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비현실화

6.나는 왜 오래된 숫자에 마음이 끌릴까

by 비현

‘숫자’라는 건
문자처럼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말의 뼈대 같은 존재다.


생각해보면 아주 어릴 적부터
손가락으로 숫자를 말하곤 했는데,
한글을 몰랐던 그 시절에도
조막만한 손으로 숫자를 알려주려는 내 모습이
어렴풋이 남겨진 사진들 속에도 있었다.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숫자는 이미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정확한 유래는 몰라도,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곁에 있었던 존재라는 건
어느새 나에게도 자명한 사실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나는 오래된 숫자가 좋다.


아니, 어쩌면
‘오래된’이라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그 안에 시간이 있고, 사람이 있다고 느끼니까.


‘노포’라는 말도,
처음엔 고유명사처럼 들렸다.


하지만 이번에 글을 쓰며 찾아보니
일본에서 유래한 표현이라고 한다.


‘오래된 가게’나 ‘점포’를 뜻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난 예전엔 이 말을 좋아했지만
지금은 그냥 ‘오래된 식당’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 말이 더 내 마음에 닿고,
더 나다운 표현이니까.

나는 여행을 다닐 때도
일부러 오래된 식당을 찾아다니는 습관이 있다.


검색만 하지 않고,
그 지역 현지인에게 직접 물어보기도 한다.


“여기서 제일 오래된 집이 어디예요?”

묻는 건 단순하지만,
답해주는 사람들 마음엔 늘 같은 진심이 있다.


“나만 알고 싶은 집이지만,
너도 맛보고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그 마음이 참 좋다.


그곳엔 단순한 맛보다도
삶의 시간이 쌓인 분위기,
손길과 표정이 함께 머물러 있다.


지역의 결, 오래된 골목의 숨결,
말없이 이어지는 손맛 같은 것들.


그런 식당을 만나면
나는 숫자 하나에도 마음을 기댈 수 있게 된다.


‘40년’, ‘60년’, ‘3대째’—
그건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시간의 무게, 삶의 흔적이
그대로 녹아 있는 말이니까.


물론, 모든 오래된 식당이
다 좋은 건 아니다.


운영하시는 분들의 연세 때문인지
‘위생’ 이야기가 함께 나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내가 다녀온 대부분의 식당은
그런 걱정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인상적이었다.


그곳만의 방식,
말없이 내어주는 미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여긴 꼭 가봐야 해”라고 말하는 태도 속에
작은 정과 애정이 담겨 있었다.


그럴 때면 문득 생각한다.


하루하루가 점점 차가워지는 세상이지만,
이런 순간들을 보고 있으면
아직 정은 남아 있구나, 하고.


물론 모두가
나처럼 느끼는 건 아닐 거라는 걸 안다.


콘텐츠만 보고 방문했다가
현장과의 간극에 실망하는 사람들,
예상과 다른 분위기에 당황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런 상황이
불편하게 느껴질 것 같다면,
애초에 시도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혹은,
한 걸음 물러서서 이해해보려는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그 안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도 상대도 상처만 남게 되니까.


시간을 버텨온 손,
익어버린 말투,
묵묵히 지켜낸 하루하루가 좋아서—
나는 오늘도 숫자에 기댄다.


오래된 식당은
그 숫자들이 모여 만들어낸
작고 단단한 기억의 풍경 같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받은 따뜻함을,
이렇게 글로 남긴다.




#에세이 #오래된식당 #시간의맛 #기억을먹다 #일상의온기 #작은기록







� 작가노트


오래된 간판 하나에도

마음이 끌릴 때가 있어요.


그 안에 담긴 숫자와 세월,

그리고 사람들의 시간이 궁금해서요.


여행지에서 일부러 오래된 식당을

찾아가는 제 습관도,
어쩌면 그런 것에서 비롯됐는지 몰라요.


그래서 이번 글은 숫자라는 언어,

그리고 오래된 식당을 바라보는

저만의 감정을 담아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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