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미대한제국공사관 방문기 part 3.
앞서 장황했던 조미수호통상조규와 보빙사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지루하지 않았길 바라며,
오늘은 드디어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지금은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북동쪽 로건서클에 위치한 주미대한제국공사가 다시 우리 대한민국의 품으로 돌아온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보빙사 방문 후 1888년에 조선은 마침내 공사관을 세우고, 1889년에 현재 로건서클에 위치한 곳으로 이전하였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빅토리안 양식의 외관과 조선의 것과 서양 것을 조화롭게 꾸며 놓은 내부의 대한제국 공사관은 당시로서는 멋진 건물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1905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을사늑약을 체결되고 외교관이 박탈되면서 대한제국 공사관의 수난기가 시작되었다.
조선의 외교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고종이 무리를 해서라도 구입하고 싶어 했던 이 건물이 17년 만에 제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1910년 8월에 강제 병합이 되고 난 이후에는 이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우리의 것이 일제에 의해 단돈 5달러에 강제 매입되었다.
이 부분을 해설사님께 들었을 땐 진짜 눈에서 욕이 나왔다. 누구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5달러로 사놓고 강제 “매입” 했다고? 강탈했다는 소리 나올까 봐 무서워 “매입”을 한 건가….
우린 뭐 강탈이 아닌 5달러로 매입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해야 하나…
정말 욕을 바가지로 하려다 차마 한복을 입고 그런 나쁜 말을 할 수는 없어서 속으로만 했다.
1945년 8월 광복을 했지만, 또다시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 이어지는 한국전쟁, 가난과 기근, 그리고 수많은 민주항쟁들을 거치면서 우리나라는 식민지배 이후에도 이어지는 후유증과 혼돈으로 미처 이 건물을 챙길 여력이 없었다. 비교적 최근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미국에 있는 한인사회들 사이에서 이 건물의 소유권을 되찾자는 논의가 있었고, 2012년에 문화재청과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재매입을 해서 2018년에 드디어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현재 이 건물은 19세기에 워싱턴 D.C. 에 있었던 32개국의 외교 공관 중에 원형을 가장 잘 간직한 유일한 건물로 평가받아 한국인들 뿐만이 아니라 세계 여러 국가의 사람들이 이 건물을 방문한다.
그 오랜 시간 같은 사람에게 관리된 것도 아니고 끊임없이 소유권이 바뀌면서 내부 공사를 수차례 하며 달라졌을 텐데 미국 수도에 존재하는 공관 건물 중 원형과 가장 비슷하게 복구했다며 칭송받았다는 게 기쁘기도 하면서 “도대체 어떻게…”라는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더 방문해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공사관 외형은 1893년에 찍힌 흑백 사진에서 봤던 모습과 정말 똑같았다.
흑백에서 칼라로 바뀐 것일 뿐 외형은 과거와 동일했다.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땐 마치 시간 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안에 들어서면 향기에 색깔이 있다면 향기마저 황금색일 것 같이 2층으로 이어지는 황금색 카펫, 황금색 커튼과 황금색의 장식들이 나를 대한제국에 오게 한 느낌을 들게 했다. 당시 대한제국 황제의 위엄을 보여주려고 꾸민 황금빛 내부가 대한제국 공사관의 첫인상이었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면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것이 태극기다. 지난 편에서 소개하였듯 태극기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공식석상에서 쓰였다는 것을 알고 보니 의미가 더 남달랐다.
오른쪽 벽면 문과 문 사이를 가득 채울 정도의 크기의 태극기가 1층 내부를 압도했다.
빅토리안 양식으로 꾸며져 있어 자칫하면 ‘부유한 서양 사람의 집이구나’ 할 수 있는 착각을 단번에 막아주는 게 이 대형 태극기다. ‘이곳은 대한제국 공사관이다!’라는 것을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도록 이 태극기는 이 곳이 어디인지를 분명히 말해주고 있었다.
내부를 보니 정말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잘 꾸며진 박물관 정도의 느낌이 아니라 정말 시간 여행을 왔나 착각할 정도로 과거의 모습 그대로 꾸며놓은 내부를 보고 있자니 '아니 진짜 어떻게 이렇게 만들었나' 싶었다. 해설가 분께서 내부를 재현할 때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사진과 문서들을 다 찾아서 그때 실린 기사 속의 사진들을 조합해서 최대한 당시 모습과 일치하게 재현했다고 하셨다. 임의의 상상력 대로 아무렇게나 그럴싸하게 꾸며진 게 아니라 113년 만에 다시 우리 민족에게 보일 이 공간을 가능하면 완벽하게 재현해내고 싶어 작은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니 정말 너무 감사하고 그분들의 노고가 아깝지 않게 모든 부분을 보고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들어서자마자 태극기를 사진 찍고 나면 그 옆에 오리엔테이션 룸이 있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에 대해 특별한 사전 지식이 없이 들어와도 처음 이 오리엔테이션 룸에서 보여주는 영상을 통해 이 공사관의 중요한 역사적 의의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다.
오리엔테이션 룸에서 영상을 다 보고 나오면 1층 왼쪽에 위치한 객당이 있다.
