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그리고 며칠.
"따뜻한 라떼 한 잔 드릴까요?"라고 물어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말을 꺼낸다. "따뜻한 라떼 한 잔이요." 점원은 이미 알고 있다—내가 원하는 것을.
처음엔 "드시고 가세요?"라며 조심스레 물었던 그가, 이제는 말없이 진동벨을 내민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게 됐다.
같은 시간, 같은 자리, 같은 메뉴. 하루하루 쌓여가는 라떼 잔처럼 나의 존재감도 진하게 우려 진다.
이제는 카페라떼 거품에 하트 모양도 그려주지 않는다. 그게 조금은 서운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과거에 카페를 점령하듯 앉아있는 사람들을 향해 쓴소리를 했었다. '민폐'라는 단어로 그들을 재단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민폐'의 주인공이 되어 있다. 인생이란 참 묘하지 않은가.
도서관이라. 그들은 그곳의 한 곳을 '노트북실'이라 부르지만, 키보드 소리 하나 용납하지 않는 아이러니한 공간이다. 전원 콘센트만 있는 열람실이라 부르는 게 더 정직할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이곳.
집에서 걸어서 10분, 현실도피를 위한 최적의 거리다.
아침 8시부터 새벽 1시까지—마치 나의 불면증을 위로하듯 긴 영업시간을 자랑한다.
5천 원으로 누릴 수 있는 소박한 사치. 화려한 인테리어도, 감각적인 플레이리스트도 없는 이곳. 하지만 그런 허세가 없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70대 어르신들과 노트북을 든 청춘들이 공존하는 기묘한 공간. 시간이 멈춘 듯한 이곳에서, 우리는 각자의 고독을 나누어 마신다.
매일 보는 얼굴들. 이제는 친숙해져서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가, 서둘러 시선을 돌린다. 우리는 모두 서로의 존재를 알지만, 모르는 척하는 데 능숙하다.
나는 또 글을 쓰고 있다. 이 허름한 카페의 가장 구석진 곳에서, 마치 도망자처럼.
인간의 소음이 교차하는 이 공간. 누군가의 키보드는 빗소리처럼 단조롭게 울리고, 옆자리에선 '바쁘다 바빠'를 연기하는 이의 통화가 흘러나온다.
"네, 카페에서 공부하고 있어요." 거짓말쟁이.
창가의 중년 여인들은 타인의 불행을 양념 삼아 점심을 즐긴다. "그래서 내가 말했지…" 시작되는 그들의 수다는 늘 같은 멜로디를 타고 흐른다.
이 모든 것이 재즈와 뒤섞여 기묘한 불협화음이 된다. 에스프레소 머신의 쉭쉭거림, 접시가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끊임없이 열렸다 닫히는 문. 우리는 모두 이 부조화의 작은 연주자들이다.
나는 온라인 중고장터에서 건진 헤드폰을 머리에 씌운다.
노이즈 캔슬링은 축복과도 같은 기능이다.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지금은 케이티 멜루아(Katie Melua)의 음악이다—도 이제는 백색소음처럼 무감각해졌지만, 그래도 이게 낫다.
뜨겁지 않았던 카페라떼는 식는 것도 빠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