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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ri Lee Mar 28. 2020

잘 보고 가요. 또 올게요.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방문기 마지막 편.

100년 전에 만약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을 방문했다면 나는 내 평생 이 건물 2층은 올라가 보지 못했을지 모르겠다. 1층이 공적인 공간이었던 반면 2층은 공사 침실, 집무실, 서재 등의 사적인 장소들로 이루어져 있어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되었었다. 113년 전에 왔으면 절대 올라가 보지 못했을 계단을 오르면서 갑자기 감개무량해져 계단을 오르다 말고 카메라를 들었다. 과거 이 위치에서의 공사관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던 특권은 누구에게나 허락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니 꼭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나는 미국에서 지난 8년간 살면서 이사를 참 많이 했다. 대학생 때는 일 년에 적어도 한 번 혹은 두 번도 짐을 쌌다 풀었다 했다. 생각해보니 1년 이상 살아 본 집이 없다.  

이렇게 아무리 짧은 기간을 살아도 난 내가 지내게 될 공간을 열과 성을 다해 꾸민다. 

교환학생으로 간 4개월 남짓 있을 아르헨티나 집에서도 벽에 색감이 예쁜 포스터를 찾아 붙이고, 친구와 가족들 사진을 붙이고, 예쁜 램프를 사다가 놓고, 향초를 피우고,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시선이 닿는 구석구석에 배치해 두었다. 

나는 공간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간접적이지만 가장 정확하게 말해 준다고 생각한다.  

내 방이나 기숙사를 놀러 온 친구들은 “와 진짜 너 같이 꾸몄다” 혹은 “진짜 너 아니랄까 봐…”라는 말을 하며 나의 작은 공간을 둘러본다. 사적인 공간을 어떻게 꾸몄는지만 봐도 취향은 뭔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어디에 신경을 쓰는지 그 사람의 성향에 대해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내 친한 이들을 내 공간에 초대하는 것도 좋아하고 내가 그들의 공간을 구경하는 것도 좋아한다. 그 사람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것 같아서… 


이런 성격의 소유자인지라 2층 침실을 갈 땐 어느 때보다 더 두근거렸다. 

“과연 공사님은 어떤 성격이었을까? 사모님은? 어떤 취향이셨을까?”하며 들어갔다. 

 2층 침실은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 공사관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이다.  

2층 공사 침실

아래층의 다소 무게감 있고 공적인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2층 침실의 꽃무늬 벽지, 레이스 커튼, 실크 소재의 에메랄드 색 커튼, 벽난로, 화장대, 장신구 등등이 나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아쉽게도 2층을 재현해 낼 때는 1층을 재현할 때와 같은 구체적인 자료나 사진이 없어서 규장각 문헌의 주미내거안 (駐美來去案)을 근거로 약간의 상상력을 가미해 만들어 낸 것으로 안다. 주미내거안에는 각 방에 배치된 물건 목록이나 집기류의 수 정도가 기록되어 있고 이것을 토대로 가구들을 알맞게 배치를 한 것이라고 하니 1880년대 공사 부부의 침실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는 정확히는 모른다. 하지만 눈 앞에 펼쳐진 아기자기하고 여성스러운 스타일의 인테리어를 보고 공사 내외의 성격과 취향을 상상해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부디 아름답고 아늑해 보이는 이 공간에서만큼은 공사 내외가 근심 없이 쉬셨었길 바라며 다음 공관원 사무공간으로 이동했다. 

2층 공관원 사무공간

공사 침실 건너편에 위치한 공관원들의 사무공간은 대미 외교업무의 전초기지에 해당하는 공간이다. 이 공간도 나에겐 매우 인상적이었다. 1층은 동서양의 믹스매치라면 2층 공관원 사무공간은 과거와 미래가 믹스매치된 느낌이었다. 먹, 벼룩, 붓이 있는 자리에 타자기가 함께 있었고 벽난로 위 시계와 조선의 손때 묻은 고서가 함께 비치되어 있었다. 