객당은 외부 손님을 맞이하는 접견실이다.
이곳의 과거 모습을 알 수 있는 흑백사진을 방문하기 전에 보고 와서 나는 개인적으로 이 객당이 가장 신기했다. 1893년에 미국 신문에 소개된 손바닥 만한 흑백사진을 토대로 오늘날 이렇게 재현했기에 너무 신기하고 놀라웠다. 그 기사에 대한제국 공사관의 객당의 벽면은 녹색이고 커튼 색은 갈색이고 하며 객당 내부를 묘사해놓은 기록이 어느 정도 상세하게 있어서 그것을 바탕으로 재현했단다.
무엇보다 나를 정말 즐겁게 만들었던 것은 객당의 인테리어다. 평소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아 옷이나 화장품보다 인테리어 소품 사는 것을 더 좋아하는 나를 사로잡았던 게 동서양의 믹스매치다. 외관부터 느껴지는 빅토리안 양식의 디테일과 크리스털 샹들리에와 고풍스러운 가구들이 공사관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잡고 있지만 구석구석 조선의 청화 백자, 수가 놓인 병풍, 태극무늬 스테인글라스, 태극기 쿠션 (아, 이거 정말 가지고 싶었다… 누가 주미대한제국공사관 굿즈 안 만드나요…) 등등이 빅토리안 양식의 물건들과 조화를 이루어 독특하고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 공간이 당시 조선의 근대화로 가는 과도기적 모습을 정말 잘 나타내 주는 것 같았다.
객당 옆에는 공사가 업무를 보는 정당이 있다. 정당은 공사관 건물 내부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공적인 공간이다. 이 공간의 오른쪽 벽면에는 고종의 어진과 황태자의 예진이 있다. 매월 음력 초하루와 보름, 임금의 탄신일과 같은 의미 있는 날에 임금이 계신 곳을 향해 망궐례를 올리는 장소였다고 한다.
(망궐례: 궁궐이 멀리 있어 직접 궁궐에 나아가서 왕을 배알 하지 못할 때 멀리서 궁궐을 바라보고 행하는 예.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어쩌면 이 정당이 당시 대한제국 공사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을 공간이라고 생각하니 정당 구석구석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비교적 작고 추웠던 이 공간에서 대한제국의 위상을 세우고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하셨을 위풍당당 박정양 공사와 부전자전 이범윤 공사 (이범윤 공사의 아들은 헤이그 특사로 이후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네덜란드로 떠난 이위종이다)가 이곳에서 집무를 하셨을 생각을 하니 뭔가 마음이 찡했다.
혼자 감상에 젖어, “흑… 이 좁고 추운 집무실에서… 기울어가는 조선을 위해… 얼마나…” 이러고 있는데 탁자 위에 올려진 이완용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이 전 편에서 짧게 소개하였 듯 이완용은 원래 친미 인사였고, 그랬기 때문에 박정양 공사와 함께 미국에 왔었다고 한다. 이 의미 있는 공간에 좋은 것만 있으면 좋았을 것을 이곳에서 이완용 사진을 보게 되면서 “당신이 왜 여깄어. 여기가 어딘 줄 알고.”라고 또다시 거센 된소리를 내고 싶었지만, 아픈 역사도 우리 역사고 아픈 역사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도 많으니 참자... 하고 건너편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건너편에는 식당이 위치해 있다. 공사관의 식당은 음식 먹는 장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식당은 외교활동에 따른 사교의 장이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각국의 외교 사절들과 미국의 행정 관료들, 심지어 미국 대통령 부인 프랜시스 클리브랜드도 방문할 정도로 활발한 외교의 장이 펼쳐진 곳이다.
식당을 둘러보며 당시 조선 후기 때부터 이어오던 가부장적인 사고를 깨고 직접 외교의 장으로 나온 공사 부인들에 대한 생각이 났다. 미국으로 오기 전 조선에서의 생활은 어떠셨는지 모르지만, 이곳에 와서 특히 이 식당에서의 공사 부인들의 활약은 대단했다고 한다.
나랏일이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고정적 사고방식을 깨부수고 외교는 국가 사이에 서류가 오가는 것뿐만이 아니라 식사 대접과 사교 활동을 통한 soft power로서의 외교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곳이 이 식당이고 그걸 이끌어 낸 분들이 공사관 부인들이다.
이분들에게 크고 먼 이국 땅까지 와서 바라본 조선의 현실은 풍전등화와 같았을 것이다. 그러한 조국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또 남녀를 구별하지 않고 공사 내외 모두가 여러 방면에서 힘썼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했다. 공사 부인들의 초청으로 미국 영부인도 방문을 하고 이 곳에서 큰 파티가 있었을 때면 몇 백 명의 사람이 방문했을 정도라고 했다. 조용하고 작은 국가 조선이 미국 땅에서 이러한 영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공사관 부인, 즉 여성이 분명히 있었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 2층과 3층 소개는 다음 편에서 계속...
간판 사진 thanks to 나의 벗 박은미
주미대한제국공사관 정보
오전 10시~오후 5시, 화~일요일 (월요일 휴관)
무료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