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체온...
아침에 눈을 뜨면 언제나 곁에 있었던 돌이야.
밤새 현관앞을 지키듯이 자다가 아침이면 침대로 올라와 깨우듯이 일부러 누나 발위에 몸을 털썩 눕히며
누나가 일어나 쓱쓱 쓰다듬어 주길 기다리던 너.
어떤 날은 누나의 베개를 나눠 베며 품에 파고 들어 안기듯이 눕던 너.
때론 누나 등에 네 등을 붙히고 따스한 체온을 나누어 주던 너.
그런 네가 없는 아침이 이제 5개월째 접어들었어.
아직도 여전히 누나는 아침에 눈뜰때면 돌이가 왜 안오지? 얘 어딨나 생각하다가.
네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사실을 깨닫고 무너지고 있어...
이제 누나는 아침이 하나도 반갑지 않아....
눈을 떠서 네가 없다고 깨닫는 시간이 싫어...
그래서 누나는 잠에서 깨고도 한동안 그냥 멍하게 누워 있어.
너는 누나 곁에서 출근준비하는 형아를 바라보곤 했어. 형아가 현관을 나설때면 누나를 재촉해서
같이 배웅하자고 했지.
때로 누나가 너와 더 누워 있고 싶어서 일부러 미적거리면 너는 혼자라도 배웅하겠다며 현관으로 형아를 따라가곤 했어. 형아가 현관을 나서면 문이 닫힐때까지 바라보다가 너무 아쉬운듯 형아가 벗어놓은 슬리퍼 옆에 한동안 누워 있던 너. 그런 너를 누나가 담싹 안아 데리고 들어와도 너는 다시 형아의 슬리퍼가 있는 현관으로 갔어. 형아의 냄새를 맡으며 형아가 나간 이후의 쓸쓸함을 달래곤 했지. 그리고 충분히 쓸쓸함이 사라지고 나면 누나에게 다시 슬금 다가왔어.
너는 무릎강아지는 아니었어. 사람에게 매달리고 항상 붙어 있으려 하는 강아지도 많은데
너는 너의 바운더리와 루틴을 지키고 우리와의 관계도 스스로 조절하고 그걸 존중받고 싶어했어.
물론 네가 먼저 다가와 기대거나 만져 달랄 때도 있었지.
때로 네가 혼자 집에 오래 있었던 날엔 외출에서 돌아온 누나에게 다가와서
그동안 외로왔다고 쓰다듬어달라고 요청했어
그때 누나는 깨달았단다. 그루밍의 중요함을... 그건 너의 외로움을 달래고
집을 비웠던 누나의 미안함을 상쇄시키고 그러면서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위로하는 그런 행위였어.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신뢰를 회복하는 시간이었어.
그순간 더 위로받았던건 네가 아니라 누나였을지도 몰라....
쓰다듬으면서 서로가 곁에 없는 동안 허전했던 마음이 어느정도 채워질때면 너는 담백하게 일어서서 네 자리로 갔어. 오래 애정을 갈구 하지 않아도 이미 우리는 서로가 사랑하는 사이라는 걸 획인하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듯.
그렇게 너는 어느정도는 서로의 공간과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이였지.
너는 옆에 나란히 앉아 있는 건 무척 좋아했지만, 안기는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던 것 같아.
때로 누나의 무릎에 턱을 괴기도 했지만, 나란히 체온을 나누며 곁에 조용히 앉아 있는 걸 더 좋아했던 것같아.
누나는 그게 때로 섭섭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너의 그런 태도에 존경심 같은 것도 느꼈어.
독립적이고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는 당당한 네가 멋있었어.
그래서 누나는 너의 식탁의자를 특별히 만들기도 했어. 너는 우리와 언제나 함께 있고 싶어 했지만, 너만의
자리를 원하기도 했어. 함께 있지만 각자의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자리말야.
휴일 아침, 형아와 누나, 너는 함께 식탁에 둘러 앉아 아침을 먹었어.
너는 네 의자에서 누나가 먹여주는 아침 간식을 하나씩 받아 먹거나 개껌을 씹었고
형아와 누나는 늦잠 잔 휴일 아침의 빵이나 과일을 커피와 함께 먹곤 했어.
그 시간을 너는 참 좋아했어. 너를 네 의자에 앉혀주려 할때면 너는 신나하며 의자주변을 빙글 빙글 돌았지.
독립적이지만 연결되어 있고 질척대지 않지만 충분히 서로의 체온을 나누고 눈을 맞추는 시간...
그때 너는 참 행복해하는 것 같았어...
너의 식탁의자는 담이와 도비에게 물려 주었어. 도비가 의자에서 네 냄새를 맡곤 참 좋아했대.
담이 엄마는 그 의자가 네가 담이와 도비에게 준 선물이라고 네게 고맙다고 하더라...
독립적인 너였지만 한군데에서는 절대 그럴 수 없었지. 누나는 사실 그 시간을 너무 좋아했다.
그건 차 안이었어. 창밖 바라보길 좋아했던 너는 조수석에 앉은 누나에게 폭 안겨서 창밖을 보곤했지.
나이가 들면서 그러지 않았지만, 어렸을 때는 누나를 지지대 삼아 일어서서 앞차창을 바라보며 스피드를 즐기기도 했지. 그때 누나는 너의 허리를 꽉 잡고서 네가 넘어지면 어떡할까 노심초사했지만 그게 또 그렇게 즐겁기도 했었어. 지금 생각하면 위험한 순간들이었지만, 네가 그걸 너무 좋아해서 말리지도 못했고 사실 누나나 형아도 너의 기쁨이 우리들의 기쁨이 되어 그 순간을 즐겼던 것 같아.
네가 나이들어 더이상 앞차창을 바라보며 스피드를 즐기지 않게 되었을 때 조금 섭섭하기도 했었지....
지금도 형아와 차를 타고 갈때면 네가 없다는 사실이 너무 이상하다.
당연한 듯 누나 품에 안겨있거나. 발치로 내려가 누나 발등에 턱을 괴고 누워 있거나.
뒷자리 네 방석에 누워 있거나 했던 네가.... 이젠 없다....
때로 바깥 공기를 쐬고 싶을 때 창을 열으라고 앞발톱으로 긁은 흔적이 조수석 옆차창에 가득한데...
네가 없어.... 이제...
요즘도 누나와 형은 금요일 밤에 문호리로 가. 거기 강가 네가 묻힌 나무를 보려고.
금요일 밤 드라이브는 언제나 우리 셋이서 같이 했는데... 팔당을 지날땐 네가 차창을 열어달라 해서
알싸한 강바람을 같이 느끼곤 했는데...
양수리 거쳐 문호리 들어가는 강변길 바람에 너는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한껏 기분을 내곤 했는데....
그때 누나는 너를 꼭 안고서 너의 체온과 너의 기쁨을 온 마음으로 느끼며
문호리가는 드라이브길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단다.
그런데 돌이야....
이젠 누나와 형아 둘뿐이야...
2024.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