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손잡고 산책했던 시간.
돌이야.
누나는 오늘, 너와 함께 했던 좋았던 기억들을 떠올리려 애쓰고 있어.
너에 대해 글을 쓰려면 항상 슬픔이 북받쳐 올라 누나는
어쩔줄을 모르고 글을 썼다 지웠다 하면서 하염없이 울곤해...
그래서 앞으론 네가 좋아했던 것을 떠올리며 울지 않으려 애쓰고 있어. 벌써 눈물이 눈안에 가득차오지만..
사람에게 성격이 있고 취향과 호오가 있듯이 강아지들도 분명 성격이 있고 취향과 호오가 있어. 그건 모든 생물들이 그럴거라고 누나는 생각해. 식물도 성격을 가지고 있을거야..
너는 부드럽고 착하고 심지어 담이 엄마는 네가 예의를 차리는 아이라고 할 정도로 점잖고 어떤면에서는 눈치가 빨랐어. 너로 인해 주변이 불편할만한 일은 별로 안했고 다른 강아지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걸 너는 싫어했지. 내가 이런 이야길 하니 형아는 '아니야 돌이도 어렸을땐 지 하고 싶은거 다 했어!' 라고 주장했지만 그 '지가 하고 싶은 일'도 대체로 우리가 감당할수 있을 정도였으니 어렸을 때도 너는 그렇게 크게 장난꾸러기는 아니었던 거야.
어렸을 때 너는 산책할 때 낯선 강아지들을 만나 인사하는 걸 좋아했어. 네가 두살 무렵이었을까. 두물머리 산책을 할 때였는데 그때만해도 두물머리에는 사람들이 적어서 늘 리드줄과 함께 산책하는 네가 안쓰러워 사람없는 곳에 풀어준 적이 있었지. 너는 신나게 여기저기 길가 풀냄새를 맡으며 다니다가 갑자기 들판으로 뛰어 들었어. 누나와 형아는 그야말로 혼비백산했는데 너는 신나게 들판을 가로질러 달려 들판 저쪽에서 산책하던 강아지에게 인사를 하러 뛰어갔어. 지금 생각해도 간담이 서늘하다. 그때 네가 만난 강아지가 큰 강아지였으면 어쩔뻔했니? 그리고 그 강아지의 반려인이 네가 공격하는 줄 알았으면 어쩔뻔했니? 다행히 너를 따라 들판을 가로질러 뛰어 간 형아를 보고 그쪽 강아지 반려인은 웃으며 이해를 해주셨지. 그후론 산책길에서 네 리드줄을 풀어주는 건 정말 정말 조심했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누나는 그 줄이 안쓰럽기는 했어. 자유롭게 다니고 싶을텐데... 속박하는 것 같아서.
그런데 언젠가 누나가 읽었던 어떤 일본 사진작가의 글에서 누나는 너의 리드줄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어. 그 작가도 처음에는 자기 강아지에게 리드줄하는 것이 속박하는 것 같아서 싫었대. 그런데 어느날 그분도 다르게 생각을 가지게 되었대. 강아지는 손이 없으니 손잡고 걷고 싶어도 할 수가 없으니 그걸 대신하는게 리드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그 말을 읽고 누나는 무릎을 탁 쳤어. 맞다. 사랑하는 이들은 서로 손잡고 팔짱끼고 기대고 싶은데 강아지는 그러고 싶어도 그럴수 없으니 리드줄이 그걸 대신하는 구나. 강아지는 리드줄을 통해 반려인과 손을 잡는구나... 하고.
그러고 보니 너는 누나의 리드줄을 네 온몸으로 느끼며 함께 산책을 했어. 누나가 조금 느슨하게 리드줄을 잡을 때면 무슨 일 있어? 하는 듯이 돌아보았고, 가고싶은 곳이 있으면 리드줄을 끌며 누나를 인도했지. 때로 안전한 곳에서 리드줄을 풀어주면 여긴 안전하구나 하고 기꺼이 주변을 즐겨주었고, 누나가 리드줄을 다시 하자고 하면 아 다른데 가자는구나 알아차리고 기꺼이 리드줄을 했어. 그건 마치 서로 손을 잡는 것 같은 일이었던 거야. 마치 엄마가 아이의 손을 잡고 걷듯이 리드줄은 너와 누나의 마음을 이어주는 끈이었고 너를 보호하는 장치였던 거야.
산책을 하러 가자고 하네스와 리드줄을 챙겨들때, 그 순간을 너는 가장 좋아했었지. 리드줄이 너에게 속박이 아니라 누나와 손잡고 즐겁게 산책하는 시간을 의미했던 게지....
네가 떠난뒤, 49일 동안 내내 그대로 두었던 너의 리드줄과 하네스를 너의 유품으로 상자에 보관하면서 누나는 너의 손을 놓치는 기분이 들었어. 다시는 잡을 수 없는 손. 너와 나를 하나로 이어주던.....
그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이 다시는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그날 누나는 참 많이 힘들었단다....
너는 여러가지 하네스와 목줄과 리드줄을 가졌지만 제일 오래동안 했던 하네스와 리드줄은 하늘색이었어. 그 색을 누나가 좋아하기도 했지만, 너에게 참 잘어울리는 색이라고 누나는 늘 생각했어. 하늘색 하네스와 리드줄을 하고 누나의 2보 앞에서 살랑 살랑 걷던 네 뒷모습을 다시 볼수 없다는게....너무 힘들다. 당연한듯 영원히 계속될것 같던 그 시간이 이젠 없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하늘색 리드줄로 서로 손을 잡고 서로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보폭을 맞추며 리드줄을 잡은 2보 뒤에 선 누나의 마음과 기분을 살피던 너, 2보 앞에 가는 너의 걸음걸이로 너의 기분과 건강을 체크했던 누나....
우리 참 행복했었다. 그치? 돌이야.
2024. 8.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