더 편리하고 간편한 신문물의 급물살 속에서도 우리 것을 지키려고 옛 것과 새 것을 한 공간에 모아 두고 함께 사용한 흔적이 마음에 와 닿았다. “온고지신”이라는 사자성어를 공간으로 표현하면 이쯤 되겠다 싶었다. 

2층을 둘러보고 3층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계단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벽지에 그려진 패턴과 계단 나무의 결, 천장을 막아 조명을 다는 대신 자연광이 들어올 수 있도록 창문으로 디자인한 이 공간도 예뻐서 목을 꺾었다 돌렸다 내렸다는 반복 하며 못 올라오고 있으니 먼저 올라간 남편이 “찍어줄까? (빨리 올라오라는 얘기다)” 해서 얼른 찍고 후다닥 3층으로 올라갔다. 

3층 전시공간

그렇게 올라오면 한미 우호의 역사 및 공사관 복원 과정을 알리는 넓은 전시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원래 3층은 공관원들이 지내던 여러 공간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제 강점기 때 강제로 매각되면서 2012년 우리 품으로 돌아오는 동안 3층의 벽체들이 헐리면서 원형을 잃었다. 1층과 2층처럼 복원될 수 있도록 당시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고증 자료가 없어서 3층은 복원 대신에 전시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한미 관계사, 공사관의 설치와 복원 과정을 비롯한 고종의 자주 외교활동, 한국의 근대화와 발전상 등을 소개하는 다양한 시청각 자료들이 있다. 

3층 전시공간

두 편에 걸쳐 내가 보고 기록한 내용들을 최대한 다 담으려고 했다. 그러나 내가 소개한 공간들이 공사관의 전부가 아니다. 내가 설명한 공간 외에도 욕실 (원형에 가깝게 만들려고 욕실 비누도 그때 쓰인 것 그대로 복구했다고 하는데, 사진을 안 찍었다…), 공사 집무실, 서재 그리고 한국 정원이 더 있다.


한국 정원은 이번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을 복원하면서 심혈을 기울여 새롭게 조성한 공간이라는데, 이것을 못 보고 왔다. 다녀오고 나서 공사관 건물 바로 옆에 한국 정원이 있었는데 모르고 그냥 지나쳐 왔다는 것을 알고 많이 속상했지만, 뭐 또 갈 이유가 생긴 거니까… 코로나가 지나가고 나면 재방문해야겠다.   


혹시나 워싱턴 디씨에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꼭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을 가볼 것을 추천한다. 우리의 전통과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서 여러 사람들이 다방면에서 힘을 쏟아 이런 의미 있는 공간을 미국 도심 한복판에 갖게 된 나라가 몇이나 되겠는가. 비록 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원형 보존이 안된 공간도 있고 여러 사람의 손과 시간을 타면서 많이 변했겠지만, 이 공간에는 분명 113년 전 대한제국의 근대화와 부국강병을 위해 먼 타국까지 와서 때로는 외로움과 서러움을 참으며 꿋꿋이 대한제국의 공사로서 임무를 다하려고 애쓴 선조들의 숨결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자주 이 공간에 와서 이제 이렇게 잘 살게 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그때  참 고생 많으셨다고 감사하다고 하는 마음을 공사관 곳곳에 심으면 분명 다 들으시고 흐뭇하게 웃어 주실 것 같다. 


이상 이도리의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방문기 끝.


다음 편에는 몇몇 음식들의 이름 유래를 역사 속에서 찾아볼까 한다. 난 벌써 너무 기대가 되는 거 있지^^


간판 사진 thanks to 나의 벗 신혜인

 

주미대한제국공사관 정보

오전 10시~오후 5시, 화~일요일 (월요일 휴관)

무료입장

홈페이지: https://www.oldkoreanlegati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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