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비현실화

2.하얀나라

by 비현

어릴 때, 이모부께서 찍어준

캠코더 영상이 있다.


파란 하늘, 웃는 얼굴,

그리고 “파란 나라”라는 동요.


지금도 그 노래를 들으면

어딘가 웃음기 가득한 나를 떠올리곤


그런데 그 장면은
어느 날, 하얀 나라로 바뀌었다.


병원의 하얀 천장.
하얀 담요.
하얀 소리 없는 공간.




가족들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던 그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은데..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



꼭 희망이 아니었지만,
절망 속에서 살아보겠다는 감각만은
나를 계속 숨 쉬게 했다.



면회 시간이 되자,
가족들이 조심스럽게

내 옆으로 다가왔다.



“들을 수 있어? 보여?”
“손가락이나 발끝, 조금만 움직여봐.”



불안한 언어, 엷은 미소,
참 짧기만 한 면회 시간.



그 순간들이
나를 현실로 다시 끌어올렸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다행이었던 건—


그 질문에 내가 대답할 수 있었던

상태였다는 것.




하얀 천장 아래서의 시간은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것 같았지만,
사실 나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



무거운 상황이 낯설고 두려웠지만
오히려 자꾸 잠을 청했다.



그 안에서 나는
깨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감각을 붙들고 있었다.



“내가 살아왔던 시간들”을

떠올리면서.



“다시 걷지 못할 수도 있고,
시력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 말은
나에게도, 가족에게도
아주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그때 나는 결심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시 돌아가야지.’



그것이
나를 다시 ‘나’로 만드는

출발점이 되었으니까.


사람들은 물어본다.


“아파요?” “무서워요?”


그럴 때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한다.


사람마다 다 다르다고.


그리고 나에겐,
그 하얀 나라에서

배운 숨결 하나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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