다. 늦게 도착한 친구 - 지금은 뮤지컬 제작사 대표가 된 그 친구마저도 평소의 지휘봉 대신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였다.


누군가의 눈물이 조용히 흘렀고, 떨리는 목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갑티슈가 테이블 위를 건네며 돌았다.


"며칠 전에 다들 생일 축하했잖아..."

"너무 아까워, 이렇게 좋은 친구를..."

"비 오는데 자전거를 왜..."


나는 말없이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들여다본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처럼 따스한 터치로 그려진 프로필 사진 속에서 그와 아내가 환하게 웃고 있다. 배경 사진은 자전거를 잠시 세우고 쉬고 있는 그의 모습. 그리고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김동률의 '출발'. 이 모든 것이 그의 마지막 흔적이 되어버렸다.


친구가 며칠 전 단체방에 남긴 마지막 메시지를 몇 번이고 읽어본다.


“오~~ 다들 축하 인사 고맙다. 카톡이지만 오랫동안 못 본 동기들이 이름 불러주고, 축하해 주니 기쁘네. 다들 좋은 하루 보내~~”


축하 메시지 목록에서 내 이름은 없었다. 혼자만의 동굴 속에서 알림을 꺼두고 침묵으로 일관하던 나, 존재감조차 지우고 싶어 나가기 버튼도 누르지 못했던 나는 결국 그의 마지막 생일에도 축하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소프라노였던 친구가 연신 티슈를 뽑아 눈가를 닦아낸다.


"그나저나 심온아, 너는 어떻게 지내?"

"응... 회사 그만두고 잠시 쉬고 있어. 글도 조금 쓰면서..."

"힘들겠구나... 우리 살아가는 게 왜 이렇게 무거워졌을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어."


그녀의 젖은 목소리가 허공으로 흩어진다.


"죽음을 비껴 살아가는 것 같아, 심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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