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그리고 며칠.
긴 쉼표를 찍은 며칠 후, 나는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농업교육센터의 온라인 강의를 듣고 난 뒤의 결정이었다. '딸기농장은 좀 더 체계적으로 접근해야지'라는, 그럴듯하게 포장된 도피처를 찾아낸 것이다.
그랬다. 처음에는 도피였다. 잊기 위한 도피. 머릿속에 켜켜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기에는 글쓰기만 한 것이 없으니까.
오래전 휴대폰 메모장에 쌓아둔 단편적인 생각들이 손끝을 간지럽힌다. 시놉시스는 이제 너무 많이 읽어서 한 번에 외울 정도가 됐고, 목차는 매일 밤 그 모양새가 바뀐다.
노트북을 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이야기의 파편들.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그럴듯한 명함 뒤에 숨어 방황하는 한 직장인의 일상을, 그 일상의 틈을, 그 틈 속의 위로를, 나는 오늘도 한 줄 한 줄 써 내려간다. 이 단어와 문장들이 모여 어디로 흘러갈지, 솔직히 나도 모른다.
실명 따위는 쓰지 않기로 했다. 세상에 하나쯤은 있어야 할 비밀이니까.
이제 나는 남들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를 쓴다. 보도자료에 길들여진 손가락들이 아직도 객관성이란 허울 뒤에 숨으려 하지만, 그래도 좋다. 한 문장, 한 장면을 수십 번 고치다 보면 어느새 내 안의 진실과 마주하게 되니까.
매일 밤 읽고 또 읽고, 지우고 또 지운다. 좋아하는 작가의 문장을 흉내 내보기도 하고, 글쓰기 책들 사이에서 길을 잃어보기도 했다. 틈이 날 때마다 그 책을 꺼내 읽는다.
MBTI에서 나는 강한 P다. 꽉 짜인 것에 숨이 막힌다.
순서는 잊은 채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들을 스케치하듯 써내린다. 퍼즐 조각처럼, 언젠가는 맞춰질 테니까. 시놉시스도 있고 목차도 있지만, 글이란 게 계획대로 흘러갈 리 없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새드엔딩이어야만 한다. 내가 나 자신의 위로가 될 테니까.
소설이니까, 픽션이니까. 내 마음대로 고쳐 쓸 수 있다고 스스로를 속여본다. 겨울을 봄으로, 눈을 비로. 왜냐고? 그래야 더 쓸 말이 많아질 것 같아서. 그리고… 난 비가 좋으니까.
이런 내 취향대로, 소설 속 주인공의 유년기에도 비를 들이밀었다. 마치 누군가의 기억을 빌려 쓰는 것처럼, 혹은 내 것을 빌려주는 것처럼.
어린 시절부터 그는 비가 오는 날이면 창가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마치 비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마음을 빼앗긴 듯 좋아했다.
반드시 상어를 잡고 말 거라며 집 앞 연못에 대나무 낚싯대를 드리우던 여섯 살 꼬마, 그의 눈앞에 미지의 바다를 연상케 하는 안개구름을 만들어 주던 이슬비.
사자만큼 덩치가 크고 털이 길었던 절친한 친구 '샘'과 먼 곳까지—학교 반대 방향으로 족히 이백 미터는 되었을—모험을 떠났다가 돌아오던 길에 커다란 소리로 아이를 깜짝 놀라게 했던 굵은 빗방울의 소나기.
소년의 걸음으로 먼지 풀풀 날리는 흙 길을 삼십 분은 족히 걸어가야 했던 등굣길, 그 길 중간중간 놀거리를 만들어 주었던 빗물 고인 웅덩이들.
“엄마 저것 봐” 소리치며 온 가족을 소년의 곁으로 불러 모으게 만들었던 비 그친 뒤의 무지개.
펜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젓는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이쯤에서 접어두자. 더 파고들면 감정이란 깊은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테니.
대신 나는 새로운 캐릭터를 그려본다. 가상의 여자가 내 머릿속에서 태어나는 순간, 묘한 설렘이 찾아온다.
"근데, 심온아, 나 화장실이 급한데…"
음식점의 화장실이 너무 지저분해서 그냥 돌아왔다고 하더니 꾹 참은 모양이다.
"저기 들어가 보자" 남자가 골목길 맞은편의 한 호텔을 가리켰다.
"그럴까?" 여자는 호텔 로비에서 화장실을 찾는 듯 연신 사방을 두리번거렸고, 남자는 프런트 안내 직원과 대화를 나눴다. 잠시 후 남자의 손에 1102호라고 적힌 열쇠가 들려 있었다.
그제야 숙영이 소리를 내진 않았지만 분명히 들릴 듯한 "뭐야?"라는 눈빛과 입 모양을 보내왔다. 가까이 다가온 그녀가 킥킥 웃으며 '뭐야, 너?'라고 말했다.
"화장실 가고 싶다며?"
"야! 화장실 가는 데 너무 비싸잖아. 나 참을 수 있어."
"안 돼, 참으면 큰일 나." 남자가 나름의 엄중한 표정을 지었다. 엘리베이터는 멈출 새도 없이 11층으로 쏜살같이 올라갔다.
그리고 나는 문득 깨닫는다. 무심코 던진 문장 하나가 내 심장을 파고드는 것을.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만든 이야기가 나를 찌르고 있다.
회사를 그만둔 후로는 동네 도서관을 찾아 미뤄두었던 책들을 읽는다고 했다. 때로는 기차에 몸을 실어 낯선 역에 내리기도 하고, 때로는 버스를 타고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그의 눈빛에는 아직도 피곤함이 남아있었지만, 적어도 절망은 보이지 않았다.
시은은 그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치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책과 여행이라는 작은 도피처에서, 그는 조금씩 자신을 되찾아가고 있는 듯했다.
“잘했어요… 잘했어. 잘한 거야……”
시은이 남자의 가슴을 토닥였다.
소설의 주인공이 안쓰러워 죽겠다니.
스스로 만든 허상에게 공감하는 이 아이러니.
작가도, 독자도 아닌 이 어중간한 위치에서 나는 그저 세상을 슬프게 바라보는 한 명의 관찰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